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을 보고
조선 근대의 길을 열어젖힌 청년 김대건의 위대한 모험'이란 타이틀을 내 건 영화 <탄생>을 보았다. 김대건 신부(1821.8.21~1846. 9.16)는 조선 최초의 신부로 2021년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유네스코가 '세계의 인물'로 지정하였다.
조선의 천주교는 정하상, 장약용 등 당시의 유학자들이 학문으로 받아들였지만, 그 교리가 유교와 맞지 않아 박해를 시작하였고, 박해 이후 중인, 상인 등 일반 백성들이 박해를 피하여 숨어서 미사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이어 나갔다.
소년 김대건도 부모님의 권유에 의하여 프랑스 모방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후, 신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고 처음에는 "내가 왜요?" 하였다가 가슴 속에 뜨거운 열정을 느끼고 신학생이 되기로 결심한다.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16세에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다. 당시 중국도 아편 전쟁 등 외세의 영향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최방제는 유학 생활중 병에 걸려 어린 나이로 죽고 둘만 남는다.
마카오에서 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 철학 등을 공부하면서 김대건은 프랑스의 함대에 올라 그들의 항해술이 발달한 것을 보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을 가지고 관심을 보이고 공부하고 싶어 한다.
마카오의 상황이 좋지 않아 그들은 잠시 필리핀으로 옮겨 신학생활을 한다. 필리핀의 야자나무 아래서 마음껏 학문을 익히는 청년 김대건과 최양업은 눈부시게 젊고 건강하고 자유스러운 모습이 참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김대건은 조선 국경이 삼엄한 검문을 피해 조선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단신으로 험난한 길을 헤쳐 조선의 의주까지 다녀오는 모험을 하고 조선의 소식을 갖고 돌아온다.
다시 마카오로 돌아온 김대건을 맞이한 최양업은 부모님의 순교소식을 전해 받고 김대건 앞에서 눈물을 보이려고 하지 않아, 오늘은 실컷 울어라는 말을 하며 자리를 피해 주었는데 그때 부터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부제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온 김대건을 지척에 어머님이 계셨지만, 자신이 조선에 왔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였기에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는다. 다시 상해로 들어간 김대건은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의 신품성사를 받는다.
김대건은 신학과 학문에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상술도 발휘하여 조선의 홍삼과 한지를 상해의 비단과 책으로 교환하여 경비로 사용한다. 서해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겪었지만 그의 모험심으로 성공한다.
10년 만에 조선의 첫 신부가 되어 돌아온 김대건은 자신의 세례를 받았던 은이공소에서 어머니와 동생, 신자들을 모시고 첫 미사를 집전한다.
미사가 끝난 후 어머니와 맞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관객들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조선교구의 신자들을 위해 다시 떠나 보내는 그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감격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울까?
더구나 조정의 눈을 피해 다녀야 하는 위험한 사지로 떠나 보내야 하였으니.
상해에서 조선으로 입국하는 바닷길을 개척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왔다가 결국 체포되고 그를 심문한 포도대장 이응식은 그가 비밀리에 보내려고 하였던 지도와 외국어로 쓴 편지를 조정으로 올려 보낸다.
그 당시 조선이 유럽의 발달한 문물을 받아 들이고 문호를 개방하였다면,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겠지....새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포도대장은 라틴어와 프랑스어, 중국어 까지 능통한 그의 천재성을 아까워하여 배교를 회유하였으나 그는 순교할 것을 원하여 결국 새남터에서 참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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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