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재산상속서류 등 첫 공개
프리미엄조선은 안치용 재미 탐사보도 전문기자의 탐사보도물인 ‘안치용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Secret of Korea)’를 연재한다. 미국 뉴욕시에 거주하는 안 기자는 미국 정부의 각종 문서를 발굴,
한국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주요인물의 미국 내 행적, 한국 관련 이슈에 대해 큰 특종을 많이해 명성을 쌓았다. 그는 이러한 장기를
살려 미국 백악관·국무부·국방부·CIA의 비밀해제문서, 법원 소송 서류, 부동산 등기 서류 등을 바탕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이슈를
추적보도하고 프리미엄조선 회원들을 위해 서류 원문을 공개할 예정이다. 시리즈의 첫 회는 박정희 전대통령 시절이던 1970년대
초반 미국으로 도피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 이야기이다. /편집자
김형욱씨는 박정희
전대통령 시절인 지난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1973년에 유신에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달아났습니다. 부정하게 모은 막대한 재산을 미국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으며, 미국 의회에 출석해
한국을 서슴없이 비난했고 1979년 10월 파리에서 실종되고 맙니다.
또 YH 사건은 1979년 8월
섬유업체인 YH무역의 폐업선언에 항의해 신민당사에서 항의하던 여종업원들을 경찰이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성 노조 집행위원장이
사망하고, 이것을 계기로 학생·기독교·청년 세력의 반유신 운동이 확산되면서 유신정권 붕괴의 단초가 됐던 사건입니다. 당시
YH무역의 사장은 장용호씨입니다.
-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왼쪽)과 장용호 YH무역 사장
유신반대를 내세우며 미국으로 도피했던 김씨와 유신정권 붕괴의 단초가 된 YH무역 사건의 장 사장이 미국 조지아주의 땅을 공동소유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5년전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에 대한 미국 뉴저지주 법원의 사망판결 뒤 1981년 10월 상속법원에 제출된 재산상속서류에
따르면 김형욱 명의의 유일한 부동산은 조지아주 월튼카운티의 9토지지구 내 406, 407, 422, 423 등 네 필지 땅의 지분
50% 였습니다.
-
- 김형욱 사망판결 뒤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상속법원에 제출된 재산상속서류. 서류 상단에 '김형욱의 재산’이라는 제목 하에 부동산 부분이라고 명시돼 있으며, 조지아주의 토지내역과 추정가치가 적혀 있다.
이 4필지의 전체 면적은 320에이커(129만4994㎡·약 40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땅으로, 당시 카운티 정부의 평가가격은 에이커당
1260달러, 따라서 사망 당시 김형욱의 지분은 약 20만1600달러에 해당한다고 기재돼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계약서 등을 확인한 결과 전체면적은 323에이커에 달했습니다.
월튼카운티는 농장과 목장이 많은 지역이며 이 부동산도 일부 기록에는 RANCH, 즉 목장으로 기재돼 있으나 목장으로
운영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현 시세는 당시의 10배, 즉 에이커당 1만2천달러정도로 알려졌습니다. 김형욱씨가 323에이커의
절반을 갖고 있으므로 현재의 환율(1달러당 1060원)을 적용하면 재산 가액은 20억5000만원 정도 됩니다.
-
- 김형욱 일가의 고문변호사인 알란 D 싱거 변호사가 1982년 미국 조지아주 부동산 회사에 땅의 가치를 문의한 편지. ‘김형욱과 장용호의 재산’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렇다면 과연 김형욱 외에 나머지 50%를 소유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바로 1979년 YH사건으로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용호 YH무역 사장이었습니다. 그 단서는 뉴저지주 법원에서 발견된 또 한장의 서류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김형욱의
고문변호사인 알란 D 싱거 변호사는 김형욱 재산을 정리하면서 1982년 9월 20일 조지아주 소재 부동산회사에 이 땅의 가치를
물었고 이 부동산회사는 같은 해 9월 29일 회신을 했습니다. 이 서류에는 ‘월튼카운티 알렌디스트릭트 소재 김형욱과 장용호 소유의
부동산’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알란 D 싱거변호사는 김형욱의 미국재산 관리에 깊숙히 개입하면서 사실상 김씨 집안의
집사역할을 한 사람으로, 김형욱의 프레이저 청문회 증언때 동행했던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이에 앞서 1982년 6월
17일에는 워싱턴 DC 소재 셔털랜드로펌도 김형욱 재산상속서류 작성을 담당한 ‘윌렌츠-골드만-스피쳐 법무법인’의 리차드 러트에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편지는 ‘김형욱의 상속자인 부인 김영순(한국명 신영순)씨가 김형욱 명의 조지아주 부동산의
지분 50%를 이전받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 1989년 조지아주 월튼카운티 등기소에 제출된 부동산 관련 서류. 장용호 YH무역사장이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씨와 자신의 아내인 장순경, 딸 장은희등 3명 모두를 대신해 서명했다.
