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머슬카의 대명사 '쉐보레 카마로'는 2011년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온 이후 햇수로 8년이 지났다. 아직도 본명보다 ‘범블비’라는 영화 속 캐릭터 이름으로 유명하다. 그 사이 풀 모델 체인지를 한 번 거쳤다. 현재 판매되는 모델은 6세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더 뉴 카마로 SS다.
영화의 영향인지 순둥순둥하고 어째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던 이전 5세대의 외관과 달리 6세대는 강력한 정통 머슬카 카리스마를 내뿜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전체적으로 강력한 힘을 한 겹 숨긴 듯 차분해 보이는 인상이다.
전면부는 중세시대 투구를 연상시키는 범퍼가 눈길을 끈다. 전작의 과격한 인상을 숨기면서도 강인함이 느껴진다. 가운데 자리잡은 블랙 보타이 엠블럼은 단순히 검게 처리한 것을 넘어 아예 구멍을 뚫었다. 냉각에 도움을 주는 작은 디테일이다.
측면은 커다란 엔진이 자리잡기 위해 길게 뻗은 보닛을 축으로 한, 전통적인 디자인 특징을 그대로 계승했다. ‘머슬카’라는 명칭에 걸맞게 단단하면서도 역동적인 근육질 차체를 뽐낸다. 20인치 휠은 평범한 디자인이지만 견고한 느낌으로 머슬카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스포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브렘보 브레이크 시스템도 눈에 띈다.
한껏 치켜든 후면은 테일램프를 클리어 타입으로 변경하고 테두리를 둥글게 다듬어 인상이 크게 달라졌다. 한결 부드러워졌지만 왠지 스포츠카 콜벳을 닮아 더 강력해보이기도 한다.
사이드 미러는 수동 접이식이다. 북미사양 차종의 경우 전동 접이식 사이드 미러는 탑재했지만 도어 잠금 시 함께 접히는 ‘락폴딩’ 기능은 빠진 차종이 왕왕 있는데 이 차는 한 술 더 뜬다. 운전석이야 충분히 손으로 펼 수 있지만 접혀있는 조수석 사이드 미러는 운전자를 결국 차에서 내리게 만든다.
유난히 길고 육중한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선다. 확실히 주차 공간이 좁은 국내환경에서는 타고 내리기에 다소 불편이 따른다. 낮은 시트포지션과 높게 솟아오른 내장으로 처음에는 갑갑하지만 시트 포지션을 맞추다 보면 금세 적응된다.
실내는 각지고 투박했던 이전 5세대에 비해 곡선을 많이 사용해 한결 부드러워졌다. 의외로 편의사양이 만족스럽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는 내비게이션과 연동돼 드디어 존재 의미를 찾았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열선 스티어링 휠과 통풍시트까지 장착됐다.
쉐보레의 보타이 엠블럼 대신 ‘CAMARO’ 로고가 적힌 투박한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림이 두꺼워 손에 쥐었을 때 안정감이 느껴진다. 여기에 구멍까지 숭숭 뚫려 미끌림이 적다. 스티어링 휠 뒤편의 시프트 패들은 스포티한 주행에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계기판은 이전 사각형 실린더에서 평범한 원형으로 돌아왔다. 계기판 상단에 엣지를 넣어 전작의 흔적을 남겼다. 4개의 게이지가 통합된 중앙의 8인치 LCD정보창은 쉐보레 답게 그래픽 디자인이 다소 엉망(?)이지만 다양한 정보를 알기 쉽게 표시해준다. 한글화가 완벽한 것은 장점이다. 여러 테마를 변경할 수도 있다. 랩타임 스톱워치와 런치 컨트롤 등 트랙주행을 위한 메뉴도 정보창으로 조작할 수 있다.
프레임리스 룸미러가 눈에 띄지만 차량 디자인 특성 상 후방 시야가 좋지 않다. 모양이 어째 캐딜락과 비슷하다 싶더니 그 룸미러였다. 뒤편의 레버를 당기자 고화질 후방모니터 화면이 등장한다. 화각이 넓어 일반적인 거울보다 더욱 넓은 면적을 보여준다. 움직임이 부드럽고 생각보다 이질감도 크지 않다. 다만 야간 주행 시에는 빛 번짐이 심해 종종 시야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새롭게 업데이트 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더 뉴 말리부에서 경험했던 것과 흡사하다. 마찬가지로 직관적인 메뉴 및 그래픽 개선으로 조작편 의성이 상당히 좋아졌다. 터치감도 뛰어나다. 여기에 낮은 음역대를 잘 표현해주는 9개 스피커의 BOSE 프리미엄 서라운드가 즐거움을 더한다.
