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빵집의 개념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만나고 앉아서 먹고하는 장소가 아니라
쟁반 들고 먹을 것 골라서 봉지에 담아 가는,
빵 진열장만이 가게를 차지하고 있고 앉아있을 탁자 몇 개 없이
휴식과 만남의 개념이 아닌 움직이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옛날에는(?) 손의 질척한 땀이 묻은 꼬깃꼬깃한 편지를 주머니 속에 감추고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 여학생을 만날 곳이라고는 고궁앞, 공원입구 아니면 십중팔구 빵집이었다.
곰보빵, 슈크림빵, 빠다빵, 앙꼬빵(일본식발음)을 잔뜩 가져다 놓고 우유 한잔 따끈하게 데워서 먹으며
주제토론이니 독서토론이니 할 때도 있었다.(그때에는 우유에도 설탕을 타서 먹었었다.)
한편으로는 혹시나 '교외지도반'선생님한테 걸리지나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 맛있는 빵 맛과 여학생들을 숨어서 만나는 스릴은 지금도 짜릿짜릿하다.
빵집에서도 여러 명이 모이면 의례껏 그 중에서도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눈빛으로 마음을 교환하고 편지와 쪽지가 몰래 오갔었다.
그때 당시 연애편지에는 도(?)가 텄던 나는 빵 얻어먹고 편지를 대신 써주는 '연애편지 컨설팅업'을 개업했었다. 히~
전화가 없는 집도 많았었고
감히 전화를 걸 엄두조차도 못 냈었던 그때는(어른들이 무서워서)
그래도 속마음을 표현하기에는 편지가 최고였었고 우리들의 안식처는 역시 빵집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빵집에서 탈피해보기로 했다.
서울시내에서는 보기 힘든 크로바잎을 따러가기로 한 것이었다.
토요일 오후
157번인가... 158번인가(지금도 있나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삼송리에 도착했었다.
오랜만에 보는 산과 논, 시골의 정취에 다들 신들이 나고
크라운 웨하스(그때는 상당히 비싼 과자였었다.---> 그런것만 먹으면 부르조아라고 불렸다.)에
병사이다를 나눠먹으며 까맣게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네잎 크로바잎을 찾았었다.
뉘엿뉘엿 땅거미가 몰려올 무렵 집으로 돌아갈 걱정에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었다.
밤에 들어가면 다들 혼나니까......
난 이상하게도 지금까지도 한번도 네잎 크로바를 찾아 본적이 없다. 하긴 찾을 필요도 없었다.
무수히 많은 여학생들에게 네잎 크로바를 선물로, 혹은 편지로 받았었으니까!(내 상태는 아직까지도 안 좋다.--->황제병)
얼마전 중전과 고추들을 데리고 아파트앞의 공원에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인가(요즈음의 교복은 구분하기가 어렵다.)
아직 밝은 초저녁이었는데도 남들의 눈을 전혀 개의치 않고
쌍쌍이 보란듯이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거의 끌어안듯 어깨를 감싸안고 우리 앞을 지나치는 것이었다.
"버젓이 교복을 입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것인가?" 라고 말하려다가 참고 말았다.
예전에 우리들이 교복을 입고 여학생들과 어울려 돌아다녔을 때도
그 모습을 바라보았었던 예전의 어른들도 지금의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이그~~~~ 말세여! 말세!!'
그때도 역시 말세였었겠지?
오늘은 웬지 예전의 그 친구들이 한없이 보고싶고
예전의 그때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여전히 바랜 내 책갈피 속에는
아직까지도 행운의 네잎 크로바가 나를 보고 환히 웃어주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