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글
안선모(동화작가)
올해로 38회째를 맞는 새얼백일장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잠시 우편공모제였던 백일장이 지난 10월 14일(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참가자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열린 것이다. 심사는 그 다음날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까지 진행되었다. 따끈따끈한 원고들이 박스에 가득 쌓여 있는 걸 보니 축제처럼 치러지는 백일장 느낌이 나서 흐뭇했다.
초등 3·4학년 산문부 시제는 ‘초능력’, ‘군것질’, ‘상장’이다. 시제를 본 순간 재미있고 기발한 글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글쓰기는 한 접시의 요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똑같이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요리해 낼 것인지는 참가자들 역량에 달렸다. 보기에도 맛있고 실제로도 맛있는 요리는 자신이 실제로 겪은 경험을 어떻게 버무렸는지에 달렸으니까 말이다.
심사에 앞서 우리 세 명의 심사위원들은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꾸밈없는 생활문이어야 한다. 경험과 상상을 섞어 쓰거나 100% 상상하여 쓴 글은 제외한다. 둘째, 3·4학년 수준에 맞는 원고 양이어야 한다. 원고지 2매 이하의 글은 안타깝지만 제외하기로 한다. 셋째, 어른의 손길이 닿은 글은 배제한다. 이 항목이 가장 판별하기 어려운 일이니 심사위원 모두의 의견을 모아 판단하기로 한다. 이상의 세 가지 심사 원칙을 정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심사에 들어갔다.
총 응모작은 259편이었다. 우선 작품을 3등분하여 읽었다. 읽으면서 등급 표시를 하기로 했다. 그러고 난 후엔 나머지 작품을 돌려 읽었다. 심사위원 모두에게 좋은 등급을 받은 작품을 모아 다시 읽으면서 수상작을 골랐다. 수상작 30편을 고르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쉽지 않은 일이었다. 30편을 고르고 나면 또다시 힘든 작업이 시작된다. 장려를 먼저 뽑고 난 후, 나머지 작품들을 대상으로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끝에 장원과 차상, 차하, 참방으로 결정하였다. 사실 뽑힌 작품들을 놓고 순위 구분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작품 하나하나는 모두 저마다의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떨어진 작품도 마찬가지다. 등외로 밀려난 작품 중에서도 좋은 작품이 많았다는 점을 밝힌다. 떨어졌다고 실망하지 말고 다음 기회를 노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단!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첫째, 시제를 잘 정하라. 겪었던 일을 떠올린 후, 그 경험을 잘 녹여낼 수 있는 시제를 고르는 것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반대로 시제를 고른 후 그와 관련한 경험을 떠올려도 좋다.
둘째, 무작정 쓰지 말고 생각을 충분히 한 후, 개요(글의 뼈대)를 짜라. 이야기가 풍부하다고 해서 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하고 중간 부분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갈 것이며 마무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공책이나 메모장에 정리를 한 후 쓰면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셋째, 글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이 맞춤법과 띄어쓰기이다. 이것은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니까 평소에 책을 읽을 때나 글을 쓸 때 신경을 쓰도록 한다.
넷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 속에 자신의 경험과 진심이 녹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금방 되는 것이 아니므로 평소 글쓰기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겠다.
본격적으로 심사평을 하기 전에, 상을 받은 학생들에게는 축하를 보내고 상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격려와 위로를 보낸다. 두 그룹 모두 다른 학생이 쓴 글을 꼼꼼히 읽어보기 바란다. 다음 백일장에 참가할 계획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원을 받은 강솔(인천 석정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초능력을 시제로 택하여 글을 썼다. 나의 마음 상태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이해해주며 나의 일상에 소소한 도움을 주는 엄마를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엄마가 자신이 왜 마스크를 계속 쓰고 다니는지 알아채지 못하자 잠시 속상했지만 센스 있는 엄마는 내가 숨기고 싶어 하는 뾰루지에 예쁜 스티커를 붙여준다.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을 초능력과 연관하여 풀어낸 솜씨가 좋았고 마지막에 자신도 어른이 되면 엄마만을 위한 마음읽기초능력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부분이 감동적이었다. 엄마의 세심한 보살핌을 ‘마음읽기 초능력’으로 표현한 것은 강솔 학생의 글감을 바라보는 눈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남다르게 본다는 것은 창의적인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차상을 받은 손다원(인천 청호초등학교 3학년) 학생은 가족의 군것질 방법과 습관에 대해 썼다. 가족의 군것질에 대해 한 명 한 명 적나라하게 밝혔는데 하나도 식상하지 않고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떠오를 정도로 실감나게 표현했다. 꾸밈없이 솔직한 글이어서 재미도 있었다. 조서연(인천 갑룡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친구들과 하는 놀이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시간 멈추기, 시간 되돌리기 등의 초능력놀이다. 현실에서도 초능력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조서연 학생은 누군가를 도와주고 힘을 보태주는 일을 한다. 그러자 좋은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그러면서 자신의 꿈도 찾게 되는 과정을 진솔하게 써내려갔다. 무엇보다 진심이 가득한 글이다. 김라윤(인천 용현초등학교 3학년) 학생은 상장을 시제로 택하여 썼다. 자신이 상을 주는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 119구조대원이신 아빠에게는 히어로상을, 냉동창고에서 일하시는 엄마에게는 겨울왕국상을, 언제나 명랑한 오빠에게는 웃상을, 늘 웃음을 주는 동생에게는 코미디언상을, 자신에게는 열정상을 주고 싶다고 한다. 다만 끝 부문의 ‘여러분은 저에게 어떤 상을 받고 싶은가요?’는 꼭 필요한 구절이었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가족 사랑이 듬뿍 느껴지는 글이었다.
