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아모스 9,11-15 마태오 9,14-17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드린 질문은 단순히 ‘단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전통과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묻는 모습에서 순수한 궁금증보다는
묘한 우월감과 비판 의식이 느껴집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요한의 제자들처럼 신앙생활을 정해진 규범과 전통을
따르는 정도로 한정하여 이해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왜 요즘 여성 신자들은 미사보를 안 쓰나요?” “왜 요즘 신자들은 묵주 기도를 무릎 꿇고
바치지 않나요?” 등과 같은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신앙의 핵심을 마주합니다. ‘신앙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규칙과 전통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예수님의 현존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다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새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따르는 규칙과 전통 안에서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는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끔 규칙과 전통으로 이루어 놓은 개인과 공동체를 찢어지고 터지게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슬퍼할 일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이 닿는데도 어떤 찢어짐이나
터짐이 일어나지 않는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고요함’이야말로 진정으로 슬퍼해야 할 일입니다.
대전교구 김인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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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아모스 9,11-15 마태오 9,14-17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것을 헌것에 담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것을 잘 보존하려면 찢어지지 않는 새 부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바리사이들과 단식에 대해 논쟁하실 때였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 신심 깊기로 소문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축일에 하는 의무적인 단식 말고도 자발적으로 단식을 하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단식이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진정한 표지가 아니라
남에게 보이려는 위선적 행위가 되는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본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식은 모든 구원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마음을 온전히 여는 행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혼인 잔치의 신랑에 비유하시면서,
하느님의 말씀과 기적으로 세상에 구원을 베푸시는 복음의 기쁨을 맛보는 제자들이
슬퍼하며 단식할 수 없지 않느냐고 하시며 권위 있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신심 깊은 유다인들이 하느님을 깊이 섬기면서 단식으로 재계를 지켰지만,
그들의 낡은 율법에 대한 열정이 예수님께서 새롭게 열어 주시는 복음의 새 부대에
담겨질 수는 없음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허물어진 성읍을 다시 세우고 포도밭을 가꾸어 포도주를 마시는
새 날을 희망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이 되돌려질 날을 예언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등장은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새로운 계약에 담아내는
제자들의 희망으로 이어집니다.
비록 교회가 역사 안에서 박해와 타락의 역사를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지만,
예수님의 새 부대에 담겨진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일은
여전히 교회의 소중한 소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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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호 사도요한 신부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아모스 9,11-15 마태오 9,14-17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단식을 하지 않는지 묻습니다.
이스라엘의 올바른 이라면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단식을 해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기에 ‘슬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단식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되었음을 슬퍼하며 행하는 참회의 표지였는데,
예수님 당신을 통하여 이미 혼인 잔치, 곧 메시아 시대가 열렸고,
혼인 잔치의 신랑인 메시아가 그들과 함께 있으니 굳이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들도 곧 신랑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제자들은 단식하게 될 것입니다. 슬퍼할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길 것이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구약의 백성이 슬퍼하듯이 그렇게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약의 백성은 비록 신랑을 빼앗겼지만, 그 신랑을 곧 되돌려 받을 것입니다.
아니 그 신랑과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는 단식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빵을 배불리 먹고 마시는
그런 시대를 살아갈 것입니다.
부산교구 염철호 사도 요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