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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12월22일(일요일) 석파정 서울미술관 탐방일정
탐방지 : 석파정 서울미술관
[석파정 서울미술관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사립미술관으로 흥선대원군의 별서인 석파정을 함께 관리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 개관한 석파정서울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주제로 한 다양한 기획전시를 선보인다. 이탈리아 현대 조각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아이콘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를 비롯해 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중섭의 <황소>를 비롯해 천경자와 나혜석, 박수근, 신사임당 등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어 정기적으로 마련되는 소장전도 매번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감상프로그램과 다양한 창작 활동도 활발하게 운영된다. 통합입장권으로 미술관 전시와 석파정을 모두 관람할 수 있으며, 석파정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부암동 일대 전경도 아름답다.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11길 4-1
영업시간
서울미술관 수요일~일요일 10:00 - 18:00 (서울미술관 입장 마감 17:00)
석파정 : 수요일~일요일 10:00 - 17:00 (석파정 입장 마감 16:00)
가격표
성인 통합입장권 : 20,000원
초중고 학생 통합입장권 : 15,000원
우대/어린이(36개월이상) 통합입장권 : 13,000원
무료 입장 대상 : 어르신(65세 이상)과 장애인 및 보호자 1인
전화번호 : 0507-1446-0100]
탐방코스: [석파정 버스 정류장~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를 관람~석파정 탐방~석파정 버스 정류장]
탐방일 : 2024년12월22일(일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서울 종로구 부암동 최저기온 영하6도C, 최고기온 1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1시간51분 소요)
12:00~12:10 연신내역에서 3호선을 타고 홍제역으로 가서 홍제역 1번 출구로 나옴 [10분 소요]
12:10~12:18 홍제역 1번 출구에서 유진상가 정류장까지 도보로 이동 [8분, 478m 이동]
12:18~12:30 유진상가 정류장에서 석파정 정류장으로 가는 7018번 버스 승차 대기
12:30~12:41 7018번 버스를 타고 유진상가 정류장에서 석파정 정류장으로 이동 [11분, 7개 정류장 이동]
12:41~12:43 석파정 정류장에서 탐방출발하여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231 번지에 있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으로 이동 [2분, 121m 이동]
12:43~14:00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를 관람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시기간 2024.06.08.(토) ~ 2025.02.28.(금)]
[현장스케치] 예술가들의 독창성인 예술성을 그들이 직접 쓴 글과 함께 조명하다, 2024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핸드메이커 기사 승인 : 2024.06.21. 09:00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서울미술관은 2024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I’m fine, and you?》를 12월 29일까지 진행한다. 본 전시는 서울미술관의 개관 10주년 기념전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Fear or Love》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서울미술관의 대형 소장품 전시다.
지난 2022년 4월,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며 개최했던 《두려움일까 사랑일까》전시는 한국 근현대 거장들의 주요 작품들을 집대성한 초대형 소장품 전시다. 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 회장의 수집 이야기를 담은 「수집가의 문장」을 통해 미술품 수집 과정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며 14만명이 넘는 관람객의 호평을 받으며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계절감이 느껴지는 자연의 소재를 활용하여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작품에 담아낸 신사임당의 <초충도>, 추사 예술의 정수라 평가받는 추사 김정희의 <주림석실 행서대련> 등 조선 시대 미술에서 출발하여, 서구의 미술 양식을 독자적으로 수용한 한국 근대 회화를 집대성하여 한국 미술사가 전개된 궤적을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추사 김정희는 19세기 한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시와 산문, 그림과 전각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위인으로 손꼽힌다. 최고급 종이와 먹으로 제작한 <주림석실 행서대련>은 글자의 구성과 획의 운용에 있어 추사 행서의 표준이 될 만큼 빼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행서’는 한자 서체의 일종으로 약간 흘려 쓴 글씨체를 말하며 ‘대련’은 두 폭의 축으로 된 작품을 일컫는 말로, 내용과 양식이 서로 연결 또는 대칭되는 도상을 배치하거나 글자 수를 맞춰 구성한다. 두 폭 간 내용의 조화나 필획의 굵기와 흘림에 있어 유려함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추사 예술의 정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추사는 석파 이하응과의 친분으로 석파정을 종종 찾았으며, 그의 대표작 〈세한도〉는 석파정과 석파정의 정원수인 천세송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의 예술가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바탕으로 산수화, 묵포도, 초충도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고급 한지인 감지 위에 그린 초충도 10점을 소개한다. 열 점이 하나의 화첩으로 제작된 본 작품은 수박, 오이, 맨드라미, 꽈리, 잠자리 등 계절감을 드러내는 자연의 소재들을 활용하여, 소재에 담겨있는 다산, 장수, 출세 등 복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작품에 담아내며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초충도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대상 자체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가장 먼저 보시는 작품에 등장하는 붉은 꽃은 ‘맨드라미’다. 맨드라미는 닭 벼슬 모양을 닮아 ‘계관화’라고 불리는데, 벼슬이나 관직에 오르는 것을 상징하는 소재다.
