신라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는 스키타이인(scythian)으로서, 인도스키타이국(Indo-Scythian, saka, 夏國)의 왕자 파티카 쿠술라카(Patika Kusulaka)였고, 인도스키타이 수도 탁실라(Taxila, Pakistan)로부터 한반도 경주로 들어와 신라(silla)를 세웠다.
신라 탈해왕(脫解王)은 토해(吐解)라고도 했는데 토화라(Tocharian, 吐火羅) 출신이다. 토화라인(吐火羅人)는 월지씨(月支氏)와 동일하다.
중앙아시아에서 사하국(saka)을 밀어낸 월지인의 쿠샨제국(Kushan empire)에서 신라에 왔고, 증손자가 신라 나해왕, 조분왕, 첨해왕, 그리고 일본을 건국한 신무천황(神武天皇)이었다.
원래 이란인에 속하는 이들은 현재의 크림 지역을 중심으로 BC 4~2세기에 사르마티아인에 흡수될 때까지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여 5세기 이상 유지했다.
스키타이의 역사는 그들의 영토를 방문했던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대부분 근거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주로 러시아 인류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스키타이는 용맹성과 특히 전투중 말타기 솜씨로 인해 다른 부족들의 경외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역사상 최초로 말타기를 터득한 민족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그 솜씨는 다른 민족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스키타이는 아시아에서 이동한 뒤 이미 카프카스와 흑해 북부 평원을 점령하고 있던 킴메리족의 영토를 침범하게 되었다.
30년간 계속된 전쟁을 통해서 이들은 킴메리족을 정복하고, 페르시아 서부에서 시리아와 유대 땅을 지나 이집트 경계지역까지 영토를 넓혔다.
그러나 페르시아를 지배하던 메디아인이 이들을 공격 아나톨리아 지방으로부터 몰아냈기 때문에 이들의 영토는 페르시아 경계지역과 쿠반을 거쳐 러시아 남부까지로 축소되었다.
스키타이는 전투력뿐만 아니라 그들이 건설한 문명에 있어서도 탁월했다.
이들 중 부유한 귀족계급은 황금과 귀중품들로 가득 찬 무덤들을 남겼다.
지배계급이었던 로열 스키타이는 마침내 러시아 남부와 크림 지역의 지배자가 되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들 스스로는 스콜로트라고 불렀으며 스키타이는 그리스인들이 부른 말로 고대 그리스어로 '궁수'(Skuthēs)에서 유래했다.
페르시아에선 샤카(Sakā)라고 불렀는데 뜻은 동일했다.
스키타이와 국경을 마주하던 아시리아에선 '유목민'이란 의미의 아스쿠자이(Askuzai)라고 불렀다.
본디 이들은 그저 이란계 유목민족이었지만 기원전 11세기쯤 유입된 다른 이민족들과 섞이며 '스키타이'라는 정체성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알려진 바로는 최초의 기마 민족으로 채리엇이 아닌 직접 말을 타고 이동하며 싸웠다고 한다.
유목민의 특성은, 정착하지 않고 소유하지 않는다.
나는 역시 묵호의 영원한 여행자다.
나는 스키타이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