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봄부터 나는 모든 일을 미루고 몇달 동안 일본을 방문하였는데 주로 대체의학을 연구하는 의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자연요법 연구소를 운영하는 도쿄의 와타나베 쇼우 선생과 나고야의 가씨오 선생의 병원에서 환자처럼 입원하여 단식을 직접 체험하면서 여러가지 자연요법의 원리와 실기를 배웠습니다. 단식과 생식의 과학적 연구에 있어서 세계적인 개척자로 공인받고 있는 오사카 대학의 고오다 교수의 연구소에 있는 동안 많은 환자들을 접촉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단식과 생식을 비롯한 자연요법의 탁월한 생명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오사카 대학의 예방의학 교수를 역임한 마루야마 히로시 선생은 당시 일본의 대체의학 연구가들의 대부격이었는데, 이분은 동양의 전통의학들 특히 인도의 아유르 베다를 꼭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여러가지 대체의학에 관한 이분의 연구 가운데서도 특히 식용소금에 대한 연구는 아주 유명합니다. 마루야마 선생의 주장에 의하면 식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뽀송뽀송한 정제염은 화학약품과 같은 것이므로 사람이 결코 먹어서는 안되며 자연 그대로의 천일염은 불에 구워 볶음소금으로 먹을 경우는 입맛에 맞는 만큼 짜게 먹어도 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개 서양의학에서는 짜게 먹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나 이는 하얀 정제염에 한해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소화기 내과의사로서 부항과 식양요법을 주로 해서 특히 간장질환의 치료에 명성을 얻고 있는 후쿠오카의 안도오 선생,《생명의 의학, 생명의 농업》이라는 유명한 저서의 내용처럼 인간의 생명을 하나의 우주로 보고 자연과의 전체성 속에서 관찰해야 한다는 나라(奈良)의 생태주의 의사 야나세 선생, 구마모토 대학 내과교수로 재직중에 본인의 만성간염을 대체요법으로 극복한 뒤 교수직을 그만두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꾸찌 양생요양원을 운영하는 다께구마 선생, 도쿄 대학 생리학 교수로 재직중에 서양의학의 약점을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의학을 제시한 모리시타 선생 등을 만났습니다. 지난 십여년간 내가 활용해온 대체의학의 방법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주로 이분들에게서 배우고 익힌 것들입니다.
1987년 가을 IPPNW(핵전쟁 방지 국제 의사회)와 관련된 일 때문에 미국의 하버드 보건대학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단체의 공동의장으로서 노벨상 수상자인 로운 교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분은 심장병 전문의였는데도 대체의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분을 통해서 서양에서도 다양한 대체의학이 독창적인 의료분야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서양의학과 병행하여 단식과 다양한 식양요법, 명상, 최면, 카이로푸락틱, 동종요법 등과 같은 대체의료를, 면허를 가진 의사들이 환자치료에 실제로 활용하고 있었고, 미 연방정부와 의료보험회사들이 대체의학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느꼈습니다.
의학에는 서양의학말고도 여러가지 대체의학이 있을 수 있으며 같은 질환에 대한 치료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1987년 한해 동안 일본, 미국의 방문, 그리고 국내의 대체의료 연구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하여 그후 다시 환자를 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나는 화학약품이나 수술만을 치료방법으로 여기는 데서 상당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서양의학을 도외시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환자를 위해서 어떤 것이 최선의 치료법인가를 검토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실제로 나는 자연요법과 같은 대체의학의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의 치료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의학에는 독특한 장점이 있다
내가 대체의학의 장점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활용하기 시작할 무렵인 1987년, 50대 후반의 간암환자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암덩어리가 두 주먹 크기로 만져졌는데 한 대학병원 암센터에서 한두달 내에 사망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이 환자는 내가 일하던 병원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암 부위의 통증이 심해지자 단지 진통을 목적으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꼭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으나 이 방법이 통증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자 환자와 가족은 내 방법대로 따르고 싶어했습니다. 생식을 위주로 몇가지 식양요법, 명상, 자기암시, 기타 자연요법의 방법들을 병행했는데 이 환자분이 이 방법을 믿고 열심으로 노력한 결과 입원 일주일만에 통증이 거의 사라지고 식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약 40일 가량 입원했는데 이 사이에 많은 호전이 있었습니다. 퇴원 후 자가치료를 꾸준히 계속하다가 약 3개월 후 처음 진찰받았던 암센터에서 재진을 받았는데 너무 호전되어 있어서 의사들이 이상하게 여기더라는 것입니다. 약 6개월 후 이 환자의 암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심부전증을 앓고 있던 40대 초반의 부인에게서도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장기간 입원했다가 곧 사망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고 귀가하여 가족들이 장례를 논의하고 있던 상태에서 나를 만났습니다. 극도로 탈진되어 있어서 숨만 쉬고 있지 않다면 그대로 시체라고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 환자는 내게 오기 전까지 한달 가량 대변을 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먼저 하제(下劑)와 관장을 통해서 장내를 비우게 한 다음 야채즙과 생수, 유동식 등을 조금씩 들게 하고, 많은 시간을 사지의 모세혈관을 미세진동시키는 물리적 방법과 족탕법을 시행하였습니다. 명상과 상상법, 그리고 여러 자연요법을 병행한 결과 약 3개월 후 이 부인은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줄 만큼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나 자신에게도 놀라웠습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을 그대로 시도해본 것뿐인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서양의학 교과서에는 말기 암과 같은 난치병 환자 천명 중에 한두명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절로 낫는 경우가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대체의학을 통해서 좋아지는 경우가 모두 여기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의학에는 서양의학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뛰어난 장점과 치유력이 있습니다. 마치 서양의학 가운데는 다른 어떤 의학적 방법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치료의 힘이 있듯이 말입니다.
