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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8. 큐티
사도행전 13:38 ~ 5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설교 (3), 그리고 이방인 선교에 대한 사명 선언
관찰 :
1) 예수로 말미암는 죄사함
- 38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죄 사함이 임하게 되었고,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에게 지금 증거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하나님이 복음을 흐릿하게 만들지 않고 있다. 선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죄 사함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라고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
- 39절.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오직 죄가 드러날 뿐이다. 향후 사도 바울은 이 부분에 대해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명쾌하게 증명해 낸다. 이미 사도 바울은 사역 초기부터 바울 신학의 핵심을 이루는 뼈대가 완성되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은 율법을 지켜서는 불가능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임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2) 불신자들의 멸망에 대하여
- 40절.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 사도 바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임하게 되는 멸망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 멸망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사람들, 그리고 오고오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 41절.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 이 말은 하박국 1: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의 말씀을 약간 변형시켜 발췌 인용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으로 말미암은 배타적 우월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이방인들이 구원의 길로 인도될 것이라는 것을 밝히게 된다.
3) 복음의 말씀에 대한 놀라운 반응
- 42절.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정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 회당장도, 참여한 사람들도 모두 사도 바울의 말씀에 감동이 되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들은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은 다음 주의 안식일에도 말씀을 부탁하게 되었다. 이 일에 성령께서 관여하시고 역사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 43절.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 회당 모임이 끝난 뒤에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발생했고, 예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이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공동체가 발생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할 것을 권면했다.
- 44절.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 누가는 의도적으로 약간 과장해서 말하고 있다. 당시에 비시디안 안디옥의 사람들이 거의 다 모일만한 공간도 없고,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방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표현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고, 새로운 공동체가 흥왕하게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4) 유대인들의 비방과 이방인 선교에 대한 바나바와 바울의 순종
- 45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 사도 바울과 바나바로 말미암아 예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큰 공동체가 형성되자 유대인들이 시기하게 되었다. 이들은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기득권을 소유하는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을 따르는 시민들이 바울과 바나바 일행을 따르게 되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게 된다. 악한 시도이고, 그들의 반박과 비방은 사탄으로부터 나오는 아이디어들이었다.
- 46절.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 반대에 부딪힌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하게 반응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한 것은 동족들에게 영생이 전파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예수 부활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기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바울과 바나바는 동족에 대한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동족들이 진리를 왜곡하는 것으로 인해서 이방인에게도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 47절.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알려주신 말씀을 전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서 사도 바울 일행에게 직접 말씀하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부활하셨기에 사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이방인 구원을 위한 부르심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 48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 이방인들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기억하시고, 구원을 위해서 사도들을 보내주심에 대한 감격이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찬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정된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즉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이방 선교를 향한 성령의 역사에 대한 현장성 있는 기술이다.
- 49절.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 주의 말씀이 유대인들 뿐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편만하게 퍼지게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5) 유대인들의 시기로 말미암은 방해 공작
- 50절.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의 설교가 유대교 회당 중심의 공동체에 물의를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 대해서 호의적이던 이들이 대거 유대교가 아니라 신생 예수교에 귀의하는 일이 발생하자 바울과 바나바를 추방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들 이데올로기적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에게 방해되는 자들은 제거하거나 쫓아내거나 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였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 여인들 중에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조정해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을 몰아내는 공작을 펼쳤다. 그들이 어떤 논리로 바울과 바나바를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내쫓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거짓과 속임수를 동원한 것임에 틀림없다. 경건한 귀부인들의 남편을 포함한 비시디안 안디옥의 지도적인 이들, 특별히 유대인들이 볼 때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총 동원해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을 등떠밀어 내보내는 일을 행했다.
- 51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 이들의 행동은 마 10:14에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이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 말씀대로 실천한 것이다. 이러한 풍속은 당대에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지역에서 나오게 될 때 행하던 것이었다.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동쪽으로 약 120km 가량 떨어진 이고니온으로 이동했다.
- 52절.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 사도 바울과 바나바에 의해서 전도함을 받은 이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 이들 역시 예루살렘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임재의 사건이 동일하게 임하게 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누가는 성령의 임재가 이방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임하게 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로 인해서 향후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에 대한 성령 사역의 증거가 되었다. 동시에 기독교 공동체가 비시디아 안디옥 지방에도 굳건하고 견고하게 세워지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가르침 :
1) 사도 바울은 비시디안 안디옥에서의 설교에서 이미 그가 깨달아 정리한 바울 신학의 정수를 드러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고, 그것을 믿음으로 얻게 된다는 위대한 복음의 선포였다. 죄사함을 얻게 되는 유일한 방편으로서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한 것이다. 유대인의 우월성을 배제했기에 이방인들에게는 참된 복음이었고, 유대인들에게는 반감과 저항이 일어나는 말씀이었다.
2) 사도 바울은 자신을 거절하는 이들이 있던 상황에서도 담대했다.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당당히 선포하고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경험한 실재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핵심에 있어서 죄사함에 대한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의 열매를 강조하셨던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3) 참된 복음이 선포되자 다음 주에도 말씀을 전해 줄 것을 부탁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이방인들이 많았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고 유대교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길이라고 여겼고, 그렇게 증거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증거한다고 하는 자가 그것이 필요없다고,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말에 분통이 터졌다. 그런데다가 비시디아 안디옥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을 보고 분노하게 되었다. 이들의 분노는 참으로 성령을 훼방하는 악한 시도였고,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것이었다. 그런 유대인들의 자세는 하나님의 구원에서 벗어난 행위였고, 바울과 바나바 역시 그들을 위해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구원하기로 작정된, 즉 예정된 이방인들을 위하여 복음 증거를 집중했다. 복음은 방해꾼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기로 작정된 이들을 위하여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대인들의 비방은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명자라는 것이 더욱 부각되게 만들었다.
4) 유대인들의 방해가 있었을지라도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장소를 옮기며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된다. 비시디아 안디옥의 성도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떠났지만,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선택했다. 그로 인해서 교회 공동체는 강력하게 세워지게 되었다.
적용 :
1) 복음에 대한 선명한 메시지가 내 안에 있어야 한다. 일제시대 최권능 목사님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메시지가 입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새겨져 있었기에 그렇게 흘러나오게 되었던 것과 같다. 복음은 입술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삶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2) 사도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복음에 대해서 온전하게 증거했다. 그 과정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 있었던 것과 동일한 사건이 비시디아 안디옥 이방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했다. 이것이 이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해서만 특별 케이스로 성령 강림을 체험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교회에 주님의 성령은 임하시고, 하나님의 사람 되게 만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오늘날도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주님이 일하시는 패턴을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3) 유대인들의 극심한 방해공작이 있었지만 그 모든 일들을 묵묵하고 끈기있게 이기는 길로 나아간 사도 바울과 그 일행들이 놀랍다. 나의 길에 대해서도 방해공작이 발생했다. 그것을 믿음으로 이기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이다.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나와 아내와 가족들을 성숙하게 이끄실 것임을 믿는다. 또한 내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더욱 깊이 배우게 인도하실 것임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