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아모스 7,10-17 마태오 9,1-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적을 몸소
행하시면서 하늘 나라의 도래를 드러내 보이시고 ‘메시아’로서 당신의 정체를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기적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하늘 나라의 구원과 기쁨을
이 땅에 실현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질병은 죄로 말미암은 것으로 여겨졌고(레위 26,16; 신명 28,22.35 참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오직 하느님께만 있었기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던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마음속으로 단죄합니다.
이에 그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와 치유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쉬운지 물으십니다.
사실 가치론적으로 본다면 육체의 치유가 죄의 용서보다 훨씬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라고 하신 다음,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시니, 그가 치유되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를 본 군중은 몹시 두려워하며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복음서에서 들려주는 이 같은 기적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려 줍니다.
중풍 병자를 낫게 하신 기적 사건으로 우리는 죄와 질병, 고통과 죽음까지도 모두 다스리는
권한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합니다.
이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시며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하느님, 우리 구원자이십니다. 아멘.
대구대교구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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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아모스 7,10-17 마태오 9,1-8
한 집에 머물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중풍 병자를 치유하는 것과 그의 죄를 용서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 ?” 물으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중풍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당시 유다인들은 죄를 용서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만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대사제조차도 심지어 메시아조차도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중풍 병자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치유하심으로써
당신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보이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과학을 발전시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처럼 서로 용서할 능력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는 능력은 계속 개발해 왔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
서로 용서하는 능력은 그냥 버려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과 의학이 발전했어도 사람들은 욕심 부리고 자연을 파괴하고
서로 미워하고 스트레스 받으며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삶은 겉으로는 발전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비틀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명이 무절제한 욕심과 증오로 파괴되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용서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의정부교구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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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금표 알비노 신부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아모스 7,10-17 마태오 9,1-8
닫힌 마음
오늘 복음은 사죄권을 놓고 벌어지는 율법 학자들과의 대립입니다.
예수님의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말씀에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며
반감을 표시합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쉽겠는가? 하고 질문합니다.
두 가지 모두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는 말씀으로 중풍병자를 치유함으로써
당신의 능력과 함께 사죄권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율법 학자들과의 대립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닫힌 마음입니다. 당시의 논리로는 메시아도 사죄를 선언할 수 없었기에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율법 학자들의 항변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론과 논리는 실제적인 사실에 의해 재해석 될 때 의미를 가지는데,
율법 학자들은 과거의 논리를 가지고 현재의 실재를 해석하는 우를 범합니다.
예수님의 언행을 자신들의 논리로 판단합니다. 이 모습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욕심입니다. 예수님께 쏠린 백성들의 관심과 예수님 때문에
잃어버릴지도 모를 자신들의 권위와 명예, 그리고 예수님의 등장으로 드러날 자신들의
허례허식이 예수님과 대립의 각을 세우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원주교구 홍금표 알비노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