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티에이징보다는 웰에이징이 필요하다
당당하게 늙는 법 이젠, 웰에이징(well-aging) 안티에이징(Anti-aging)
다운에이징? 노화를 거부 말자 사람은 늙는다. 늙는다는 데서 자유로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젊음에 대한 추종이 심화되면서 ‘노화’는 우리가 기를 쓰고 타도해야 하는 대상이 됐다.
여기저기서 안티에이징(Anti-aging)과 다운에이징(Down-aging)을 외치며 노화에서 벗어나려고만 한다.
하지만 노인 인구가 530만명을 넘어선 고령화 시대에 무조건적인 ‘노화 거부’는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
이젠 어떻게 하면 잘 늙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늙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웰에이징(Well-aging)’, 즉 ‘참늙기’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란 얘기다.
▲ 일러스트 한규하 ‘웰에이징’은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되살리는 성찰이다. 질 높은 삶을 위한 ‘웰빙(Well-being)’과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 중간 과정인 ‘참늙기’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는 어떻게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일상 생활 속에서 ‘참늙기’를 실천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주간조선은 ‘웰에이징’을 처음으로 주창한 박상철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과 함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참늙기’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인터뷰 | 박상철 서울대 의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약이나 수술에 의존해 젊어지려는 건 껍데기 불과 활발히 움직이고 배우면서 잘 늙어야 사람다운 삶”
“지금까지 사람들은 ‘늙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만 얘기해왔잖아요. 이제는 ‘당당하게, 잘 늙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는 겁니다. 노화를 죄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편견만 극복해도 ‘웰에이징(Well-aging·참늙기)’의 절반은 해낸 거예요.”
지난 10년간 노화 연구에만 힘써온 박상철(60) 서울대 의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생화학과 교수)은 ‘웰에이징’이란 화두를 처음 꺼낸 주인공이다. 그는 노화(老化)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일깨우고 싶다는 뜻에서 지난 5월 노화 철학과 실천방법을 담은 책 ‘웰에이징’을 펴냈다.
그는 “노화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별난 죄책감은 최근 불고 있는 ‘동안(童顔) 열풍’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며 “‘안티에이징’ ‘다운에이징’으로 대표되는 노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만은 고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의 서울대 의대 연구실을 찾아 과학(생화학)과 인문학(사회학)을 넘나드는 ‘참늙기’에 대해 들어봤다.
‘웰에이징’의 개념은 아직까지 생소하다. ‘웰에이징’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답게, 당당하게 늙는 것’이다. 내가 금년에 회갑을 맞았다.
생화학자로서,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으로서 ‘늙는다’는 게 뭔지 숱하게 연구했지만, 정작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또 우리 사회가 ‘잘 산다는 것(웰빙·Well-being)’이나 ‘잘 죽는다는 것(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선 자주 얘기하면서도, 정작 그 중간 과정은 ‘안티에이징’으로 채워버리는 게 안타까웠다. 이런 평소 생각과 연구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내가 축적한 데이터를 한데 엮어 ‘웰에이징’을 쓰게 됐다.”
‘웰에이징’은 단순한 장수(長壽)와 어떻게 다른가. “웰에이징은 수명연장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물론 남들보다 오래 살았다는 건 그만큼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질적으로 높은 삶을 살다 가야 그게 진정한 ‘웰에이징’이다.
내가 ‘웰에이징’의 기본 요건으로 ‘관계 맺기’와 ‘사회적 활동(참여)’을 꼽은 이유가 여기 있다. 비싼 음식 먹고 약 먹고 수술해서 오래오래 살자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고 정력적으로 일을 해서 잘 늙자는 얘기다.”
박 교수는 ‘웰에이징’을 ‘품위 있는 노화’로 정의하길 거부했다. ‘웰빙’과 ‘웰다잉’이 일반적으로 ‘품위 있는 삶’ ‘품위 있는 죽음’으로 규정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품위’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주는 말”이라며 “‘웰에이징’은 여유 있는 사람에겐 쉽고 가난한 사람들에겐 불편한개념이 아니라, 돈이 있든 없든 당당하고 사람답게 늙자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웰에이징’을 달성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은 무엇인가. “나는 노화와 장수를 ‘집 짓기’에 비유한다. 바닥과 기둥, 지붕 이렇게 세 가지 축으로 나누는 것이다. 바닥은 기본적인 체질을 가리키는데, 성별이나 유전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둥은 집을 지탱하는 네 가지 요소로, ‘웰에이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적당한 운동과 영양섭취, 이웃이나 가족과의 관계, 사회활동 참여가 이 4개의 기둥에 해당한다. 한 가지만 무너져도 ‘웰에이징’을 이룰 수 없다. 그 다음은 지붕으로, 의료제도와 사회보험제도 등이 포함되는데 국가정책적인 부분이라 개인이 달성하긴 어렵다.”
‘웰에이징’의 핵심이 운동·영양·관계·사회활동이라고 했는데, 우선순위가 있나?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활동’이다.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 이게 바로 웰에이징의 핵심이다. 내가 지난 10년간 장수 연구를 통해 만나본 100세인이 250명 정도다. 전국의 100세인을 약 2000명으로 보는데, 그중 10% 정도 만난 셈이다.