차하를 받은 김지안(인천 인성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글은 추운 겨울 날 엄마와 함께 분식집 ‘도깨비 호떡’ 에서 먹었던 맛있는 군것질에 대하여 맛깔나게 썼다. 글을 읽으면서 침이 고일 정도다. 특히 중간 중간 대화글이 들어가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이우준(인천 간재울초등학교 3학년) 학생은 초능력에 대한 글을 썼다. 엄마아빠와 떨어져 혼자 자야 하는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고민하는 과정을 진지하게 써내려갔다. 결국 잠자리 독립을 못했지만 머리만 대면 잠에 떨어지는 아빠의 초능력을 부러워하면서 한편 자신은 아빠의 아들이니 그 초능력을 물려받아 언젠가 반드시 할 수 있을 거라는 끝부분 글에서는 결기가 느껴지면서 웃음도 난다. 순수한 동심과 진심이 담뿍 녹아있는 글이다. 안주원(인천 학산초등학교 3학년) 학생은 7살 때에 있었던 팽이대회 이야기를 실감나게 썼다. 자신만의 무지개 팽이를 만드는 과정, 팽이 돌리기 대회에 나가게 된 계기, 포기하지 않아서 상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썼다. 어린 나이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때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나간 점이 좋았다.
참방을 받은 안도겸(인천 봉수초등학교 3학년) 학생은 한자 검정 시험을 치르고 상장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실감나게 썼다. 무엇보다 감정의 변화 상황이 자세하게 그려졌다. 자신감-> 당황함-> 초조함-> 기쁨과 환호의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었다. 그때부터 상장을 좋아하게 되었고 결국 새얼백일장에 나오게 되었다는 결론이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양원준(인천 연송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상장이라는 시제를 택했다. 할아버지의 팔순 선물을 고르는 과정이 진지하고 세세하게 나타났고 ‘최고의 할아버지 상’이라는 상장을 수여하는 결론까지 매끄러운 글이었다. 박재현(인천 송명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아토피 때문에 군것질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경험을 꾸밈없이 썼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싶다. 열심히 운동하고 노력한 끝에 약간의 군것질은 허용되었지만 군것질이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주는 존재라는 결론이 의젓하게 느껴진다. 이채원(인천 명선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진정한 상장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더 좋은 상을 받고 싶어 대회를 나갔던 때와 피아노가 좋아져 대회를 나갔던 때를 비교해서 쓴 점이 좋았다. 결국 더 좋은 상은 못 받았지만 즐겁게 치고 열심히 노력했던 최우수상이 더 값진 상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상장의 의미와 성장의 의미를 동시에 보여준 글이었다. 루쌩줄리(인천 용현남초등학교 3학년) 학생은 자신이 갖고 있는 초능력에 대해 썼다.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되는 거꾸로 초능력과 속마음 읽기 초능력, 후각 초능력이 있다면서 자신이 겪은 일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다음에 생길 초능력은 무엇일까 궁금해 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 초등학생다운 순수함이 녹아 있는 글이다.
이상으로 장원, 차상, 차하, 참방 수상작에 대한 심사평을 간단하게 써 보았다. 수상작에는 들지 못했지만 아까운 작품들이 꽤 있었다. 재기발랄하게 썼는데 원고 매수가 미달이거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지만 상상의 나라로 빠져들어 생활문인지 동화인지 구분이 안 되는 글 등이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니 결코 실망하지 말고 내년 백일장에도 꼭 도전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