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틀림없이 애비없이 큰 놈일 거야. -
권다품(영철)
살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중에는 온갖 사람들들이 다 있다.
온갖 얘기를 다 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인사정도만 하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말마다 욕이 섞여 같이 말을 붙이기가 피곤한 사람도 있고, 아는 척하면 손해만 볼 것 같은 얄팍한 사람도 있다.
얘기를 하다보면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은, 인격이라곤 아예 없는 듯한 그런 인간도 있다.
그래도, 나이가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웬만한 건 이해하고 참는 게 좋겠다'싶고, 또, 내 급한 성격을 좀 닦아내야 겠다 싶기도 해서, 참으려고 애를 쓰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열고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오늘 정말 더럽고 지저분한 놈에게 정말 더럽고 지저분한 경우를 겪었다.
색소폰을 배운지가 1년이 조금 넘었다.
여태까지는 살기 바쁘고, 자식들 뒷바라지 하기도 바쁘다보니, 취미 활동도 모르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젠 뭐라도 취미 생활 하나쯤은 해야겠다 싶어서, 색소폰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술을 끊다보니 특별히 정성을 쏟아야 할 곳이 필요했고, 또, 이 기회에 젊을 때 배우고 싶던 색소폰이라도 한 번 배워야 겠다 싶기도 했다.
게으름이 날 때는 게으름도 피우고, 또, 쉬기도 하면서 , 그냥 편안한 놀이터처럼 색소폰 교실을 드나들었다.
드나들면서 나는 여러모로 조심을 했다.
나는 혹시라도 배우러 오는 사람들 중에 혹시라도 내가 경영하는 학원의 학부모도 있을 수 있고, 우리 학부형들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들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그렇고 해서, 여러가지로 다른 사람보다는 더 조심을 하고 있는 터다.
남에게 인사를 받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기분좋은 일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오늘도 색소폰 교실에 들어서니 이 방 저 방에서 연습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우선 들어서면서 난로가에 앉은 사람들에게 먼저 웃으면서 크게 인사를 했다.
방에서 연습을 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하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다들 반갑게 맞아 주고, 활짝 웃어주는 그 밝은 웃음들도 보기가 좋았다.
그런데, 어느 방 앞에서 노크를 했는데 대답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노크를 하면 문을 열어보는데, 문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연습하는 소리를 듣고 노크를 했는데?
나는 누가 장난하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문을 밀어보았다.
열리지 않는다.
분명 잠긴 건 아니었다.
안에서 무릎으로 밀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순간 '아, 그 새끼구나' 란 생각이 들면서, 전에 있었던 일이 다시 생각났다.
늦은 저녁 시간쯤의 일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내가 경영하는 학원 문을 닫으려면 시간이 좀 많이 남았길래, 바람도 쏘일 겸 내려오고 있는데, 색소폰 교실의 불이 켜져 있었다.
길거리에서도 색소폰 소리가 들리길래 누굴까 싶어서 문을 밀어봤다.
문이 잠겨 있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계단 내려가는 소리와 문 여는 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색소폰가 딱 멈춰지더니, 불이 꺼지면서 조용했다.
상식적으로 밖에서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안에 있다가도 나와봐야 할 것인데, 켰던 불마져 끈다?
색소폰을 훔쳐가는 애들이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설나, 그럴 리야 있을까 하면서도, 그래도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일일이 방문을 열고 확인을 했다.
그런데, 내가 문을 하나 하나 열어보는 소리가 들리면, 같이 배우러 오는 사람이라면, 문을 열고 나와 보는 게 당연하겠다.
혹시 하는 생각에 문 하나하나를 밀고있는 내 손에서 긴장이 느껴졌다.
여차하면 한방으로 기선을 제압해얀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주먹에다 으고 방 하나 하나를 확인해 갔다.
그런데, 어느 방이 열리지 않았다.
내 손에 '안에서 밀고 있다'는 느낌이 딱 전해온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주먹어다 힘을 더 많이 주고 문을 밀었다.
"누고?"
흉기를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긴장되는 가슴을 누르며 노크를 했다.
대답이 없었다.
문을 밀어보았다.
안에서 밀고 있다는 느낌이 그대로 딱 느껴졌다.
더 힘을 줘서 확 밀었다
그때 안에서 밀고 있던 힘이 풀리며 문이 열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같이 연습하러 오는 회원이 아닌가!
이해가 안 갔다.
