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셨겠습니다.
저도 수종사 무척 좋아합니다.
누군가 그곳에 가서 차를 마셨다는 얘기만 들어도 저까지 행복해집니다.
조금의 질투도 함께요.
단풍 고운 수종사
눈 펄펄 내리는 수종사
빗소리 속에 잠긴 수종사...
'그리운 수종사' 답사기를 여러 편 쓰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군요.
--------------------- [원본 메세지] ---------------------
빗소리에 운길산 수종사를 떠 올려 어제 낮에 집을 나섰습니다.
짝이 없으니 혼자라도 갈 요량으로 있었는데 혼자 가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딸 아이가 따라 나서더군요.
참으로 오랜만에 딸아이와 함께 산길을 걸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가파르고 먼 길인줄은 상상을 못했지요.
요즈음의 보통 절들이 그러하듯이 차가 그 앞까지 가는 줄 알았는데 길이 너무 가파라서 앞서 가던 차가 그냥 미끄러지더군요.
저는 그 사람이 운전을 못해서 그러나보다 했지요.
그 차는 한 참을 뒷걸음치더니 돌아서 그냥 가 버렸습니다.
저는 힘껏 페달을 밟았지만 제 차도 조금 올라가다 그냥 미끄러지는 것이 겁이 덜컥 나더군요.
그렇게 조용한 절집에 차를 몰고 편히 가려는 마음을 책하는 것 같았습니다.
할 수 없이 차를 밑에 세워두고 걷기 시작했지요.
아이는 이럴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라며 저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딸 아이와 함께 오르는 산길이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물기 머금어 촉촉한 기운이 감도는 산 속의 나무들이 내뿜는 산내음이 기운을 북돋아 주었고,
더구나 한 구비 오를 때 마다 내려다 보이는 두물머리 강이 가슴을 후련하게 해 주어 더욱 즐거웠습니다.
근 1시간을 쉬엄쉬엄 오르니 수종사가 보이더군요.
힘들다며 불평을 하던 아이도 어느새 잊었나봅니다.
평일 오후여서인지 인적이 거의 없는 절은 아주 고요해서 말소리,발걸음소리를 내기가 민망할 정도였지요.
절집이 이 곳 저 곳에 손을 보느라 다소 어지럽기는 해도 깨끗하게 정돈된 삼정헌 마당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의옹주의 부도와 8각 5층석탑이라는 것도 눈에 띄어 보았지요.
아직 그 쪽으로는 무식해서 그냥 한 참 바라만 보았습니다.
삼정헌의 문이 닫혀있고 댓돌위에 벗어놓은 신발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차 손님은 없는가봅니다.
그냥 돌아나올까 하다 섭섭하여 다실 문을 살며시 여니 종무소에 계
시던 보살님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어나오시더군요.
차 마시는 법을 아느냐고 하기에 모른다고 했습니다.
전에 잠시 들어보긴 했지만 안다고 할 수 없기도 하지만 딸아이에게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지요.
덩치는 크지만 아직 아이라고 생각했던 하늘이도 그 자리에서는 조신하게 앉아 진지하게 듣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둘이 차실에서 차를 마시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니 기분이 너무 좋더군요.
아이가 고등학교를 들어간 이후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우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주 올 수는 없지만 계절에 한 번씩은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