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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 이(南 怡)
〇 북정시작(北征時作)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豆萬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이 마셔 없구나.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남아 20세에 나라를 평정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작자〛 남이 장군(南怡 將軍, 1441~1468) : 조선 전기의 무신(武臣)으로, 여진족 토벌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자 민간과 무속에서 신앙되는 장군신의 하나. 17세 때에 무과(武科)에 장원급제하고 이시애(李施愛, ?~1467)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예종 때 훈구대신(勳舊大臣)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함.
□ 남효온(南孝溫)
〇 강서한식(江西寒食)
天陰籬外夕煙生(천음리외석연생) 흐린날 울타리 밖 저녁 연기 피어오르고
寒食東風野水明(한식동풍야수명) 한식날 봄바람 불고 들판에 흐르는 물은 맑다.
無限滿船商客語(무한만선상객어) 무한히 계속되는 배에 가득한 상인들 이야기
柳花時節故鄕情(유화시절고향정) 버들꽃 피는 시절에 그리운 고향의 마음이어라.
〇 유압도 이수(遊鴨島 二首) - 南孝溫
芳洲十里露潮痕(방주십리로조흔) 꽃 핀 모래섬 십 리에 조수 흔적 드러나는데
手自持鋤採艸根(수자지서채초근) 손수 호미 잡고서 풀뿌리를 캐어 본다
野水汲來澆麥飯(야수급래요맥반) 들 물 길어 와서 보리쌀 씻으니
擬將身世付江村(의장신세부강촌) 이 한 몸 강촌에다 부쳐 볼 만하겠네
◀ 이 시는 압도에서 노닐며 지은 시이다.
〇 제성거산원통암창벽(題聖居山元通庵囱壁) - 南孝溫
東日出杲杲(동일출고고) 동쪽 해가 눈부시게 떠오르고
木落神靈雨(목락신령우) 신령한 비처럼 낙엽이 떨어지네
開囱萬慮淸(개창만려청) 창문 열자 온갖 생각 맑아져서
病骨欲生羽(병골욕생우) 병든 몸에 날개가 돋으려 하네
◀ 이 시는 성거산에 있는 원통암 창 벽에 쓴 시이다
〚작자〛 남효온(南孝溫, 1454, 단종 2~1492, 성종 23): 조선 전기의 문신이고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의령,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행우(杏雨)·최락당(最樂堂)·벽사(碧沙)이다.
『추강집(秋江集)』이 있다
□ 노사신(盧思愼)
〇 차무산운증학전상인(次巫山韻贈學專上人)
呂枕五十年(여침오십년) 허망한 부귀영화 오십년
一覺空彷佛(일각공방불) 깨닫고 보니 허망하구나
欲知夢幻境(욕지몽환경) 환몽의 경험이 어떤 것인지
試問瞿曇佛(시문구담불) 구담 부처에게 물어보고파
巫山世緣盡(무산세연진) 인간 세상 인연을 끊어버리고
思歸衣欲拂(사귀의욕불) 옷소매 뿌리치고 돌아가고 싶어라
昨夜夢山林(작야몽산림) 어제 밤 꿈에 큰 산림을 보았지
眼前無俗物(안전무속물) 눈에는 세상일 보이지 않았소
白雲生杖履(백운생장리) 흰 구름 이는 곳을 지팡이 짚고 다닌 나
豈復戀朱紱(기복연주불) 어찌 다시 벼슬을 바라겠는가
〚작자〛 노사신(盧思愼, 1427~1498) 본관 교하(交河). 자 자반(子胖). 호 보진재(葆眞齋)·천은당(天隱堂). 시호문광(文匡). 《경국대전》,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등을 편찬하였다. 15세기 후반 수많은 관찬서(官撰書)의 편찬에 참여하여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 노수신 (盧守愼)
〇 십륙야 환선정이수 차운(十六夜 喚仙亭二首 次韻)
其一(기일)
二八初秋夜(이팔초추야) 십육일 초가을 밤
三千弱水前(삼천약수전) 삼천리 잔잔한 물이 앞에 흐르네
昇平好樓閣(승평호루각) 평화로워 누각에 오르기 좋으니
宇宙幾神仙(우주기신선) 천지가 거의 신선 세계로다
曲檻淸風度(곡함청풍도) 굽은 난간에 맑은 바람 지나가고
長空素月懸(장공소월현) 높은 하늘에 밝은 달 매달려 있네
愀然發大嘯(초연발대소) 근심하며 큰 휘파람 부니
孤鶴過蹁躚(고학과편선) 외로운 학이 빙 돌다 지나가네
〚작자〛 노수신(盧守愼, 1515, 중종 10~1590, 선조 23): 본관은 광주.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봉노인(茹峰老人).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을사사화 때 이조좌랑에서 파직되어 귀향살이를 하였다. 선조 즉위 후에는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문집에 《소재집》이 있다.
