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유해소로 가는 길목에 오기선 신부 흉상(1987년-1990년 건립)
이 서 있다.
오기선 신부는 일제말기 라리보 주교 비서로 있을 때, 경성(서울) 대목교구장에 라리보
(재임;1933년∼1942년) 후임으로 일본인 신부로 교체하려는 계획을 알고 도일(渡日,1941년),
당시 교황의 사절 마렐라 대주교를 설득, 일본인 대신 한국인 노기남 신부(재임;1942년-
1967년)가 임명되도록 했다.
오기선 신부는 은퇴 후
당시 103위 복자를 성인품에 올리기 위한 성지발굴과 개발에 전념, 마카오, 북경, 상해
등에 김대건 성인의 자취를 찾아 동상을 세우도록 노력했다. 그후
오기선 신부는
필리핀 롤롬보이 유학생 김대건 안드레아의 자취가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의 위치를
기어코 알아내어 가 보니
이미 개인의 집이 된 것을 끈질기게 설득, 부지 사용 허가를 받아 마닐리와 본국 신자
들의 성금으로 지금의 최양업 신부와 성 김대건 안드레아 동상을 건립(1986년 5월 22일),
당시 김수환 추기경, 알마리아 주교(필리핀 카롤로이스교구장) 등 임석 하에 ‘성지’로 선포
하게 된다.
이러한 오기선 신부의 대단한 집념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이 성지가 존재했을까?
정말 그 오신부의 ‘십자가의 지심’을 깊이 묵상하게 한다. 그리고
오기선 신부는 북경과 상해에 김대건 성인상과 선조 이승훈 기념비를 세울 전초작업
을 해 놓고 귀국했다가 선종,
103위 복자가 성인품에 오르자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는 말씀을 깊이 묵상
해 본다.
필리핀 롤롬보이 도미니코수도회는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수도회원들이 한 사람씩
떠나고 건물도 허물어저서 롤롬보이 사람들 사이에서 ‘한복을 입은 목 없는 귀신이 나오
는 흉가’로 불리웠으나
지금은 괴소문은 사라지고 주민들도 성 김대건 안드레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성인의 축일에는 마을 전체가 성대하게 축제를 벌이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는 것.
이곳에서도 우리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정신이 점점 퍼져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어
성지순례의 기쁨을 또 한 번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