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성모요양병원
전영관
나이 먹으니 죄가 슬퍼진다
살인만 아니면 동조하고 싶을 만큼 낯설지 않다
우리는 죄책감에 공격당한 부상병들이었다
나이는 제 종아리를 후려치는 싸릿대라서
봄마다 굵어지고 쓰라림이 길어진다
안부삼아 저마다 고장 난 곳을 자랑했다
국산인데 60년 넘게 썼으면 어머니 본전 뽑았다고
관리 잘했다고 추어주었다
병명을 나열하면 종합병원 수준이니까
생이라는 선천성질환 환자인 양 잔을 채웠다
무력감은 무릎을 묶는 투명밧줄이었다
쓰러질 수밖에 없는 난치인데
질병코드에 못 들어서
실손보험 치료비도 못 받았다
애증의 상징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아들보다 죄책감 깊을 아내를 잘 살피라고
현명한 척했지만
30년 시부모 모신 아내에게서 알게 된 것일 뿐이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누나들보다 아내가 더 섧게 울었다
어린 척 60년 몸을 바꾼 요괴라서 봄은
처음인 듯 순식간에 스미어 나온다
풋내 번지는 들판에
누구라도 막을 수 없는 어둑발이 번졌다
거기를 알 것만 같은 나이라서
편히 가시라고 인사드렸다
자식들이 보기에 편할 표정의 사진을 찾아놔야겠다
문상 다녀와서 내게 문상하고 있다
전영관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미소에서 꽃까지』 『슬픔도 태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