이들 대부분은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얗게 새도 깨끗한 피부와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뭣 때문인 줄 아나. 젊은 사람보다 더 정력적으로 밖에 나가 일하고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관계’인데, 농촌 지역에 장수인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로 관심을 가져주고 고락을 함께하는 분위기 덕분에 외로울 틈이 없다.”
1994년 본격적으로 노화 연구를 시작한 박 교수는 이미 ‘장수인’ 연구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2000년과 2001년, 박 교수는 카베올린(caveolin)과 암피피신(amphiphysin)이란 단백질 수치 저하가 세포 노화의 원인임을 밝혀내는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올렸다. 또 어린 세포와 늙은 세포에 동일한 독성물질을 주입한 결과, 오히려 어린 세포가 늙은 세포보다 빠르게 죽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놔 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현재 노화 세포의 특정 구성성분(component)을 바꿔 젊음을 재건(restore)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또 지난 2001년부터 실시한 장수인 연구를 마무리하기 위해, 올해부터 서울에 사는 100세인 300여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수많은 여성과 남성이 화장품과 약, 수술의 힘을 빌려 젊어지려고 하고 있다. “그건 그저 ‘껍데기’, 즉 피부 노화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본질적인 얘기가 아니다. ‘안티에이징’ 화장품이나 의약품을 얘기하는데, 실제로 약을 먹거나 수술을 통해 젊음을 회복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그런 연구 결과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당장 10여년 정도 피부 노화를 늦출 순 있지만, 오히려 그 이후 노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흉하게 된다. 미국 유명 배우나 우리나라 배우들이 많은 돈을 들여이런 저런 수술을 받아도, 나중엔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할 만큼 엉망이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아무리 ‘웰에이징’이라고는 하지만 젊어지고 싶은 욕구는 거스를 수 없는 것 아닌가. “나는 그걸 젊어지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늙음’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처럼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는 나라가 없다. 장수 연구를 하면서 90~100세인 노인들을 만나 ‘앞으로 얼마나 더 살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보면 나오는 답이 다 똑같다. ‘당장이라도 죽고 싶다’ ‘하나님이 데려가면 좋겠는데, 안 데려가시네’ 이런 식이다. 하지만 외국의 장수 노인들은 안 그렇다. 본인이 90세든 100세든 나이든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공개적으로 내세운다. 우리나라만의 안타까운 현상이다.”
왜 유독 늙음에 대한 죄책감이 우리나라에서만 심한 건가. “나이가 들면 자식들에게, 그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걸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인데, 나이가 들면 일을 안 하고 집에서 쉬고 있으니 자식들에게 미안한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1997년 IMF가 터지고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모든 게 젊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게 됐다. 나이 50만 넘으면 회사에서 쫓겨나고 집에서 놀게 되니 ‘나이 든 것`=`죄 짓는 것’이라는 공식이 생긴 거다. 젊지 않으면 사람 구실 못하는 걸로 인식하게 됐다. ‘안티에이징’이란 개념이 확 뜬 것도 이때부터다.”
결국 해답은 ‘활동’에서 찾아야 하는 건가? “그렇다. 신체적 기능이 좀 떨어지면 어떠냐. 배우게 하고 움직이게 하자. 지난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만 해도 500만명을 넘어섰는데,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놀릴 건가. 그러니 ‘고령화 사회 공포’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냐. 노인 500만명 중 200만명은 충분히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부도 나이든 사람들의 권리만 챙겨줄 게 아니라, 나이든 사람들에게 요구할 건 요구해라. ‘일해라’ ‘참여해라’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노인들도 사회 동력이 되고 노화에 대한 죄책감도 사라지게 된다.”
생화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노화’는 어떤 건가. “노화도 결국 생명현상이다. 생명과학에서 생명은 ‘외부 자극에 대한 생체의 반응’으로 본다.
이 반응은 크게 대사반응(먹고 움직이는 것)과 스트레스반응(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변화), 증식반응 등으로 나뉘는데, 노화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시간이 흐르고 외부 환경에 더 오래 노출되면서 우리 신체가 주름살과 흰 머리 같은 노화 현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노화는 결국 ‘환경에 대한 적응’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안티에이징’이란 이름으로 노화를 적대시해선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극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거부하면 신체의 역반응만 일어날 뿐이다. 더 많이 움직이면서 노화를 즐겨야 한다.”
***** 流水不復回(유수불부회)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行雲難再尋(행운난재심)떠도는 구름은 다시 볼 수 없네. 老人頭上雪(노인두상설)늙은이의 머리위에 내린 흰 눈은 春風吹不消(춘풍취불소) 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 春盡有歸日(춘진유귀일) 봄은 오고 가고 하건만 老來無去時(노래무거시) 늙음은 한번 오면 갈 줄을 모르네. 春來草自生(춘래초자생) 봄이 오면 풀은 절로 나건만 靑春留不住(청춘유부주) 젊음은 붙들어도 달아나네 花有重開日(화유중개일) 꽃은 다시 필 날이 있어도 人無更少年(인무갱소년) 사람은 다시 소년이 될 수 없네. 山色古今同(산색고금동)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지 않으나 人心朝夕變(인심조석변)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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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1973 서울대 의과대 졸업 1975 서울대 대학원 의학석사 1980 서울대 대학원 의학박사 1980~ 서울대 의과대 생화학과 교수 한국노화학회 회장,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회장, 국제노화학회 회장, 세계노년학회 아태학회 사무국장, 국제백세인연구단 의장 등 역임
현)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서울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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