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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 심양 (Shen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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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中國 안산- 사랑방 스크랩 추천 → 중국안산시 조선족현황(1)
개발구(開發區) 추천 0 조회 385 06.11.20 12:2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안산시 천산구 송삼대자(鞍山市 千山區 宋三台子)는 당초에는 달도만진(達道灣鎭)에서 송삼대자로 행정구역명을 변경하고 현재는 진풍촌(振豊村)(2004년도에 명명)으로 명명하였으며 이 곳은 중일전쟁시기 고사포병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양지포(陽氣浦)에 일본인 포대가 있던 군사지역이었다.
송삼대자에는 모두 9개 촌이 있다. 이곳을 흐르는 운양하(運糧河)(천산이 수원)는 물 조건이 좋고 농사가 잘되어 해마다 인구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안산 공업 단지로 인해 물이 오염되어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해방이후 조선족이 들어와 개발되었으며 길림, 반석 일대에서 주로 이주해 들어왔다. 이 곳은 한족이 한전을 일구었으나 1955년 이후 조선족에 의해 수전 개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조선족 2호가 들어와 수전을 시작하였고 이후 이주자가 증가하여 39호 정도 형성되면서 이 일대가 수전농으로 개척되었다. 당초 한족과 혼합되어 3개의 생산대로 시작하였다가 1963년 40호가 소대로 독립하여 제4 생산대를 이루었다. 즉 혼합촌에서 독립촌으로 발전하였다. 현재는 독립촌에 80여호 370명이 거주하며 전체적으로는 115호에 44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100여명이 한국, 일본, 미국 등지로 취업해 나가 있다. 진풍촌내의 한족은 200여 호가 살고 있다.
이 마을의 초기 이주자인 백동섭(白東燮81세)옹은 경남 함양군 대남리 출신으로 9살에 중국으로 이주하여 1933년에 반석 영통산으로 이주하였다. 안산에는 1950년 안산에 이주해 와 시내에서 살다가 중국인의 제안을 받고 갈대밭인 이곳을 수전으로 일구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반석일대에서 이주해 온 이들과 경상도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1954년에는 영낙구, 대련 등지에서 45호정도가 이주해와 함께 수전농업을 하였으며 인민공사 이전에는 호조조로 활동하며 7가구가 1만㎡당 1인당 500근씩을 납부하고 나머지는 개인 수입이었으며 대대에서 품삯 노임을 별도로 받았다. 그는 탈곡하다가 기계에 손가락을 잘렸고 2004년도 가을 뇌출혈로 신체 상반의 반을 쓰지 못하나 그것을 제외하고는 정정하다. 1946년에는 군에 입대하여 길림성 현대대성정부 참모를 지냈으며 1948년 해방군에 참전했다가 반석에서 부상을 입고 1950년 3월에 제대하였다. 현재 한달에 170원씩 연금을 받고 약값으로 1년에 300원씩 지급받고 있다. 현재살고 있는 집은 5년 전 7만 5천원을 들어 새로 건축하였다. 백동섭옹은 며느리 김정애 (47세)와 같이 살고 잇는데 그녀의 부모는 경남 거창군 출신으로 중국에 이주해 왔으며 길림 설안에서 출생하였다. 남편 백정길(48세)은 한국 동두천 양원리에 취업하여 돼지 사육을 하며 맏딸은 일본 요코하마에 유학중이고 둘째 딸은 심양사범학교 유학 중이다.
1962년에 설립된 형양기조선족학교는 4년 전인 2001년도에 폐지되고 현재는 송산태자 학교로 통합되었다. 이 곳 조선족들의 설 세배 풍습은 점차 사라지고 떡국을 하고 전을 부치는 정도의 집이 있지만 이도 점차 사라지고 중국 풍습인 만두를 빚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자손들 대부분이 외지에 나가 가족적인 조선족 특유의 풍습이 약화되고 있다. 조선족 여자가 없어 한족 여자와 혼인하는 조선족 남성들이 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6호가 중국인 며느리를 보았다. 이곳 역시 젊은이들이 한국바람에 젖어 한탕주의에 물들어있지만 한족 부인을 맞이한 성실한 한 청년은 집에서 국수를 만들고 부인은 시장에서 판매를 하여 억척스럽게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그 녀는 조선족 풍습도 잘 따르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조선족 못지않다고 자랑을 하고 있었다.
이곳의 조선족노인협회는 74명의 회원이 있으며 여자는50세로, 남자는 55세로 연령을 낮추었다. 촌 정부에서는 그들 노인들에게 년간 1만원으로 지원한다. 현재 노인회 회원은 마작, 화투, 윷놀이, 장기놀이, 민속놀이 등을 하면서 여생을 즐기고 있다.

일제시대 포대의 자리 마을 의 농지 중앙에 있다. 2002. 2. 송삼대자

일제 시대의 군수품 창고, 포대와 이웃해 있다. 2002. 2. 송삼대자


2-2021. 노인회장 박창환(桂昌煥 70세)옹은 할아버지가 9세 때 중국으로 이주, 1961년 통하현에서 심양을 거쳐 이곳으로 와서 회계를 보다가 회장을 맡고 있음, 슬하에 3남 1녀를 둠, 2002. 2. 송삼대자


노인회관의 도서와 비품들. 2002. 2. 송삼대자


보름날 사용할 윳판을 제작하고 있다. 2002. 2. 송삼대자


2-2028. 2-2029. 한족과 결혼한 청년, 그는 집에서 일군들과 함께 국수를 뽑고 부인은 시장에서 판매를 한다. 그리고 수입이 어느 정도 쾌도에 오르자 그들은 두 자녀를 두었다. 2002. 2. 송삼대자


2-2027. 김여인 집 움에서 나온 김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002. 2. 송삼대자


2-2026. 한국으로 취업간 남편과 일본, 심양에서 공부하고 있는 두 딸을 둔 김정애 (47세), 고향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2002. 2. 송삼대자


3-2030. 10여 년간 촌장을 역임한 박행관(朴行寬, 46세)씨는 안산시에서 버섯재배 농원으로 있다가 요령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형님 박행만(52세)의 기술지도로 50만원을 투자하여 만평의 비닐하우스에 팽이, 표고, 양송이 버섯 등의 재배를 시작하였다. 2002. 2. 송삼대자
 
안산시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대표자 원동수(원 안산강철공사 부총경리 겸총경제사)
전화 0412-841-0769
팩스 672-5420
이메일 yuandz10@hotmail.com
홈페이지
주소 鞍山市鐵西區民生路242号
담당 ....
설립 1999-07-31
안산시 조선족 문화예술관
대표자 정해룡
전화 0412-841-3265
팩스 841-3265
이메일 zhl7225@hanmail.net
홈페이지
주소 鞍山市鐵西區人民路 222号
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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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12.02 17:39

    첫댓글 좋은 정보입니다... 깐씨에 닌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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