□ 박상 (朴祥)
〇 봉효직상(逢孝直喪)
無等山前曾握手(무등산전증악수) 무등산 앞에서 손을 잡았었는데
牛車草草故鄕歸(우거초초고향귀) 달구지로 초라하게 고향으로 간다.
他年地下相逢處(타년지하상봉처) 훗날 저 세상에서 만나는 곳에선
莫說人間謾是非(막설인간만시비) 세상 덧없는 시비곡절 논하지 말자.
〇 수정한림류별운(酬鄭翰林留別韻) - 朴祥
江城積雨捲層霄(강성적우권층소) 강마을에 장맛비가 하늘에서 걷히니
秋氣泠泠老火消(추기령령로화소) 가을 기운 서늘하여 뜨거운 해 사라졌네
黃膩野秔迷眼發(황니야갱미안발) 누렇게 기름진 들판의 메벼는 눈에 어지럽게 팼고
綠疏溪柳對樽高(녹소계류대준고) 푸릇푸릇 성근 개울의 버들은 술잔을 마주하고 높네
風隨舞袖如相約(풍수무수여상약) 약속이나 한 듯 바람이 춤추는 옷자락을 따르고
山入歌筵不待招(산입가연부대초) 부르지도 않았는데 산이 노래하는 자리에 드네
慙恨至今持斗米(참한지금지두미) 부끄럽고 한스러워라, 지금까지 적은 녹봉 받느라
故園蕪絶負逍遙(고원무절부소요) 고향의 언덕이 묵어도 거닐지 못했음이
◀ 이 시는 정한림이 이별하면서 준 시에 화답한 시
〇 탄금대(彈琴臺) - 朴祥
湛湛長江上有楓(잠잠장강상유풍) 출렁출렁 긴 강가에 단풍나무 있고
仙臺孤截白雲叢(선대고절백운총) 신선의 대는 흰 구름 모인 곳에 홀로 솟았네
彈琴人去鶴前月(탄금인거학전월) 가야금 타던 사람은 학이 나는 앞 달로 가고
携笛客來松下風(휴적객래송하풍) 피리 가진 객은 소나무 아래 바람 속으로 오네
萬事一廻悲逝水(만사일회비서수) 만사는 한결같이 돌아가니 흘러가는 물을 슬퍼하고
浮生三嘆撫飛蓬(부생삼탄무비봉) 뜬 인생 거듭 탄식하며 날아다니는 쑥을 어루만지네
誰能畫出湖州牧(수능화출호주목) 누가 그려 낼 수 있는가? 충주 목사가
散步狂唫夕照中(산보광음석조중) 석양 속을 산보하며 미친 듯이 읊조리는 것을
〚작자〛 박상(朴祥) 1474(성종 5)~1530(중종 25), 조선 전기 문신. 자 창세(昌世), 호 눌재(訥齋), 시호 문간(文簡) 승문원교검, 전라도사, 사간원헌납, 담양부사, 순천부사, 나주목사를 지냈다.