바로 옆에서는 수박과 들쥐를 그린 작품이 있다. 수박은 아프리카가 원산지이나, 연산군 실록에는 당시 수박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넝쿨식물이자 씨가 많은 수박은 자손이 넝쿨처럼 번성하라는 의미와 함께 다산을 상징하는 소재다. 수박 주위에는 수박씨를 주워 먹는 들쥐가 그려져 있다. 쥐는 짧은 임신 기간동안 한 번에 아홉 마리까지 새끼를 낳을 수 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수박과 같이 다산을 상징한다.
이처럼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계절감이 느껴지는 자연의 소재들을 활용하여 소재에 담겨 있는 다산, 장수, 출세 등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작품에 담아내며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초충도는 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나 사임당의 초충도는 동시대를 살았던 문장가부터 임금에 이르기까지 호평을 받았고, 예술가로서 사임당의 천재성을 극찬하는 많은 문헌이 전해지고 있다.
신사임당에서 출발한 전통 동양화 필법은 이후 이응노, 천경자와 같은 동양화가들에 의해 현대적인 동양화로 계승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필치를 통해 수탉의 씩씩하고 굳센 기운을 생동감 넘치게 담아낸 이응노의 <수탉>과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천경자의 <개구리>, <새>, 그리고 천경자의 여인상을 대표하는 <고>, <청혼>, <청춘> 등을 소개한다.
김기창은 8살에 장티푸스로 인해 청각장애를 얻었으나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이며 이당 김은호의 제자가 되어 그림을 배웠다. 김기창은 섬세한 필법을 바탕으로 사람은 물론 말, 소, 새 등 동물 묘사에도 탁월한 실력을 선보였다.
<태양을 먹은 새>는 완숙의 경지에 도달한 김기창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김기창은 이 작품을 ‘나의 분신과 같이 아끼는 작품이다. 비록 소품(小品)이긴 하나 우주로 비상하여 우주 자체를 집어 삼키고 싶은 내 심정의 표현이기도 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상화의 주요 기법 중 하나인 생략과 우연성을 바탕으로 순수하고 열화와 같은 불덩이의 화신이 된 김기창의 자화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는 김기창의 인물화 <미인도>도 소개된다. 일본 채색화에 능했던 이당 김은호를 사사한 김기창은 일본 채색화풍 시기 한국 전통 미인의 단아함을 표현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미인도>는 한복 위에 모피를 두른 여인의 모습을 통해 당시 전통적인 여인상을 현대적으로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이응노 <수탉>은 동양화의 전통을 기반으로 서구의 추상을 수용하여 현대적인 동양화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이응노의 작품이다. 전통 사군자 작가로 미술에 입문했던 이응노는 1937년 일본 유학을 통해 서구의 새로운 화풍을 습득했다. 전통 서화의 필묵법을 응용하되 서구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도입하여 자연의 이미지를 주관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던 이응노는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본격적으로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추상작품을 제작했다.
이응노의 <수탉>은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필치를 통해 수탉의 씩씩하고 굳센 기운을 생동감 넘치게 담아낸 작품이다. 예로부터 수탉은 싸움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는 용맹스러운 동물로 간주되었다. 또한 새벽을 깨우는 수탉은 어두운 새벽을 몰아내고 새로운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동물로서, 많은 예술작품에서 희망과 활기찬 시작을 상징하는 소재로 등장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수탉> 또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나갈 듯한 수탉의 굳센 기개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강인한 의지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의 화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 한의 정서를 여인과 꽃에 투영한 채색화를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새>는 꽃과 새를 좋아했던 천경자의 대표작으로, 우아한 새의 자태와 화려한 꽃이 조화로운 색채로 어우러져 있다.
