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호세아 10,1-3.7-8.12 마태오 10,1-7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를 모두
고쳐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가까이”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당신의 삶에 더 깊이 참여하라는 뜻이며, 이것이야말로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더러운 영들이 쫓겨나고 병자와 허약한 이가 치유받는 것은 성경에서 ‘하느님 나라의 승리’를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승리가 당신의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열두 제자의 이름이 “사도”라는 호칭으로 소개됩니다. 복음을 읽으면서 이 부분을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기도 하지만 그 명단에 자신 또는 친밀한 이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본당에서 봉사자를 선발하여 명단을 발표하여도 교우들은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그 명단에 올릴 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어찌 신자들뿐이겠습니까?
사제품을 받으며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야 예언서 6,8)라고 바쳤던 기도가
점차 “쟤가 있지 않습니까? 쟤를 보내십시오.”라는 기도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 제자들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승리를 계속 이루십니다.
그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빠져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봅시다.
대전교구 김인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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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호세아 10,1-3.7-8.12 마태오 10,1-7
예수님의 기적은 사람들의 눈에 놀랍고 특별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기적은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분의 선포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기적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눈앞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 예가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가 왔다는,
하느님의 통치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계속하시려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열두 명의 제자는 예수님에게 권한을
받아 치유의 기적을 이어 갑니다. 마치 구약 성경에서 열두 부족이 하느님 백성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듯이, 열두 제자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나타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은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전하는 셈입니다. 제자들에게 마귀를 쫓아내고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키도록 권한을 주시는 것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라는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선포는 그분의 업적을 통하여,
그리고 그분께서 뽑으신 제자들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현실이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관계는 모든 신앙인에게 옮아갑니다. 모두가 예수님과 같은 권한을
가질 수는 없지만, 신앙인들도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늘 나라가 우리 안에 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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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호세아 10,1-3.7-8.12 마태오 10,1-7
선택된 민족이라는 이스라엘의 자긍심은 그들의 교만과 우상 숭배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윗 왕조의 참된 후계라고 서로 맞서면서 세속적 권력과 이익에
눈이 멀었고, 결국 북 이스라엘은 화려한 성전과 제단과는 달리 위선과 거짓으로
하느님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북 이스라엘을 상대로 호세아 예언자는,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라고 외쳤지만, 북 이스라엘은 물론, 뒤에 남 유다도 이민족에 의해
멸망의 비운을 맞을 때까지 예언자의 회개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하느님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였기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통하여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 모아 새 계약을 맺으시고 새 백성으로 일으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름받은 첫 제자들이 유다 사회의 뛰어난 지식층이나 엘리트는 아니었습니다.
바다에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하는 어부들, 이민족에 빌붙어 먹고 살던 세리, 혁명을 꿈꾸던 사람,
셈에 밝았지만 결국 예수님을 배신한 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아픔을 겪고 사는 이들과 함께 지내시며 메시아의 도래를 예고하시고,
제자들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심으로써 새 계약을 맺으시고,
하느님의 구원의 능력을 온 세상에 선포하게 하십니다.
세속을 벗어나 예수님의 마음을 찾고 수도원 공동체를 세워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고자 했던
베네딕토 성인의 열정이 우리 시대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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