내비게이션도 이전의 쉐보레 순정 내비게이션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 등 최신 폰 커넥티비티를 지원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다만 이 모든 좋은 기능을 다루기 어렵게 만드는, 고개 숙인 인포테인먼트 모니터는 그 의도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차량 특성을 감안해도 수납공간은 전반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컵홀더를 제외하면 스마트폰이나 지갑을 놓을 만 한 마땅한 공간을 찾기 힘들다.
비공식 수납공간인 뒷좌석은 역시 성인이 탑승하기에는 큰 무리가 따른다. 시트포지션을 맞추다 보면 뒷좌석 승객의 레그룸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 어린아이가 앉기에도 힘든 구조다. 헤드레스트 없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뒷좌석에 사람을 태우지 말라"는 제조사의 암묵적 암시인 셈이다.
트렁크 공간도 기대 이하로 좁다. 무엇보다 입구와 폭이 좁고 높이도 낮다. 웬만한 짐은 제대로 넣기 힘들 정도다. 그나마 다행히 뒷좌석 폴딩을 지원해 골프백 같은 길이가 긴 짐을 적재하기 용이하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8기통 6.2L 자연흡기 엔진이 우렁찬 존재감을 내뿜는다. 시승한 날짜가 꽤나 서늘한 날씨였음에도 후드의 거대한 덕트에서는 금방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액셀레이터 페달 부근에서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발 쪽으로 향하는 히터가 필요없을 지경이다.
새로운 10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린 453마력, 62.9kg.m의 토크가 오롯이 뒷바퀴에 집중돼 차체를 거칠게 밀어낸다. 정지상태에서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 물 만난 고기처럼 꼬리를 휘저으며 튀어나간다. 넉넉한 배기량과 묵직한 배기음을 동반하는 가속감은 터보차저를 통해 얻어지는 다운사이징 엔진의 그것과는 본질이 다른 감성을 선사한다.
매끄러운 코너링도 여느 유럽 스포츠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캐딜락 등 GM의 프리미엄 라인업에 쓰이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MRC)’이 적용된 덕분이다. 스포츠모드와 트랙모드로 드라이브 모드를 옮기자 더욱 탄탄해진 서스펜션은 램프 구간 등 깊은 코너나 반복되는 코너에서 차체를 움켜쥐며 안정적으로 돌아나간다.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보던, 낭창낭창 흔들리던 과거 머슬카의 움직임과 사뭇 다르다.
편안한 주행과 과격한 주행에도 10단 자동변속기의 들락거림이 빈번하다. 촘촘해진 기어비덕에 일상에서 한결 더 부드럽고 여유있는 주행이 가능하다. 연료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덤이다.
여기에 시속 100km 정도로 항속주행을 하면 4기통만 작동시켜 불필요한 연료소모를 줄이는 가변 실린더 기능이 탑재됐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에도 달린 기능으로 연료 효율성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8기통의 기분 좋은 사운드를 듣기 위해 악셀을 밟는 오른발에 자꾸 힘이 실려 지속 시간은 길지 않다.
거칠기 그지 없는 외관 디자인과 우렁찬 배기음에서 짐작되는 것과 달리 의외로 일상환경에서의 주행은 부드럽다. 과속방지턱 등 요철을 지날 때에도 불쾌한 충격은 느껴지지 않는다.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이 왜 고급세단과 스포츠카에 두루 쓰이는 지 납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데일리카로 활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사각지대 경고, 차선이탈 경고 등 안전사양을 탑재했으나 자동긴급제동,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보다 적극적인 최신 주행안전 사양이 빠진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10단 자동변속기와 가변실린더 기술이 적용됐다고 해도 연비는 차량의 성격과 배기량을 감안해야 한다. 사흘 간 250km 가량을 주행하며 기록한 평균 연비는 6.3km/L다. 출퇴근 정체가 잦은 동부간선도로를 경유한 것과 시승 동안 여러 차례 과격한 주행이 동반 된 것을 감안하면 납득 가능한 수치다.
카마로는 듣기만 해도 설레는 6.2L V8엔진의 강력한 파워에 6세대로 접어들며 스포츠카 못지않게 고급스러운 주행질감과 MRC 채용으로 코너링 실력까지 갖췄다. 최고의 가성비를 갖춘 스포츠카라고 불릴 만 하다.
비슷한 성능을 내는 유럽 브랜드 스포츠카를 타려면 1억원은 가뿐히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약 400만원 가량 올랐지만 여전히 5천만원 대를 유지한다. 비슷한 동네 친구 포드 머스탱 보다 1천만원 이상 저렴하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손에 넣을 수 있는 비교적 현실적인 가격에 출시됐으나 6.2L 대배기량 스포츠카 유지 비용은 역시 만만치 않다. 높은 보험료도 문제지만 자동차세 역시 연간 160만원대로 엄청나다. 비슷한 가격대의 차량과 단순히 차량가만을 놓고 고민하기에는 그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다.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정작 잡기는 어려운,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있는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