물감과 물을 하나의 붓에 묻혀 농담을 조절해 가며 그린 천경자의 <개구리>는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개구리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천경자는 한번 붓을 들면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서 화면 가득 개구리를 그려 넣었는데, 생명력 넘치는 개구리를 통해 천경자의 열정과 에너지를 만날 수 있다.
그 외에도 천경자의 여인상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고(孤)>, <청혼>, <청춘> 작품을 소개한다.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여인은 오랜 세월 자신이 겪었던 외로움과 아픔을 그림으로 치유하고 있는 천경자 스스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며 K-아트를 대표하는 한국 미술의 독자적 화풍으로 인정받은 단색화를 한 공간에서 소개한다. ‘물방울 작가’로 알려진 김창열의 <회귀>, 서세옥의 <사람들>, 한국의 서정성을 화폭에 옮긴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김환기의 <십만 개의 점>, 정상화의 《무제》 연작, 이우환의 <바람>등 단색이 가지는 다양성을 실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수행과도 같은 행위를 선보였던 한국 근현대 화가들의 200호 이상 초대형 작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물방울 작가’로 알려진 김창열은 극사실적인 필치로 그려낸 물방울 이미지를 통해 빛과 그림자로 만들어진 환영을 보여준다. 프랑스에서 활동할 당시 우연히 세면대에 맺힌 물방울에서 모티브를 얻은 김창열은 마대에 물방울이 몰려 있는 《물방울》연작, 천자문 위에 물방울을 그린 《회귀》연작을 선보였다.
김창열의 화면에서 물방울은 거친 표면 위에 알알이 놓이거나 스민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화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착시현상을 일으키며 현상과 본질의 신비를 동시에 체험하게 한다. 작가는 거친 표면을 가진 바탕의 물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이러한 표면에 맺히기 어려운 영롱한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그려 내어 이질감을 형성한다. 김창열은 물방울을 일컬어 ‘아무것도 아닌 것’, ‘무색무취하고 뜻이 없는 것’ 이라 말하는데, 그렇기에 김창열의 물방울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정상화는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파리와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 국제 전시에 한국 작가로 출품하며 이름을 알렸다. 정상화는 시각적인 요소를 최대한 축소하고 재료의 물성을 강조하며 작품에 철학적인 성찰을 담아냈다.
정상화의 예술은 그리는 것 대신 ‘뜯어내기’와 ‘메우기’로 창조된다. 작가는 약 3~4mm 두께로 고령토와 접착제를 섞은 징크 물감을 캔버스에 초벌로 칠한 후, 물감이 완전히 마르면 캔버스를 가로 세로로 접어가면서 바둑판무늬의 균열을 만든다. 이후 선택한 부분의 물감을 하나씩 떼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아크릴 물감을 몇 겹으로 채워 넣어 스며들거나 뭉치게 한다. 이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정상화의 단색화는 색채가 가진 단순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단색이 가질 수 있는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엄선한 명작을 통해 예술가마다의 독창적인 예술성을 조명하는 것은 물론, 예술가들이 직접 쓴 편지와 글을 함께 소개하여 예술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각적으로 고찰하였다. 참고로 작가의 글과 함께 보이는 일러스트는 서울미술관 디자이너 팀이 직접 작업한 것.
작품에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성찰적인 모습, 예술가로서 개인의 이상과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고뇌했던 한 가장으로서의 모습, 아내를 열렬히 사랑했던 남편으로서의 모습 등 열정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예술가들의 글에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스며들어 있다.
전시의 제목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이렇듯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예술가들의 강인한 정신과 가족, 지인을 향한 애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미술관의 신소장품을 두루 공개한다. 추사 김정희의 <주림석실 행서대련>(19C), 이우환의 대표작 <대화 Dialogue>(2020), 정상화 <무제 12-5-13>(2012), 1954년 아들 태현에게 쓴 이중섭의 편지화를 최초로 공개한다.
