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시에 여름호
은행나무 커튼 외 1편
박윤배
가만가만 사랑이 오려나 봐요
겨우내 문밖을 지키고 섰던 은행나무도
이제야 그리움을 알았나 봐요
무서리 내린 가지에 혼자 앉아 울지도 못하던 새
쓸쓸한 너를 볼 때마다 아리던 가슴도 이제는
눈물빛 보자기를 풀고 있네요
어둡던 방 창문이 열리면
하루를 사는 일, 그날이 그날 같다던
두 그루 은행나무는 다가와 연초록 커튼을 쳐요
달빛이 짙어지는 어느 날엔가는
나무는 고민이 깊었던 것처럼
우리의 커튼도 노랗게 물들 테죠
이제야 너와 나 함께할 두 마리 새
남은 생 머물 순간을 위해
사랑이, 사랑을 데려오려나 봐요
자꾸만, 자꾸만 사랑은 오려나 봐요
'은행나무 커튼' 박윤배 시 박경아 곡 - YouTube - https://m.youtube.com/watch?v=bS7yy8ms9iA&list=PLrFQh27q4nymcxecFIch_17_QCGju2pe2&index=11&pp=iAQB8AUB#bottom-sheet
소행성 B612 그 이후
대장이던 당신이 더 높은 대장에게 불려가
야단맞는 소리가 사과나무를 기어오른다
신에게도 등급이 있다는 걸 안 우리는
그 등급이 같은 서로를 만나서
한 알의 애꿎은 사과가 되어
마주 보며 익어간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매단 것을 두고
수영 규원 춘추는 차례대로 자신 탓이라고 티격태격
하여 사과나무는 흔들린다
도마에 칼을 두고 곰곰 생각에 잠기던 나는
사과가 나무가 아닌 걸 알았다
반으로 쪼갠 나무의 그늘을 별것 아니게 쪼개어 버린 내게
저 나무는 이제 사과를 모른다
썩어 나무속으로 들어가 혼자 사과가 되는 내가
뜨거워진 껍질의 사과 둥근 문밖에서
새 대기 번호표를 뽑아 든 별이 되어
불릴 이름을 기다리고 있다
■박윤배 약력
1962년 강원도 평창출생, 1989년 매일 신춘문예에 시 <겨울판화> 당선되어 등단. 시집 『쑥의 비밀』(도서출판 전망),『얼룩』(문학과 경계사),『붉은도마』(북랜드), 『연애』(책나무),『알약』(시와표현),『오목눈이 집증후군 』(북랜드, 2018) 이 있음. 대구시인협회상. 금복문화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대구경북예술가곡회 사무국장, 경주문예대출강. 대구디카시인협회회장. 시창작원 <형상시학>대표
출처: 대구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겨울판화(박윤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