□ 박순(朴淳)
〇 감흥 이수(感興 二首) - 朴淳
其一(기일)
明沙帶芳草(명사대방초) 맑은 모래밭은 방초로 둘러 있고
蒼石間澄灣(창석간징만) 푸른 바위는 맑은 물줄기 사이라네
緩步惟隨意(완보유수의) 느린 걸음걸이 마음대로 하다가
無人覺往還(무인각왕환) 사람 없어도 왔다 갔다 함을 깨닫네
〇 청풍한벽루(淸風寒碧樓)
客心孤逈自生愁(객심고형자생수) 나그네 마음 쓸쓸하여 수심이 절로 이는데
坐聽江聲不下樓(좌청강성불하루) 앉아서 강물소리를 듣노라니 누대를 내려오지 못한다
明日又登官路去(명일우등관로거) 내일이면 또 관로에 올라 떠나리니
白雲紅樹爲誰秋(백운홍수위수추) 흰 구름 이는 단풍나무, 누구를 위한 가을인가
〇 호당구호(湖堂口號) - 朴淳
亂流經野入江沱(난류경야입강타) 어지러이 흐르는 시냇물들을 지나 강으로 들어가는데
滴瀝猶存檻外柯(적력유존함외가) 물방울이 아직도 난간 밖 가지에 남아 있네
籬掛簑衣簷曬網(이괘사의첨쇄망) 울타리에 도롱이 걸어 두고 처마에 그물을 말리는데
望中漁屋夕陽多(망중어옥석양다) 바라보니 어부의 집에는 석양이 빛나네
〚작자〛 박순(朴淳, 1523, 중종 18~1589, 선조 22): 본관은 충주. 자는 화숙(和叔), 호는 어렸을 적에는 청하자(靑霞子)였으나 뒤에 사암(思菴)으로 고쳤다. 이조판서·예조판서를 겸임하였으며 저서로는 『사암집(思菴集)』 7권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박은 (朴誾)
〇 계축이주(癸丑移舟)
山凝雨餘態(산응우여태) 비온 뒤 산 자태 안개에 자욱하고
江湧風前浪(강용풍전랑) 바람 앞에 물결은 강물에 솟구친다
遠樹自短短(원수자단단) 멀리 보이는 나무들 작기도 한데
宿羽迷兩兩(숙우미량량) 깃든 새들 쌍쌍이 날아 아물거린다
地接楊根郡(지접양근군) 땅은 양근군에 인접했지만
舟移月溪上(주이월계상) 월계 위를 배 저어 가노라
雲陰欲解駁(운음욕해박) 음산한 구름 흩어지려는데
東眺日光盪(동조일광탕) 동녘을 바라보니 햇빛 훤히 씻긴다
〇 복령사(福靈寺) - 박은(朴誾)
伽藍却是新羅舊(가람각시신라구) 절은 도리어 옛날 신라 때 것이고
千佛皆從西竺來(천불개종서축래) 천 개의 불상은 모두 인도에서 온 것이다
終古神人迷大隗(종고신인미대외) 옛날에 신인도 대외에서 길을 잃었나니
至今福地似天台(지금복지사천태) 지금의 복스러운 땅은 천태산과 흡사하여라
春陰欲雨鳥相語(춘음욕우조상어) 스산한 봄기운에 비 내릴 듯 새가 우는데
老樹無情風自哀(노수무정풍자애) 늙은 나무 정이 없어 바람이 절로 슬프다
萬事不堪供一笑(만사불감공일소) 만사는 한 번 웃음거리도 못 되나니
靑山閱世只浮埃(청산열세지부애) 푸른 산에서 세상을 보니 먼지만 떠 있구나
◀ 이 시는 박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개성 천마산에 있는 복령사에 들러 지은 시이다.
〇 영후정자(營後亭子 五首) - 朴誾
其四(기사)
地如拍拍將飛翼(지여박박장비익) 땅은 새가 날개를 치며 날아오르려는 것 같고
樓似搖搖不繫篷(누사요요불계봉) 누각은 흔들흔들 매인 데 없는 배 같아라
北望雲山欲何極(북망운산욕하극) 북쪽으로 바라보니 구름 낀 산은 어디쯤이 끝인가?