과감한 여백이 돋보이는 구조와 음과 양,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듯 붉은색과 파란색의 강렬한 색채대비가 돋보이는 이우환의 <대화>는 긴장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선사하며, 작품의 제목과 걸맞게 작품과 감상자 간의 상호작용에 집중한다. 서울미술관은 이우환의 작품을 명상하듯 감상할 수 있도록 ‘무한의 공간(Eternal Space)’이라는 특별 공간에 작품을 집중도 있게 설치하였다.
밝은 원색의 점과 선으로 농원의 풍경을 생동감 넘치게 담아낸 이대원의 <배꽃>이다. 이대원은 어려서부터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가 아닌 법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대원은 심산 노수현에게 사군자와 글씨를 배우며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을 터득했다.
동양화 기법을 터득한 이대원은 서양화의 재료인 유채물감을 사용하여 동양화의 기운생동을 화폭에 담아냈다. 눈에 보이는 나무의 모습을 담은 화면에는 구상적인 측면이 있으나 색채와 구도에서는 전통적인 원근법과 투시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연을 해석한 이대원만의 작가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과 빛의 향연이 돋보이는 이대원의 작품은 언뜻 신인상주의의 점묘법을 연상시키지만, 생동감 있는 빠른 필치로 구현된 무수한 선과 점은 동양화의 준법을 계승한 것에 가깝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이중섭의 미공개 편지화이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인 ‘Special chapter – 이중섭의 사랑과 우정’ 에서는 이중섭이 연애 시절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냈던 엽서화 6점과 유족이 평생 소장하였던 이중섭의 미공개 편지화를 소개한다.
생전 가난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사후 후대인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화가로 기억되는 이중섭은 캔버스와 물감뿐만 아닌, 은지화, 엽서화, 편지화 등 재료와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과 기법을 창안해냈다.
일본 유학 시절 도쿄 문화학원에서 만난 이중섭과 야마모토 마사코는 연인이 되었고, 이중섭은 마사코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아 엽서를 보냈다. 활자로 된 사랑의 메시지 대신 이중섭은 자연의 구상적인 소재부터 기하학적인 무늬까지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마사코를 향한 열렬한 마음을 전했다. ‘사랑의 기호학’이라고 불리는 이중섭의 엽서화는 오늘날 은지화와 더불어 이중섭을 대표하는 장르로 여겨진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이중섭의 미공개 편지화를 최초로 공개한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져야만 했던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1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화가였던 이중섭은 글과 더불어 가족과의 추억이나 재회하고자 하는 열망을 그림으로 담은 편지를 전했고, 오늘날 이중섭의 편지들은 ‘편지화’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편지를 담고 있던 편지봉투에 적힌 날짜로 보아 본 편지는 1954년 10월 28일에 보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중섭의 편지에 정확한 날짜가 기재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편지의 경우 편지봉투에 일자가 적혀 있어 편지를 발송한 날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봉투에는 서울시 종로구 누상동에 거주했던 이중섭의 주소와 일본 동경 세타가야구 미슈쿠에 거주했던 태현, 태성의 주소가 상세하게 적혀 있어 이 시점 이중섭과 가족들이 머물렀던 장소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편지를 끝으로 이중섭은 국전 개막일이었던 11월 1일, 종로구 누상동을 떠나 마포구 신수동으로 이사했다. 기존에 살고 있던 누상동의 집은 친구 정치열의 집이었는데, 정치열이 집을 팔며 이중섭은 사촌 형 이광석 판사가 내어준 방으로 이사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편지는 누상동 시절 이중섭의 마지막 편지로 추정된다. 봉투는 현재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
본 전시에서 소개하는 편지화는 1954년 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로, 이중섭이 마포구 신수동으로 이사가기 전, 종로구 누상동에서 쓴 마지막 편지다. 이중섭은 추운 겨울, 통영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전해준 양피 점퍼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 아들에게 전했다. 아빠는 친구들이 준 양피 점퍼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가족을 안심시키는 이중섭의 가장으로서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중섭의 편지화에는 이중섭이 즐겨 그렸던 도상들도 확인할 수 있다. 두 팔을 벌려 아들을 안고 있는 마사코와 이중섭을 중심으로 가족이 원형 구도를 이루는 모습은 단란한 가족을 연상시키며, 네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이중섭의 소망을 드러낸다.
