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헤븐
장진의 코미디는 슬랩스틱도 아니고 세태풍자도 아니다.
그의 코미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다수와는 다른 방향으로 세계를 보는 시선의 차이는
신선함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스타일의 방법론에서
대중친화적 연결고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영원한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
장진 감독은 항상 스스로를 주류 밖으로 밀어낸다.
웃음은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장진 코미디의 특징은
웃음의 타이밍을 의도적으로 반박자 빠르거나 늦게 설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엇박자 스타일은 그의 본질적 체질이기 때문에
장진 영화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뛰어난 각본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친화력과 보편성을 갖는 작품이 드물었다.
오히려 [웰컴투 동막골]처럼, 그의 각본을 다른 감독이 연출할 경우
더 빛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진 코미디의 밑바탕에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대긍정이 자리잡고 있다.
그 긍정의 힘이 그를 시니컬하면서도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만들지 않는다.
[로맨틱 헤븐]은 장진의 코미디가 더욱 따뜻해지고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니컬한 자리에 따뜻한 사랑의 힘이
밀고 들어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로맨틱 헤븐]은 세 사람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각각 다른 사연들이 펼쳐지지만
죽음과 결부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 혹은 그 주인공 자신이 사후에 천국으로 간다는
공간적 공통점을 갖는다.
[로맨틱 헤븐]은 죽음을 매개로 천국이라는 공간적 보편성을
지상으로 확대시키려고 한다.
변호사 민규(김수로)는 투병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소품들이 들어있는 빨간 가방까지 함께 사라져
아내를 추억할 물건들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에 절망한다.
미미(김지원)는 암투병중인 어머니를 살려내기 위해서 골수기증자를 찾아나서는데
애인을 죽이고 수배중인 청년이 어머니와 골수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고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서를 매일 드나들면서 청년을 찾으려고 한다.
택시를 운전하는 지욱(김동욱)은 옆 자리에 탄 할머니가
죽음을 눈앞에 둔 자신의 할아버지가 언제나 잊지못하는
첫사랑 분이(심은경)라는 것을 알고 할아버지와 만나게 하려고 한다.
세 사람의 화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천국이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천국에는 흰 양복을 입은 멋진 노신사 하느님(이순재)이 있다.
죽은 사람들은 모든 것이 평화롭고 따뜻한 그 천국에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신다.
교통사고로 천국에 오게 된 동욱은 자신의 헤드폰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의 몸이 아직 지상에서 완전히 숨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옆 자리에 앉았던 손님 분이가 죽기전
지상에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려고 한다.
내러티브 연결구조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진의 [로맨틱 헤븐]은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삶에서 죽음은 언제나
낯설고 화제의 변방으로 빌려나 있다. 저곳이 아주 낯선 곳이 아니라
이곳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장진은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저곳과 이곳을 잇는 시도가 거칠고 투박하지만
[로맨틱 헤븐]은 장진의 시선이 더욱 긍정적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