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철호 요한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념일
2역대기 24,18-22 로마 5,1-5 마태오 10,17-22
예수님의 제자들은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의회에 넘겨져 회당에서 채찍질을 당할 뿐만 아니라,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의 미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벌어지는데,
그분의 참된 제자라면 끝까지
스승이신 예수님을 버리지 않고 증언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젊은 나이에 순교한 것도 이런 제자로서의 사명 때문입니다.
교회는 김대건 신부처럼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들의 피로 양육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언한 신앙 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그들이 걸어간 십자가의 길에 동참합니다.
그러나 종종 십자가 밑에서 주님을 증언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환난 중에 내버려 두시는 분도,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박해하는 이들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또한 당신의 이름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큰 사랑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주님의 제자들은 환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희망은 그들을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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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규 베네딕토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념일
2역대기 24,18-22 로마 5,1-5 마태오 10,17-22
누군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유일한 생명의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순교는, 신앙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으로서
가장 숭고한 신앙의 증거로 받아들여집니다.
한국 교회는 이렇게 순교자들의 피로 세워졌고, 그들의 숭고한 신앙의 증거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뿌리와도 같은 순교자들은 분명 희망을 간직한 이들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순교자들을 기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지금 우리’입니다.
순교자를 현양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하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겪는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 맞고 피 흘리는 박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는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흔드는 다른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이 우리를 미워하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 다른 이유 때문에 신앙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순교자를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은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렬히 복음의 가치를 실천하고,
믿음을 통하여 얻는 기쁨을 위하여 다른 것들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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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훈 토마스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념일
2역대기 24,18-22 로마 5,1-5 마태오 10,17-22
가끔 삶의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그 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적응된 일에만 익숙해져 쉽게 판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실망스러워 절망하기도 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더라도
피곤하고 힘든 과정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를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위 사람에게 상처받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였을 때,
열심히 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하였을 때,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이들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우리는 실망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또한 그 길을 가고자 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사제로 살아 온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러한 장벽과 걸림돌에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길을 잃고 헤매야 할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또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그런 실망과 후회를 견디어 낼 수 있을지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하고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전하는 삶 자체가
어쩌면 처음부터 넘어지고 채찍질당하며,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견디어 내라.’, ‘걱정하지 마라.’ 하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늘 걱정이 앞섭니다.
십사 년 전 오늘, 저는 이 길에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어떠한 사제가 되겠다는 다짐이나 창대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던 첫 마음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이 닥치더라도 당당히 맞서 나아가려 합니다.
견디기 쉽지 않을 때마다 첫 마음을 기억하며 예수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첫 마음으로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내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광주대교구 최종훈 토마스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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