편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재는 ‘복숭아’다. 천도 복숭아는 악한 기운을 막는 벽사의 힘을 지니고 있어 신선의 과일로 알려져 있고 복숭아 나무가 무성한 곳은 ‘무릉도원’ 이라 칭하며 이상향을 뜻한다. 이중섭은 부처와 같은 자태를 취하고 있는 마사코와 탐스러운 복숭아 위에서 놀고 있는 아들들의 모습을 통해 천국에 있는 가족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중섭에게 점퍼를 전해준 통영의 친구들은 이중섭의 피난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 불리는 ‘통영 시절(1953년 11월 ~ 1954년 5월)’에 이중섭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던 유강열(劉康烈, 1920~1970)을 비롯한 친구들로 추정된다.
이중섭이 부산에 머물던 시절 공예전람회 참석을 위해 부산에 자주 방문했던 유강렬은 자신과 같은 함경북도 출신이었던 이중섭과 교유했고, 통영으로 오라는 유강렬의 권유에 따라 이중섭은 1953년 11월 통영으로 떠났다. 유강열이 마련해 준 거처에 머무르며 이중섭은 어느 때보다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웠고, 오늘날 이중섭 역작의 대부분이 통영 시절에 제작되었다. 또한 이중섭은 유강열의 도움을 받아 경남공예기술 양성소에 강사로 출강하며 학생을 지도하기도 했다.
그 시절, 이중섭이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응원해 주었던 친구들과의 뜨거운 우정을 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다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 매일 14시 정규 도슨트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현장에서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된다. 20인 이상의 단체의 경우 사전 예약을 통해 별도의 고품격 전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아트패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의는 서울미술관 홈페이지 및 대표 전화를 통해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미술평론가 최열의 이중섭 편지화 강연 및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샘키즈 교육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프로그램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추후 서울미술관 홈페이지 및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14:00~14:30 석파정(石坡亭)을 탐방
[석파정(石坡亭)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별장.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산16-1
종류/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정자는 조선 철종과 고종 때의 중신(重臣) 김흥근(金興根)이 지은 별서(別墅)를 흥선대원군(興宣大阮君)이 집권한 뒤 별장으로 사용한 곳이다. 이 집을 석파정이라고 한 것은 정자 앞산이 모두 바위여서 대원군이 석파(石坡)라고 이름지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아호를 석파라고 한 것도 이로 인하여 지어진 별호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오재(寤齋) 조정만(趙正萬)의 별장인 소운암(巢蕓庵)이 있었던 곳이다. 그 뒤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이 별장을 지어 삼계동정자(三溪洞亭子)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후기 학자 황현(黃玹)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에게 이 정자를 팔기를 청했으나 거절하자 아들 고종과 함께 묵었는데 김흥근이 '임금이 묵고 가신 곳에 신하가 살 수 없다'고 헌납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정자는 세검정 자하문(紫霞門:창의문) 밖으로 통칭되던 한양도성(漢陽都城)의 승경지(勝景地)로, 소계류(小溪流)와 거암(巨岩) 장송(長松)을 배경으로 지었다. 석파정의 뜰은 넓고 수목이 울창하여 봄철의 꽃과 가을의 단풍 등 절기에 따라 풍치가 아름답다.]
[석파정(石坡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구)제26호 (1974년 1월 15일 지정)
수량 1동
시대 조선 시대
소유 (주)석파문화원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11길 4-1
석파정(石坡亭)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흥선대원군 별서(興宣大院君 別墅)에 딸린 정자이다.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사설 미술관인 서울미술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흥선대원군 별서는 원래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세도가인 김흥근의 별서였다. 별서는 별장의 일종인데 잠깐 쉬었다 가는 별장과 달리 비교적 오랫동안 집 대신 거주하는 공간을 뜻한다.
