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연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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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연홍도
위치도
'지붕 없는 미술관' 연홍도의 진짜 예술 작품
자연과 예술, 인간과 예술의 경계가 없는 연홍도를 가다
오마이뉴스 기사 등록일 : 2021.11.11.
글 : 백종인(elliec)
그곳에 가면 주민도 여행객도 그림이 되고 조형물이 된다. 쓰레기가 예술품의 재료가 되는 것이 요즘의 추세라지만 그곳에서 몇 시간을 보내면 버려진 쓰레기조차 예술품으로 보인다.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알려진 연홍도를 실제로 가 보니, 그곳은 자연과 예술, 인간과 예술의 경계가 없는 곳이었다. 예술 작품은 해의 위치와 빛, 썰물과 밀물에 따라 다른 작품이 되었고, 자연과 인간이 어울리면 그 자체가 작품이었다. 집의 담벼락은 예술가가 그림 그리는 캔버스로, 골목길이 카메라 속으로 들어가면 20세기 현대 화가의 그림으로, 버려진 쓰레기는 조형물로 변신을 하는 곳이었다.
연홍도는 작은 섬이다. 거금대교의 개통으로 섬 아닌 섬이 된 거금도의 신양선착장에서 고작 600m 떨어진 육지와 아주 가까운 섬이기도 하다. 신양선착장에서 섬을 바라보면 수영을 해서 건너고 싶을 정도다.
늦게 찾아온 가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1월 초 늦은 오후, 연홍도를 찾았다. 손님을 태우려 배가 섬에서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연홍도에 도착해 있었다.
소라 부부가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가운데 눈길은 벽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사진박물관을 따라갔다. 주민들이 기증한 400여 장의 사진을 타일에 인쇄한 연홍도 주민의 앨범이자 같은 시절을 보낸 우리의 앨범이기도 했다.
넓이 0.77km2, 해안 길이가 4km에 불과한 연홍도를 탐방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세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담장에 아기자기한 벽화와 조형물을 부착한 마을 골목길을 지나는 담장 바닥길, 또 하나는 골목길로 이어진 언덕을 넘어 섬 남쪽의 아르끝을 돌아 서쪽 해안으로 가는 아르끝 숲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일몰을 감상하기 안성맞춤인 서쪽의 좀바끝 둘레길이다. 이들 길을 연홍도 섬길이라 부른다.
동쪽의 선착장에서 연홍미술관이 있는 서쪽으로 가려면 자연히 담장 바닥길을 지나야 한다. 푸른 하늘을 받치고 있는 붉은색, 파란색 지붕과 엷은 파스텔 조의 담벼락에 그려진 사랑스러운 그림과 조형물이 한데 어우러져 미술관을 거닐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담벼락 조형물의 재료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담벼락에 낡은 문짝을 갖다 붙이고 담 위의 담쟁이가 내려오면 작품이 된다.
신다 버린 털고무신, 바닷가의 흔한 조개껍질과 조약돌, 고깃배 일부였던 폐목 조각, 고기잡이에 사용했던 폐품들이 서로 붙어 있거나 이웃하고 있으면 사람이 사는 집과 그 위의 동산과 나무들과 함께 예술품이 탄생한다. 모래성을 쌓고 있는 여자아이 머리에 모래를 뿌리고 있는 개구쟁이 모습의 벽화를 보며 옛 추억에 잠기는 것이 나뿐이겠는가.
골목길을 천천히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서쪽 해안 길 위에 서 있었다.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 시간, 설치된 철제 조형물들은 한낮의 모습보다 더 선명하게 가치를 드러냈다.
연홍미술관을 가운데 두고 바다를 배경 삼아 수십 개의 설치 작품이 해안로를 따라 자리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뒤에서 밀어주는 모습, 연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사,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 그 사이에 상자 모양의 의자가 놓여 있어 의자에 앉으면 스스로 작품 속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지는 해를 보기도 하고 연인과 연인을 찍는 사진사 사이에 있는 의자에 앉아 심술을 부려보기도 한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환한 낮에 보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역광이나 석양 아래서 카메라 렌즈로 들어오는 모습에서 입체감이 나타나고 생동감이 살아난다는 점이다.
'은빛 물고기'라는 제목의 철제 조형물은 밀물 때는 반 정도만 모습을 드러내다가 썰물이 되면 온 모습을 드러내는데, 바닥의 돌들과 해초들로 마치 상어 떼에게 살점을 다 뜯긴 비참한 모습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청새치라 표현한다.
