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일기3 |
키오스크 너, 꼼짝 마! |
"여기요! 콩나물국밥 두 그릇 주세요." 여러 번 주문을 했지만 일하는 아주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손으로 음식점 입구에 있는 기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문은 저기 키오스크로 해주세요.” 지난번에 왔을 때만 해도 보이지 않던 기계가 매우 낯설었지만 하는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키오스크 앞에 섰다. 그러나 그 이상한 기계 앞에서 내 눈동자와 손가락은 갈 길을 잃었다. 당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옆에 사용법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긴 했는데 글씨가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언뜻언뜻 보이는 내용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내가 세상의 변화에 한참 뒤처진 듯해서 순식간에 마음이 위축됐다. 옆에서 "당신, 할 줄 알아요?" 하고 걱정스레 묻는 아내에게 "글쎄, 쉽지 않네"라고 답하는 내 이마엔 점점 땀이 맺혔다. 이윽고 눈이 침침해지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계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으니 보다 못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그것도 못 하냐는 떫은 표정으로 대신 주문을 넣어주었다.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마치 죄인이 된 듯한 나는 '오래 살려면 오래 배워야 한다'는 말을 가슴 깊이 절감했다. 얼마 후 그날 일을 계기로 어떻게든 키오스크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내게 아내가 동네 복지관에서 키오스크 수업을 한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좋은 기회여서 곧바로 수업을 등록했다. 처음에는 기계 하나 다루지 못해서 이 나이에 새로 공부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지만 이내 나는 창피함도 잊고 모르는 내용이 생기면 바로바로 선생님께 질문해가며 열심히 수업에 임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배움에 나이가 상관있나요? 모르면 배우는 거지요.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라며 용 기를 북돋아주었다. 선생님의 격려 덕에 자신감은 나날이 커졌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옛말이 있다. 욕심이 채워지면 또 다른 욕심이 생긴다는 뜻처럼 나는 삶의 기수가 되어 키오스크를 젊은 사람들만큼 능숙히 다루고 싶단 바람으로 늦은 공부를 열심히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동안 배운 실력을 점검할 기회가 생겼다. 내게는 중간고사 아닌 중간고사였다. 아내에게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 둘이 함께 극장 나들이에 나선 길이었다. 역시나 키오스크는 영화관까지 점령해 이제는 티켓도 기계로 사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주저했을 텐데 배운 바가 있으니 난 앞장서서 키오스크로 향했다. 그러고는 자신만만하게 아내에게 "보고 싶은 영화가 뭐야?" 하고 물었다. "어머, 당신 이제 이거 할 줄 알아요?" 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묻는 아내 앞에서 난 의기양양하게 영화를 선택하고 카드 결제까지 마쳤다. 키오스크가 뱉어낸 입장권까지 보란듯이 건네자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대단하다. 내 남편!"이라며 감탄하는 아내에겐 "이 정도로 뭘 그래"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지만 슬그머니 올라가는 입꼬리는 단도리하기 어려웠다. 키오스크의 문턱을 넘어 긴장이 풀린 우리는 고소한 팝콘도 사먹고 팔짱 끼고 돌아다니며 연애하던 시절처럼 어느 때보다 즐겁게 데이트를 했다. 영화티켓 구매에 성공하자 내친김에 도서관에서 키오스크로 책 대여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티켓구매보다 한단계 더 어려울 것 같았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일부러 도서관에 들른 우린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가져와 키오스크 앞으로 갔다. 책을 올려놓으니 음성 안내가 흘러나왔다. 안내에 따라 화면을 몇 번 누르니 대출 성공! 뭐든 배우면 다 된다는 사실에 하늘 높이 치솟은 자신감만큼이나 어깨도 한껏 올라간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가 배고프다며 콩나물국밥을 사 먹고 들어가자고 했다.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잠깐 멈칫했지만 이제 움츠러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 이상 키오스크 따위 두렵지 않은 난 흔쾌히 대답했다. "그래, 가자고 가! 키오스크 꼼짝 말고 거기 있어!"