'왜 그랬을까? 왜 불던 색소폰을 멈추고, 없는 것처럼 불까지 끌까?'
확 짜증이 났지만, 애서 웃으면서 얘길 했다.
"불을 왜 끄고 있노? 놀랬다 아이가!"
"아, 아, 그냥예. 불끄고 연습 한 번 해 본다꼬예."
말을 더듬거리고 평소의 말투와는 다르다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불끄고 연습해 본다고? 그럼 이 친구는 불던 색소폰을 갑자기 멈추고 급히 불을 끈 걸, 내가 모른다 싶어서 이렇게 쪼잔한 변명을 한단 말인가!'
나는 그 친구가 미안해 할 것 같아서, "아~! 해놓고는 그냥 나와 버렸다.
그런데 오늘 또 이 따위 짓을 한다?
'참 이상한 성격이다' 싶기도 하고, 또, 연습하는데 방해한 것 같기도 해서 무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곳은 "여기 오면 문을 열고라도 제발 인사는 하고 지내자."고 말이 오간 터라,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차피 노크를 했고, 또, 문을 밀다가 그냥 나온다는 게 그렇기도 해서, 문을 밀고 들어가서 또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아! 00이가? 언제 왔더노?"
내 나이가 자기보다 훨씬 많고, 또, 문을 밀면서 인사를 했는데도, 인사는 커녕 자리에서 일어난다거나, '대가리'도 숙이지 않고, "잠시만 예, 쪼매만 있다가 나갈낍니더." 요따위 말이 끝이었다.
나는 순간 '이런 호로새끼가 있나!' 싶었다.
노크 소리를 듣고도 문을 열어보기는 커녕, 무릎으로 문을 밀고 있다?
도대체 저 호로새끼는 어떤 인종일까?
어떤 성격의 소유자일까?
어떤 집구석에서 자랐을까?
도대체 그 부모들은 어떤 인간들이기에 저런 새끼를 자식이라고 키웠을까?
그래도 밖에 같은 회원 누군가가 왔다 싶으면, 잠시 내다보고 인사를 하는 게 맞을 것 같고, 또, 누군가가 노크를 하면 문을 열고 내다보고 인사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예의일 것이다.
그런데, 부모 형제도 없이 호로새끼처럼 막 자랐을 것 같은 이 새끼는, 밖에서 노크를 하는대도 무릎으로 문을 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각박하고 자기 기준으로만 살아가는 세상이라지만, 어떻게 그런 호로새끼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화가 머리 끝까지 차 올랐지만 참았다.
화를 눌러 참고 있는데 "쪼매만 있다가 나가께예" 하던 놈이 한참 있다가 악기를 들고 나온다.
"출근 시간이라서 예."하는 말만 남기고, 아무에게도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또 횡하니 나가 버린다.
그 놈이 하도 다른 사람 험담이나 상소리를 많이 하고, 또, 입에 담는 말들이 너무 천박해서 맘을 줄 수 있는 놈은 아니다 싶기는 했다.
그래도,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이 먼저 인사를 하는데,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길래, 저런 호로새끼 짓을 할까?
혹시, 내가 안 좋게 받아들여졌을 순 있겠다.
그래도, 같은 연습실을 쓰고, 가끔 술자리에도 앉았고, 밥도 같이 먹었던 놈이다.
그런데, 이런 호로새끼 수준의 짓을 할까?
같은 연습실 사람들이 "우리 한 잔 하러 갈 건데, 갈래?" 하면, "나는 친구가 온다캐서 가봐야 되는데예." 하면서 간다.
그런데, 다른 술집에서 색소폰 교실 여자들 속에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는 놈이긴 하다.
그래서, 동호회원들은 "남자친구들이 없고 여자들과만 어울린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요 정도로 작은 놈이고 거의 정신병자 수준일 줄은 몰랐다.
마음에서 지우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그런 놈은 내 주위에 두고싶지 않다.
옛날 어릴 때, 행동을 함부로 하면, 아버지께서 "그런 말 하마 애비없이 자란 호로새끼라는 말 듣눈다. " 이런 야단도 들었다.
내가 세상을 험악하게 살긴 했었다.
그러나, 저런 더럽고 재수없는 놈은 또 처음이다.
저런 놈으로부터 나 자신이 더 더러워지기 전에 지워 없애야 겠다.
오늘은 참 재수없는 날이었다.
2011 년 1월 24 일 오후 5 시 2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