南來襟帶此爲雄(나래금대차위웅) 남쪽으로 와 띠처럼 두른 산세 이곳에서 웅장하네
海氛作霧因成雨(해분작무인성우) 바다 기운은 안개가 되었다 이내 비를 뿌리고
浪勢飜天自起風(낭세번천자기풍) 물결 기세는 하늘에 닿듯 절로 바람을 일으킨다
暝裏如聞鳥相叫(명리여문조상규) 어둑한 중에서 마치 새 우는 소리 들리는 듯
坐間渾覺境俱空(좌간혼각경구공) 앉았노라니 온 경지가 텅 비는 걸 깨닫겠네
〇 우중유회택지(雨中有懷擇之) - 朴誾
寒雨不宜菊(한우불의국) 찬 비는 국화에 어울리지 않는데
小尊知近人(소준지근인) 작은 술동이는 사람 가까이할 줄 아네
閉門紅葉落(폐문옹엽락) 문을 닫으니 붉은 잎이 떨어지고
得句白頭新(득구백두신) 시구를 얻으니 흰머리가 새롭네
歡憶情親友(환억정친우) 정다운 벗 생각할 때는 즐겁지만
愁添寂寞晨(수첨적막신) 적막한 새벽 되니 시름만 더하네
何當靑眼對(하당청안대) 그 언제나 반가운 눈길로 만나
一笑見陽春(일소견양춘) 한바탕 웃으며 화창한 봄을 보리요?
◀ 이 시는 비 오는 가을날에 택지 이행(李荇)을 그리워하며 지은 것이다.
〇 임우십일 문무래객 초초유감어회 취구우래금우불래위운 투택지걸화시」 칠수
霖雨十日 門無來客 悄悄有感於懷 取舊雨來今雨不來爲韻 投擇之乞和示 七首
其七 (기칠)
早歲欲止酒(조세욕지주) 젊을 때에는 술을 끊고자 했고
中年喜把盃(중년희파배) 중년에는 술잔 잡길 좋아했네
此物有何好(차물유하호) 이 물건 대체 무엇이 좋은지
端爲胸崔嵬(단위흉최외) 응당 마음속 응어리 때문이리
山妻朝報我(산처조보아) 산골 아내가 아침에 내게 말하길
小甕潑新醅(소옹발신배) 작은 항아리에 술이 막 익었다네
獨酌不盡興(독작부진흥) 홀로 마셔도 흥이 다하지 않으니
且待吾友來(차대오우래) 우리 벗님이 오시길 기다린다오
〇 재화택지(再和擇之) - 朴誾
深秋木落葉侵關(심추목락엽침관) 깊은 가을 낙엽이 문을 치고 들어오는데
戶牖全輸一面山(호유전수일면산) 창은 한쪽의 산을 온통 실어 들이네
縱有盃尊誰共對(종유배준수공대) 비록 술잔과 술병이 있은들 누구와 마시리오
已愁風雨欲催寒(이수풍우욕최한) 이미 비바람이 추위를 재촉할 것 걱정하노라
天應於我賦窮相(천응어아부궁상) 하늘이 응당 나에게 궁한 팔자 주었으니
菊亦與人無好顏(국역여인무호안) 국화조차도 사람에게 좋은 안색 보이지 않네
撥棄憂懷眞達士(발기우회진달사) 근심을 떨쳐 버려야 참으로 도사이니
莫敎病眼謾長潸(막교병안만장산) 병든 눈 부질없이 늘 눈물 흘리게 하지 말게나
◀ 이 시는 이행(李荇)에게 화답하여 준 시
〚작자〛 박은(朴訔, 1370~1422) 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 조선 개국 후 2번의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워 좌명공신에 책록되었다. 의금부판사 때 신장의 정수를 1차에 30으로 정하여 합리적 형정제도를 시행했다.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냈다.