아무튼 이와 같은 특별한 경험들이 계기가 되어 나는 자연요법 같은 대체의학의 방법들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장점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의학의 근본은 의식의 탐구
1991년 가을부터 그 이듬해까지 나는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 의과학(醫科學)센터의 의사학과(醫史學科)에 연구교수로 가 있었습니다. 이름만 연구교수일 뿐 의학사와 의학철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었으므로 학생과 같은 입장에서 공부했습니다.
내가 의학사와 의학사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이기는 했지만 동양의학이다, 대체의학이다, 민간요법이다 하여 이것저것 주워얻은 정보들을 하나의 실용적인 체계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있어야겠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본다고 할 때 오늘의 의학의 참모습을 바로 이해하고 미래의 의학을 전망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기간에 내가 얻은 소득 중의 하나는 오사카 대학의 마루야마 교수가 전에 그처럼 간곡히 당부하던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 베다를 배울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국제 아유르 베다 의학회 회장인 쵸프라 박사가 주관하는 이 교육은 환자를 임상에서 직접 관찰하며 아유르 베다의 이론과 실기를 익히는 코스였는데 이 과정을 이수한 의사들에게는 아유르 베다 치료법을 환자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라이센스가 주어집니다. 내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아유르 베다 메디칼 닥터라는 라이센스를 얻은 셈이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그동안 그 실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유르 베다 의학을 통해서 가장 크게 배운 바는 순수의식(Pure Awareness)의 힘이며, 의학이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한없이 광대하다는 점입니다.
아유르 베다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서 생명이라는 뜻의 아유르(Ajur)와 지식 또는 과학이라는 뜻의 베다(Veda)의 합성어입니다. 아유르 베다라는 말의 의미가 표현하고 있듯이 이것은 한계도 없는 무한한 생명의 탐구를 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유르 베다는 생명과 자연치유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병을 치유시키는 근본 에너지를 자연치유력이니, 생명력이니 하고 말들은 하지만 대부분의 의학체계는 이 자연치유력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아예 탐구대상으로 삼고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서양의학의 경우 병이 치유되는 현상적인 메커니즘만 설명하고 있을 뿐 현상 너머의 치유력의 근원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치유력, 생명력의 실체는 실증과학으로 탐구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유르 베다에서는 건강과 질병을 결정짓는 최초의 원인을 의식과 신념으로 보고 이것을 다루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내가 생명의 본성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고 지금과 같은 생명관과 의료관을 가지도록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은 청화대화상(淸華大和尙)과 해리 팔머(Harry Palmer)입니다.
이분들은 생명과학이나 의학을 전공한 바는 없지만 내가 만난 가장 위대한 생명과학자이자 의학자입니다. 이 두분과의 조우를 통해서 나는 생명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전체적이고 다차원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새로운 통찰과 메시지를 얻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의 금강선원에 주석하고 계시는 청화대화상께서는 모든 정통적인 종교와 동서고금의 위대한 철학, 과학사상 가운데에 일관하는 생명관과 우주관을 하나의 원리로 회통시켜 내보임으로써 생명의 실상, 생명의 본질이란 무엇이며 생명의 본질을 체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명징하게 비추어주고 계십니다. 이분은 모든 종교와 사상의 갈래를 초월하여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성자 가운데 한분이며 온 인류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신성(神性)의 빛 그대로입니다. 한 인간이 마음을 닦고 인격을 완성해갈 때는 이렇게 아름답고 자비로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영성을 통해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미국의 플로리다 올랜도의 해리 팔머는 원래 교육심리학자였는데 깊은 순수의식을 체험한 후, 과거 성인들이 한결같이 증명하였던 우주와 생명의 근본원리를 현대인들의 의식수준에 맞도록 쉽게 풀어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바타 코스(Avatar Course)'라는 영적 진화 및 의식탐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동안에 자기 생명의 본성과 물질 우주의 창조의 배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분은 모든 존재가 한결같이 무한한 생명의 근원임을 자각하게 함으로써 한정된 의식과 주입된 신념의 틀을 넘어서 삶을 창조적으로 살 수 있게 하고 나아가서 인류가 밝은 문명을 함께 창조할 수 있도록 그 방향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바타 프로그램의 직접 경험을 통해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의 근원은 한정지을 수 없는 순수의식이며, 질병이나 고통 또는 건강이나 행복을 지어내는 최초의 원인이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나는 환자가 자신의 신념체계를 바꾸는 것만으로 질병에서 풀려나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나는 이제 환자의 몸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지 않으며 질병의 최초의 원인이 되는 의식과 신념을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질병을 바라볼 때 종전에는 물질적이고 분석적인 관점에 치우쳐 있었다면 이제는 그러한 관점과 더불어 의식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을 함께 갖게 되었다고 표현한다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한 개인이 질병이나 불건강 가운데 있게 되는 데나 또는 질병이 치유되어 건강을 회복하게 되는 데 있어서 그의 신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치료자나 환자나 신념의 위대한 힘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치료자와 환자를 도와주는 가장 큰 힘은 믿음의 힘입니다.
환자와 그 가족이 지금 만나고 있는 의사와 치료가를 신뢰하고 선택한 치료법을 믿고 있다면, 또한 동시에 그 의사나 치료가가 자기 환자를 참으로 사랑하며 자신의 치료방법을 믿고 있다면 반드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
* 전홍준 前 조선대 의대교수. 이 글은 《완전한 몸, 완전한 마음, 완전한 생명》(도서출판 에디터, 1998년)에서 발췌한 것임.
첫댓글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