폐교인 연홍 분교를 개조하여 만든 연홍미술관은 연홍도 예술품들의 산실이다. 앞마당에는 화초 대신 수많은 생활 폐품을 이용한 설치 작품이 세워져 있고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들이 누워 있다. 입구 한쪽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상이 예전에 학교였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건물 안에는 미술관과 숙소, 카페 등이 있다.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좀바끝 둘레길로 나섰다. 쏨뱅이가 연홍도로 와서 좀뱅이가 되고 다시 좀바가 되어 좀바가 많이 잡히는 섬의 끝이라 하여 좀바끝이란다. 후박나무 숲 사이로 저물어가는 붉은 햇살이 눈 부셨다. 앞에 보이는 금당도 너머로 넘어가는 해가 하늘을 빨갛고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에 맞이한 연홍도는 저녁의 연홍도와는 다른 색이 되어 있었다. 눈부신 파란 바다 저편에 금당도가 보였고 철제 조형물은 노랗고 파랗게 그리고 녹색과 붉은색으로 색칠되어 있었다.
가지 않은 나머지 길인 아르끝 숲길로 나섰다. 아래의 사투리 아르, 섬의 남쪽 끝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왼쪽은 숲과 꽃밭, 마을이 보이는 숲길이었다. 아르끝 숲길은 섬의 남쪽 끝을 돌아 마을 골목길과 만난다. 파란 하늘 아래 파스텔 조의 벽화 없는 담장에 그림자가 깃들이니 한 폭의 그림으로 보였다. 골목길과 해안길에서 마을 어르신들도 만났다.
다른 작은 섬들과 마찬가지로 연홍도에도 젊은이들은 살지 않는 것 같았다. 50가구에 주민 수가 70여 명이란다.
"여기서도 벼농사를 지으시나요?"
"이제 거의 없어. 한 집만 짓고 있어."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답이다.
"할머니,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나요?"
"늙은이 뭘 찍을 게 있다고."
해안 길을 따라 보행기를 밀고 걸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대로가 행위예술이고 카메라 렌즈로 들어오니 그림이 되었다.
"어르신, 연홍도에 계시는 어르신의 모습은 이미 예술입니다."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고흥 연홍도 섬길
바다에 떠 있는 ‘지붕없는 미술관’
광주매일신문 기사 게재일 : 2020. 11.03.(화)
들판이 황금색으로 출렁인다. 산빛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산자락에서는 억새가 은빛으로 휘날린다. 깊어가는 가을을 따라가는 여행이 풍요롭다. 아침안개가 산과 마을을 살포시 뒤덮었다. 안개 위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 산봉우리들이 바다에 떠 있는 섬 같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요로운 가을을 만끽하며 고흥반도로 들어선다. 고흥반도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녹동항에서 소록대교를 건너면 소록도다. 소록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 모양이 작은 사슴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소록도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 격리된 한센병 환자들이 힘든 삶을 버텨야 했던 가슴 시린 섬이다.
소록도를 지나니 2011년 개통된 거금대교가 웅장하다.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2천28m에 이르는 거금대교 아래로 푸른 바다가 출렁인다. 거금도는 우리나라에서 열 번째로 큰 섬이다. 섬에 큰 금맥이 있어 거금도라 불렀다. 거금대교를 건너 거금도 서쪽 신양선착장으로 향한다.
신양선착장에 도착하니 연홍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길쭉하게 뻗은 섬은 양쪽에 둔덕 같이 낮은 산봉우리가 솟아있고, 가운데에 연홍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바닷가 낮은 곳에 자리한 마을 뒤로 금당도의 바위산이 우뚝 솟아 고개를 내민다. 신양선착장에서 배를 타니 5분 만에 연홍도선착장에 도착한다. 연홍도로 들어서는데 방조제 끝에 설치된 소라모양의 조각품이 탐방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섬마을은 해변을 따라 이어지고, 마을 담벼락에는 정다운 벽화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해변마을 담벼락을 따라 그려진 벽화는 푸르고 빨간 지붕과 조화를 이룬다. 섬에 도착한 탐방객은 발길을 멈추고 벽화를 감상하거나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말 그대로 ‘지붕없는 미술관’이다.
거금도의 부속 섬 연홍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연홍미술관과 골목마다 예쁘게 단장된 담장벽화, 그리고 해변 곳곳에 설치된 조각품이 섬 전체를 미술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홍도 주민들의 사진을 모아 만든 ‘연홍사진박물관’이라는 제목의 타일벽화에서는 연홍도 사람들의 삶과 추억이 그대로 전해진다.
우리는 연홍마을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작품을 감상한다. 작품에서는 섬사람들의 질박한 생활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생활폐기물을 활용하거나 바다에 있는 조개껍질과 나무를 이용해서 소박하게 조형물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벽화나 조각품은 화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이 생활주변 소재를 가지고 직접 만들어 붙인 작품도 있다. 담장벽화나 조각품 같은 미술품은 연홍도를 더욱 아름답고 운치있는 마을로 탈바꿈시켰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소재가 됐다.