-
- 1990년 조지아주 월튼카운티 등기소에 제출된 부동산 관련 서류. 장용호 YH무역사장이 1984년 7월 ‘김형욱씨의 법적 상속인 김영순’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이 단서를 바탕으로 부동산 소재지인 조지아주 월튼카운티 등기소를 온라인으로 조회한 결과 김형욱과 장용호가 40만평의 초지를
공동소유했음이 명확히 입증됐습니다. 이 땅은 김형욱이 50%, 장용호 사장의 부인 장순경(한국명 김순경)씨와 딸 장은희씨가 각각
25%씩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고 김형욱 사망 뒤 김씨지분은 김영순씨에게 상속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영순씨는 김형욱이 실종되자 이 땅을 상속받은 뒤 1984년부터 이 땅을 팔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씨와 장순경, 장은희씨 등
소유주 3명은 1984년 7월 24일 장용호씨에게 이 땅 매도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뉴저지주 알파인에 살았고
여자의 몸으로 멀리 떨어진 남쪽 지방의 조지아주를 왔다갔다 하며 부동산을 정리하기에는 힘들었기에 장씨에게 일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1989년 매매계약이 취소되는 등 진통을 겪었고 취소서류에는 장씨가 김영순씨를 비롯한 3명의 소유주를 대신해 서명했습니다.
또
장용호씨가 1990년 월튼카운티의 바로 옆인 뉴튼카운티와 이 땅에 관한 측량 등의 문제로 주고 받은 문서에는 김영순씨가
김형욱씨의 법적 상속인임이 명시돼 있습니다. 이땅이 덩치가 커서 쉽게 팔리지 않자 현지인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관리하다 결국
1992년과 1994년 두차례에 걸쳐 마침내 모두 팔았습니다
-
- 1992년 조지아주 월튼카운티 등기소에 제출된 부동산 관련 서류.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조지아주 땅 일부인
63.3 에이커에 대해 자신의 지분 50%를 매도한다는 계약서이다. 장용호씨의 부인과 딸도 같은 날 동일인에게 각각 25%씩의
지분을 매도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
- 1994년 조지아주 월튼카운티 등기소에 제출된 부동산 관련 서류.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조지아주 땅 일부인
259.4 에이커에 대해 자기 지분 50% 를 매도한다는 계약서이다. 장용호씨의 딸도 같은 날 자신의 지분 25%를 어머니인
장순경씨에게 양도한뒤 장씨가 50% 지분을 동일인에게 매도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
- 1994년 조지아주 월튼카운티 등기소에 제출된 부동산 관련 서류,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조지아주 땅 일부인
259.4 에이커에 대해 자기 지분50% 를 매도한다는 계약서 마지막 페이지에 김영순이 서명했으며, 장용호씨도 증인으로 서명했다.
김영순씨와 장용호씨측은 1992년 6월 26일 전체 323에이커중 63.3 에이커를 매각한데 이어 약 2년뒤인 1994년
2월23일 나머지 259.4에이커를 팔았습니다. 매매계약서 등 관련서류 일체를 월튼카운티 등기소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김영순씨의 매도계약서와 장순경씨 등의 매도계약서 등 두 계약서 모두에 장용호씨가 증인으로 서명했음도 드러났습니다.
장용호씨의 아내인 장순경씨는 위임장과 매도 서류등에서 장용호씨 자택인 뉴욕주 낫소카운티 그레잇넥의 12 호스슈레인을 자신의
주소로 기재했고 장은희씨는 위임장에서 나의 아버지가 장용호라고 밝힘으로써 가족관계가 확인됐습니다. 또 장용호씨는 1972년 맨해튼
32가에 6층 빌딩을 매입, 1984년 이를 한국 중앙일보에 팔았으며 당시 계약서와 모기지서류 등에서 그레잇넥의 12
호스슈레인을 자신의 주소로 기재했으므로 김형욱과 조지아주 땅을 공동매입한 장용호씨는 YH무역의 장용호 사장임이 입증됐습니다.
조지아주 월튼카운티 등기소는 온라인상으로는 1990년대 이후의 부동산 등기서류만 조회되고, 그 이전의 서류는 직접 방문해야만
조회가 가능해 김씨와 장씨가 언제 조지아땅을 매입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1979년 이전에 땅을 매입했으며
매도서류 등을 통해 공동소유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김형욱씨의 큰 며느리인 김경옥씨는 “시아버지가 시누이 신혜씨를 장용호씨의
아들과 혼인시키기 위해 혼담이 오고 갈 정도로 장씨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밝혔습니다
장씨는 1962년
대한무역진흥공사 코트라 뉴욕무역관 부관장으로 부임했다가 가발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으며 1969년 제8대 뉴욕한인회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김형욱씨는 1925년 1월생인 반면, 장용호씨는 1929년 3월생으로 김씨가 네살 더 많습니다. 반면 김씨의
부인 신영순씨와 장씨의 부인 장순경씨는 각각 1933년 3월과 2월생 동갑내기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씨와 장씨는 언제부터 어떤
경위로 절친한 사이가 됐을까요? 이야기는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한편 기자는 반론을 듣기 위해 뉴저지주 알파인에 살고 있는 김형욱씨 유족에게 전화를 했으나 ‘메시지를 남기라’는 자동응답기로 연결됐고, 메시지를 남겼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
- 김형욱 실종 30년만인 2009년 5월 ‘시크릿오브코리아’에 의해 미국 뉴저지 잉글우드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김형욱 명의의 묘비. 김씨의 묘비옆에는 2002년 9월 사망한 장남 김정한이 잠들어 있다.
1. 장은희 위임장. 2페이지에 1989년에 작성된 매매취소서류가 있다. 장씨가 3명 모두를 대리해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