□ 박제가(朴齊家)
〇 등백운대절정 삼수(登白雲臺絶頂 三首) - 朴齊家
其二(기이)
地水俱纖竟是涯(지수구섬경시애) 땅과 물 함께 가늘어져 마침내 끝이 나고
圓蒼所覆界如絲(원창소복계여사) 둥근 하늘 덮인 곳 경계선이 실 같네
浮生不翅微於粟(부생불시미어속) 뜬 인생 좁쌀만도 못한 존재인데
坐念山枯石爛時(좌념산고석란시) 산 마르고 돌 문드러질 때를 앉아서 생각하네
◀ 이 시는 백운대의 정상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고서 지은 시이다.
〇 위인부령화(爲人賦嶺花) - 朴齊家
毋將一紅字(무장일홍자) ‘홍(紅)’자 한 글자만을 가지고
泛稱滿眼華(범칭만안화) 널리 눈에 가득 찬 꽃을 일컫지 말라
華鬚有多少(화수유다소) 꽃 수염도 많고 적음이 있으니
細心一看過(세심일간과)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펴보게나
〇 지연 (紙鳶) - 朴齊家]
野小風微不得意(야소풍미부득의) 들이 좁고 바람도 미약하여 뜻을 얻지 못하는데
日光搖曳故相牽(일광요예고상견) 햇빛에 흔들리며 서로가 끌고 있네
削平天下槐花樹(삭평천하괴화수) 천하의 홰꽃나무 모조리 쳐서 평평하게 하면
鳥沒雲飛乃浩然(조몰운비내호연) 새도 없고 구름도 흩어져 마음이 탁 트이리라
◀ 이 시는 종이연을 노래하였음.,
〇 효좌서회(曉坐書懷)
掘地得黃金(굴지득황금) 땅을 파 황금 얻어
萬斤空餓死(만근공아사) 만 근이나 되어도 부질없이 굶어 죽고
入海採明珠(입해채명주) 바다에 들어가 명주 캐어
百斛換狗矢(백곡환구시) 백 섬이나 되어도 개똥과 바꾸는구나
狗矢尙可糞(구시상가분) 개똥은 오히려 거름이나 되지만
明珠其奈何(명주기내하) 명주는 그 어찌하리요
陸貨不通燕(육화불통연) 육지의 재화는 중국 연경과 통하지 않고
海賈不輸倭(해가불수왜) 바다 장사꾼은 일본의 물건을 실어오지 못한다
譬如野中井(비여야중정) 비유하자면 들의 연못과 같아
不汲將自渴(불급장자갈) 긷지 않아서 저절로 말라 버리려 한다
安貧不在寶(안빈부재보) 안빈 낙도는 재화에 있지 않다 하니
生理恐日拙(생리공일졸) 살림하는 이치가 날로 졸렬해질까 두렵다
太儉民不樂(태검민불락) 지나친 검소함을 백성들 좋아하지 않으니
太窶民多竊(태구민다절) 지나친 가난하여 백성들의 도적질이 많아진다.
〚작자〛 박제가(朴齊家, 1750~1805) 18세기 후반기의 대표적인 조선 실학자. 호는 초정(楚亭). 그는 서울에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 『북학의』(北學議)가 있다.
□ 박지원(朴趾源)
〇 산행(山行) - 朴趾源
叱牛聲出白雲邊(질우성출백운변) 이랴 저랴 소몰이 소리 흰 구름 속에 들리고
危嶂鱗塍翠揷天(위장린승취삽천) 하늘 찌른 푸른 봉우리엔 비늘같이 밭골 즐비하네
牛女何須烏鵲渡(우녀하수오작도) 견우직녀 왜 구태여 까막까치 기다리나
銀河西畔月如船(은하서반월여선) 은하수 서쪽 가에 달이 걸려 배 같은데
〇 전가(田家) - 朴趾源
翁老守雀坐南陂(옹로수작좌남피) 늙은이 참새 지켜 남쪽 비탈에 앉았는데
粟拖狗尾黃雀垂(속타구미황작수) 개꼬리 수수 이삭에는 참새가 매달렸구나
長男中男皆出田(장남중남개출전) 장남과 차남이 모두 밭에 나가 있어
家田盡日晝掩扉(가전진일주엄비) 시골집 하루 종일 사립문이 닫혀 있구나.