마을 뒤편 언덕에 오르니 오른쪽에는 거금도가, 왼쪽에는 금당도가 푸른 바다 위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연홍도를 감싸고 있는 두 섬은 여러 가지로 대조를 이룬다. 거금도는 부드러운 육산으로 이뤄져있고, 금당도는 가파른 바위산이 우뚝 솟아있다.
해안선 둘레가 4㎞에 불과한 연홍도는 50가구 80여명이 사는 작은 섬이다. 연홍교회에서 조금 올라가니 300년이 넘은 팽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서 있다. 온갖 역경을 딛고 수백 년을 버텨온 팽나무는 연홍도의 역사를 지켜온 산 증인이다. 마을 뒷동산에 서 있는 팽나무 고목은 오가는 사람들의 그늘막이 돼주고, 밭일을 하러 가는 주민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다.
팽나무 거목에서 연홍미술관 방향으로 밭길을 따라 내려온다. 연홍미술관이 자리한 연홍도 서쪽해변으로 내려서니 넓은 바다와 금당도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미술관 앞바다에는 은빛물고기를 형상화한 수상조형물이 반쯤 물에 잠겨 있다.
금당도를 마주보고 있는 연홍미술관은 서양화가 신호남관장이 폐교된 연홍분교를 개조해 2006년 개관했다. 전시실에서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회화작품 150여점이 교체·전시된다. 작은 운동장이었을 미술관 정원에는 철제조각품들이 배치돼 조각공원이 됐다.
실내외에 전시된 작품뿐만 아니라 미술관을 감싸고 있는 마을과 바다, 마주보고 있는 금당도가 조화를 이룬 모습은 그 자체로 거대한 미술품이다. 미술관 야외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으니 거대한 미술작품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미술관을 출발해 섬의 북서쪽 끝인 ‘좀바끝’으로 향한다.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뒤돌아보니 연홍미술관에서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바닷길과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바라보인다. 2층 해안전망대에 올라서니 금당도와 득량만이 생동감있게 다가온다.
연홍미술관으로 되돌아와 해변을 따라 걷는데 포토존으로 설치된 갖가지 형상의 조형물들이 푸른 바다와 금당도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드문드문 자리 잡은 가옥의 담장에도 어김없이 물고기 형상의 나무 조각품이 걸려있고, 방조제 안쪽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들도 한 폭의 그림이 됐다.
연홍마을로 돌아와 섬의 남쪽 끝으로 향한다. 마을 뒤편 밭길을 따라가다 뒤돌아보면 조금 전 만났던 연홍미술관과 좀바끝으로 가늘게 이어지는 산줄기가 쉽게 발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바위산이 우뚝 솟은 금당도는 넓고 푸른 바다와 대비되면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연홍마을에서 남쪽으로 아르끝을 한 바퀴 돌아가는 ‘아르끝 둘레길’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푹신한 흙길이 부드럽고, 소나무·후박나무 숲은 한없이 온화하다. 연홍도 남쪽 끝 ‘아르끝’을 지나 연홍마을로 향한다. 숲길을 빠져나오자 다시 밭길이 이어진다. 동쪽 바다 건너 거금도가 멀지않은 곳에서 손짓한다.
연홍마을 뒤편 언덕길을 내려갈 때는 마을의 울긋불긋한 지붕과 푸른 바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가슴에 안겨온다. 아름다운 풍경화를 바라볼 수 있도록 전망대도 마련돼 있다. 전망대에 앉아 섬 풍경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과 한가로움을 마음껏 즐긴다.
가을하늘은 높고 바다는 한없이 푸르다. 종종 지나는 선박이 하얀 물길을 만들며 섬의 고요한 정적을 깬다. 한가롭고 고요한 섬이 평화로운 마음을 채워준다. 우리를 태우고 갈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온다. ‘지붕없는 미술관’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거금도에서 연홍도를 바라보니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화 한 폭이다.
※여행쪽지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연홍도는 그 속에 연홍미술관과 골목담장벽화, 해변 조각품들을 채워 온 섬이 ‘지붕없는 미술관’이 됐다.
▶‘연홍도 섬길’은 연홍미술관과 마을 골목길을 포함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길로 3.9㎞에 미술품 감상하는 시간까지 포함해 2시간이면 충분하다.
▶배시간(거금도 신양선착장→연홍도선착장) : 08:00, 09:50, 11:05, 12:35, 14:35, 16:05, 17:35(동계 10월~3월 기준)
※연홍도선착장→신양선착장 : 신양선착장 출발시간 5분 전
▶연홍도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마을식당(010-5064-0661)이 있어 식사와 주류를 판매한다. 녹동항으로 나오면 식당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