김홍근이 별서를 만들기 전부터 이 일대는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인근에 안평대군 이용 집터인 무계정사(武溪精舍)가 있고, 윤치호의 별장인 부암정도 멀지 않다. 개울 옆 바위에 소수운련암(巢水雲簾岩 - 물 속에 깃들어 구름으로 발을 건 바위)이라는 글씨를 권상하가 새겼다. 김홍근은 여기에 별서를 세우고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도 집 옆 바위에 삼계동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이 집을 오랫동안 탐내어 김흥근에게 팔라고 요청하였지만 거절 당하였다가 임금이자 자신의 아들인 고종과 함께 방문하여 하룻밤을 묶었다. 성리학 예법에 임금이 묵은 곳을 신하가 계속하여 살 수는 없었기에 결국 김흥근이 이하응에게 집을 넘겼다고 한다. 이하응은 이 별서를 무척 마음에 들어하였다. 주변 풍경이 온통 바위산이라 자신의 호 마저 석파(石坡 - 돌고개)로 바꾸었고 집 앞 개울의 정자를 석파정이라고 하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김흥근이 흥선대원군의 정치개입을 막으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기 때문에 둘 사이에 정치적 알력이 있었다고 전한다.
흥선대원군이 죽은 뒤 별서는 그의 후손인 이희, 이준, 이우의 별장으로 세습되며 사용되어 오다가 한국전쟁 후에는 천주교가 경영하는 코롬바고아원으로 사용되었다. 그 이후 병원으로 쓰이거나 개인 소유가 되는 등 자주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경매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였다. 2004년 12월 개인 소유자가 부채 10억원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감정가 75억4천600만원으로 경매에 나왔으나 두차례 유찰되어 감정가의 64%인 48억2천900만원까지 떨어졌다. 경매에 나온 곳은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1천여평을 제외한 나머지 약 88.9%의 부지가 개발제한구역과 문화재보호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으로 묶여 있어 낙찰이 쉽지 않았다.
2006년 1월 13일 의약품 유통업체인 유니온약품그룹의 안병광 회장이 익명으로 응찰하여 감정가의 83%인 63억1천만원에 낙찰하였다. 안병광은 석파정 입구에 사설 서울미술관을 개관하고 그가 평소 수집하던 이중섭의 그림들을 전시하면서 미술관이 석파정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별서와 정자
흥선대원군 별서는 안채와 사랑채, 별채와 같은 살림채로 이루어져 있고 석파정은 중국풍으로 지은 정자이다.
별서의 사랑채는 담으로 둘러쌓인 안채와 떨어져 담 밖에 따로 지었다. ㄱ 자로 꺽어 지은 사랑채의 앞에는 서울시 지정 보호수 60호인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
안채는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ㅁ 자 구조의 살림채이다. 사랑채와 안채의 담 사이로 누대로 올라가는 홍예문이 있다. 홍예문을 지나 높은 곳에 마련된 누대에는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楓樓 -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구경하는 누대)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별서와 조금 떨어져 중국풍으로 지은 정자인 석파정이 있다. 이 정자는 김흥근이 삼계동정사를 지을 당시에 지었다는 설도 있지만 아무런 기록이 없어 언제 지어졌는 지는 불명확하다. 대원군이 직접 정자를 짓도록 하고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고, 원래 있던 정자의 이름만 석파정이라 바꾸었을 수도 있다. 전통적인 한국의 정자와 달리 바닥을 화강암으로 마감하고 기둥에 꾸밈벽을 달고 지붕 역시 청나라 풍으로 꾸몄다.
석파정 앞에는 원래 중국식으로 지은 별서가 한 채 더 있었다고 한다. 석파정에 있던 중국식 별서는 현재 한식 요리집 한 켠으로 옮겨져 있으며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23호 석파정 별당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용 정보
석파정은 서울미술관 부대시설로 미술관 입장(15,000원) 후 미술관 3층을 통해서만 입장 가능하다. 자가용 이용시는 서울미술관 지하1,2층 이용가능(미술관 관람시 주차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운영시간 12:00~17:00 (입장 마감은 폐장1시간 전까지)]
14:30~14:32 석파정 버스 정류장으로 원점회귀하여 탐방 완료
14:32~14:45 석파정 버스 정류장에서 불광역.불광1동주민센터 정류장으로 가는 7022번 버스 승차 대기
14:45~15:00 7022번 버스를 타고 석파정 버스 정류장에서 불광역.불광1동주민센터 정류장으로 이동 [15분, 9개 정류장 이동]
15:00~15:10 불광역에서 구산역으로 가는 6호선 전철 승차 대기
15:10~15:16 6호선을 타고 불광역에서 구산역으로 이동 [6분 소요]
석파정 서울미술관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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