鳶蹴鷄兒攫不得(연축계아확부득) 솔개가 병아리 채 가려다 못 낚아채니
群鷄亂啼匏花籬(군계난제포화리) 박꽃 핀 울타리에 닭들 울음이 시끄럽구나
小婦戴棬疑渡溪(소부대권의도계) 젊은 아낙 광주리 이고, 개울 건너는데
赤子黃犬相追隨(적자황견상추수) 벌거숭이와 누렁이가 졸랑졸랑 따라가는구나.
〚작자〛 박지원(朴趾源, 1737, 영조 13~1805, 순조 5): 호는 연암(燕巖). 면천군수(沔川郡守)와 양양부사(襄陽府使)를 지냈다. 《열하일기》, 《연암집》, 《허생전》 등을 쓴 조선후기 실학자 겸 소설가.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하였다.
□ 박팽년(朴彭年)
〇 정부연(政府宴)
廟當深處動哀絲(묘당심처동애사) 묘 당 깊은 곳에 거문고 울릴 때
萬事如今摠不知(만사여금총부지) 모든 일을 자세히 알 수 없구나
柳緣東風吹細細(유연동풍취세세) 실버들 동풍에 가늘게 흔들리고
花明春日正遲遲(화명춘일정지지) 꽃핀 봄날은 길기도 하구나
先王大業抽金櫃(선왕대업추금궤) 선왕의 큰 업을 칭찬할 때
聖主鴻恩倒玉扈(성주홍은도옥호) 성주의 큰 은혜 술잔에 가득하여라
不樂何爲長不樂(불낙하위장불낙) 즐거운 이날의 계속되는 놀이 속에
呂歌醉飽太平時(갱가취포태평시)태평한 세월이 오래 깃 들겠구나
〚작자〛 박팽년(朴彭年, 1417~1456) 조선 전기의 문신.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집현전 학사로 여러 가지 편찬사업에 종사했고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김질의 밀고로 탄로되어 체포되어 고문으로 옥중에서 죽었다.
□ 백광훈(白光勳)
〇 기문순거(寄文舜擧)
無紙亦無筆 (무지역무필) 종이도 없고 붓도 없으니
寫懷山竹枝 (사회산죽지) 대나무 가지로 마음을 적는다.
君來不敢望 (군래불감망) 그대 오길 감히 바라지 못해도
此日勝常時 (차일승상시) 오늘 기분이 평시보다 좋구나.
〇 부춘별서(富春別墅) - 白光勳
夕陽湖上亭 (석양호상정) 석양에 비친 호수 위의 정자에서 볼 때
春光在湖草 (춘광재호초) 봄 풍경이 호수 풀밭에 있네
明月山前榭 (명월산전사) 밝은 달빛 산 앞 정자에서 보니
花陰看更好 (화음간갱호) 꽃그늘 바라볼수록 더욱 좋구나
◀ 이 시는 부춘에 있는 별장에서 지은 것으로, 봄을 맞은 별장의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〇 억최고죽(憶崔孤竹) - 白光勳
相思脈脈掩空齋(상사맥맥엄공재) 텅 빈 서재 닫아 둔 채 서로 생각하며 응시할 뿐
千里人今碧海西(천리인금벽해서) 천 리 밖 사람 지금 벽해 서쪽이네
孤夢不來秋夜盡(고몽불래추야진) 가을밤이 다가도록 외론 꿈도 안 꿔지는데
井梧無響月凄凄(정오무향월처처) 샘가 오동 소리 없이 지고 달빛은 차갑구나
◀ 이 시는 고죽 최경창(崔慶昌)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〇 홍경사(弘慶寺) - 白光勳
秋草前朝寺 (추초전조사) 가을 풀, 전 왕조의 절
殘碑學士文 (잔비학사문) 남은 비석에 한림학사의 글이로다
千年有流水 (천년유류수) 천 년 동안 흘러온 물이 있어서
落日見歸雲 (낙일견귀운) 지는 해에 돌아오는 구름을 본다
〚작자〛 백광훈(白光勳, 1537~1582) 본관은 해미(海美). 자는 창경(彰卿), 호는 옥봉(玉峯). 아버지는 백세인(白世仁)이며, 형인 백광안(白光顔)과 백광홍(白光弘) 및 종제 백광성(白光城) 등 한 집안 4형제가 모두 문장으로 칭송을 받았다.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사람이다.