임지용 경기도 구리에 살고 있으며 사랑스러운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 얼마 전 환갑을 맞았으며 천천히 건강하게 늙고 싶어 매일 오전에는 수명을 합니다. 그리고 평상시 바둑을 좋아해 오후에는 바둑 공부를 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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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인연 |
코끝 시린 겨울이 되면 할머니와 처음 만난 날이 떠오른다. 생각해 보면 할머니와의 인연은 엄마가 내게 남긴 마지막 선물인 것 같다. 그해 겨울은 마음이 무척 시렸다. 치매를 앓던 엄마를 떠나보내고 도통 마음 잡지 못하던 때였다. 집에 있으면 자꾸 엄마 생각이 나서 일부러 밖에 나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날은 길을 걷다 쌀쌀한 바람에 뜨끈한 어묵 하나 사 먹으려고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혼자 순대를 드시고 계셨다. 그 모습이 꼭 우리 엄마 같아 순댓값을 계산해 드린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날부터 난 홀로 사는 할머니를 찾아가 반찬도 만들어드리고, 말벗도 되어드리며 정다운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를 혼자 두면 꼭 엄마를 외롭게 두는 것 같아서 자꾸 발길이 향했다. 그러다 근래에 몸이 아파 할머니 집에 며칠 가지 못했다. 걱정돼서 나를 보러 오신 할머니는 "아파서 어쩌냐. 언능 나아라" 하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주셨다. 꼬깃꼬깃한 그 지폐는 할머니가 아픈 다리 두드려 가며 깡통, 박스, 헌 옷가지 등을 주워 팔아 번 돈임을 알기에 받을 수 없었다. 한참 실랑이를 벌였지만 할머니는 기어이 내 주머니에 5만 원을 찔러넣고는 가버리셨다. 다음날 난 반찬 몇 가지를 챙겨 할머니 댁으로 갔다. 할머니가 잠시 한눈판 사이에 할머니 지갑에 돈을 넣어두고 후다닥 나왔다. 할머니는 바로 전화해 "지갑에 이게 뭐꼬? 왜 내 마음을 무시하노" 하고 역정을 냈지만 돈을 돌려드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할머니 집에 모자를 두고 왔지 뭔가. 금세 나를 뒤쫓아온 할머니는 검정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고는 별말 없이 뒤돌아가셨다. 봉지 안에 담긴 건 모자와 5만 원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고생해서 어렵게 번 돈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날 생각해주는 할머니의 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와 왕래하고 지내는 사이, 엄마와 작별한 슬픔으로 상처 난 마음에 새살이 돋아있었다. 난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이용미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68세 주부로 영화 보기, 자전거 타기, 수영이 취미입니다. 언젠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시골 황톳집에서 평화롭게 늙어가는 게 꿈입니다. 요즘 할머니가 무릎이 좋지 않으신데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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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목이 떠난 자리에 |
지난해 가을, 남편이 경남 남해로 발령을 받으면서 서울집을 한동안 비워야 했다. 남편 혼자 지낼 집의 살림살이만 대충 정리해주고 곧바로 올라올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차일피일 미뤄져 두 달이라는 시간이 휙 지나고 말았다. 남편 뒷바라지로 바쁘게 지내다 날이 슬슬 추워지기 시작해서야 오래 비워둔 서울집이 걱정됐다. 특히 베란다에 내놓은 행운목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소중한 화분이어서 이파리까지 꼼꼼히 닦아주며 애지중지 키운 참이었다. 추위에 떨고 있을 행운목이 조금만 더 견뎌주길 바라며 서울로 돌아온 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베란다로 향했다. 역시나 이파리를 축 늘어뜨린 채 힘들어하고 있는 행운목을 보자 '내가 너무 늦었구나' 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부랴부랴 거실로 들여 놓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파리가 녹으며 갈색으로 변하더니 행운목은 결국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무심하여 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몬 것 같아 미안하고 후회스러웠다. 겨울 내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행운목을 괴롭혔던 찬 공기도 서서히 누그러지고 얼었던 땅에 새 생명이 움틀 무렵, 우리 집 베란다에도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어느 날 베란다에 나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머, 여기서 싹이 다 나네?'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행운목이 떠난 빈 화분에서 작은 싹이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마치 행운목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아 반가운 맘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번에는 허무하게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나는 새 식구를 정성껏 보살폈다. 다행히 새싹은 봄기운이 완연해지자 노란 꽃을 피웠고 알고 보니 꽃 이름은 '미나리아재비'였다. 저 스스로 나를 찾아온 미나리아재비는 두고두고 내게 웃음을 주었다. 노란 꽃잎이 바람에 하늘거릴 때마다 앙증맞고 예뻐서 내 입꼬리도 같이 춤을 췄다. 겨울이 얼마나 혹독하든 반드시 봄은 온다고 속삭이는 친구 옆에서 마음이 더 이상 무거울 일은 없었다. 미나리아재비는 지금도 내 옆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중이다.
김재순 서울에 사는 예순을 넘긴 전업 주부입니다. 하루하루 감사해하며 따뜻한 일상을 꾸미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독서모임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책들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아 삶을 더 윤택하게 일구어가고 싶습니다.
덕유산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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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걸음주셔서
감사합니다 ~
편안하고 여유로운
행복한 한 주 보내시고
늘 건승하십시요
~^^
키오스크를 배우기는 했는데
돌아서면 잊어 버려서
가능하면 그걸 사용해야 하는
곳에는 가지 않습니다.
시대를 따라 가야하지만
노인 세대는 옛날 방식대로
사는게 편합니다.
인정도 세월이 변하면서
자꾸만 변해가는군요 !
반갑습니다
소산 님 !
고운 고견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겨울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입니다,,
따듯한 봄이 기다려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보내세요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변함 없이 감동방에 좋은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독감 조심 하시고..
포근한 한 주 보내세요..^^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감사합니다 ~
날씨는 매섭지만
새로이 맞이하는 한 주
지인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좋은 나날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