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낯섦. 이 두 단어는 모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순에서 시작된 많은 생각은 저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는 존재의 익숙함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최근 제가 키우는 강아지가 아팠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강아지는 아프면 위험할 수 있는 나이였기에 크게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강아지는 금세 괜찮아져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부터 저는 이틀 새벽을 내내 울며 보냈습니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이 아이가 다음 날 숨을 쉬지 않으면 어떡하나,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떡하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들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때 저는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처음으로 실감했던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사실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그리고 존재의 익숙함은 이별에 낯섦을 부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익숙함은 감각과 감정을 무디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를 착각하게 만듭니다 — 무언가의 존재가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세상엔 당연한 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가 있습니다. 늘 있던 그곳이, 늘 있던 그것이, 늘 있던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입니다. 존재의 빈자리에는 후회가 남습니다. 그렇기에 이젠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존재를 조금은 낯설게 바라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댓글 아픈 경험이 있군요. 누군가와 이별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상당히 힘든 경험입니다. 그러한 경험이 트라우마로 자리잡아서 만남을 회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과 사물,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우리도 변하게 됩니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정해진 이치라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당연한 사실이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경험하는 순간 각각 다르면서도 유사한 감정 정서를 느끼게 됩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함께 했던 순간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죽음으로 헤어지는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죽음에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생겨난 것들은 소멸해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