□ 변계량(卞季良)
〇 감흥 칠수(感興 七首) - 卞季良
其四(기사)
春蠶復秋蛾(춘잠복추아) 봄철의 누에가 가을에는 나방 되니
歲月無停期(세월무정기) 세월은 멈출 기약이 없구나
人生非金石(인생비금석) 인생은 금석처럼 단단하지 않으니
少年能幾時(소년능기시) 젊은 시절 얼마나 되겠는가
馳名日拘束(치명일구속) 이름을 내려니 날마다 얽매이고
靜言心傷悲(정언심상비) 말없이 지내자니 마음이 슬프구나
旣壯不努力(기장불노력) 젊어서 노력을 하지 않으면
白首而無知(백수이무지) 백발이 성성토록 아는 것이 없다오
思之一長歎(사지일장탄) 생각하며 길게 탄식하니
庶幾來可追(서기래가추) 오는 것을 따를 수 있을 것 같네
〇 근정전(勤政殿) - 卞季良
煌煌金殿照層巒(황황금전조층만) 찬란한 금빛 궁궐 첩첩 산을 비추는데
樹葱籠景氣閒(수총롱경기한) 옥 같은 나무 푸르러 경관이 여유롭네
閶闔九天開日月(창합구천개일월) 구천의 천문(天門)에 밝은 빛이 열리니
衣冠五夜集鴛鸞(외관오야집원란) 선비들은 오경(五更)에 궁전에 모여드네
衆心離合分毫忽(중심리합분호홀) 민심은 순식간에 이합집산(離合集散)하니
百代興衰可鑑觀(백대흥쇠가감관) 역대의 흥망성쇠 거울로 삼아야지
裁決萬機猶未罷(재결만기유미파) 나랏일 처리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데
日斜花影上欄干(일사화영상난간) 해 기울자 꽃 그림자 난간으로 올라왔네
〇 설청 (雪晴)
風急雪花飄若絮(풍급설화표야서) 불어오는 강풍에 눈꽃은 솜처럼 날리고
山晴雲葉白於綿(산청운엽백어면) 산이 개니 구름 잎사귀 솜보다 더 희구나
箇中莫怪無新句(개중막괴무신구) 여기서 좋은 시 없음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佳興從來未易傳(가흥종내미역전) 예부터 좋은 흥취 쉽게 전하지 못한다하네
〇 제락천정(題樂天亭) - 卞季良
樂天亭上又淸秋(낙천정상우청추) 낙천정 위로 또 맑은 가을이 왔는데
地戴明君佳氣浮(지대명군가기부) 이 땅에 명군 모시니 서기(瑞氣)가 떠오르네
疎雨白鷗麻浦曲(소우백구마포곡) 부슬비 속 백구는 마포 어귀 날고
落霞孤鶩漢山頭(낙하고목한산두) 지는 노을 외로운 오리는 한산 위로 날아가네
仁風浩蕩草從偃(인풍호탕초종언) 인풍이 호탕하니 풀이 좇아 절로 쓰러지고
聖澤瀰漫水共流(성택미만수공류) 성스런 은택이 가득하니 강물도 함께 흐르도다
宵旰餘閒觀物象(소간여한관물상) 정사(政事)에 바쁘신 여가에 풍광을 감상하니
人間仙境更何求(인간선경갱하고) 인간의 선경(仙境)을 어디서 또 구하리오
〚작자〛 변계량(卞季良, 1369, 공민왕 18~1430, 세종 12): 본관은 밀양.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 수문전제학, 의정부참찬,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화산별곡(華山別曲)」·「태행태상왕시책문(太行太上王諡冊文)」을 지어 조선 건국을 찬양하였다.
저서로 『춘정집(春亭集)』 3권 5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