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정희는 군사 혁명을 통해 나라를 구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부국강병의 아버지로
칭송되고 있는 한편, 군사 쿠테타와 삼선 개헌 및 유신체제를 통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로, 그리고 정경유착 및 부정부패, 빈익빈부익부라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을 가져온 인물로
평가된다. 박정희는 전자에 의해 이 나라 근대화를 이루어 국가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선 건설 후 통일' 이라는 기치아래 확고한 대북 우위를 이룩하여 통일의 기반을 닦은 인물로 평가되는 반면, 후자에
의해서는 통일보다 자신의 정권 안보를 위해 반공을 이용한 반통일주의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이고 양면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어려울 때면 유령처럼 나타나 기승을 부리는 박정희
신드롬은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경도되어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은 그의 시대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가로막기 때문에 박정희에 대한 재고찰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 하겠다.
1979년 10,26 박정희 사후 90년대까지 박정희에 논의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것은
그의 사후 등장한 전두환 정권이 그의 복권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들 역시
암울했던 박정희 시대를 회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사후 국민들은 눈물로
그를 보냈지만 국민들 어느 누구도 그의 시대인 자유가 말살된 독재시대로의 회귀를 원하지 않았고,
국민들은 당연히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을 기대하였다. 마르크스가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은 두번 나타난다고(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했던가? 18년의 박정희 철권
독재가 사라지자 똑같은 군사 쿠테타를 통해 새로운 독재자인 전두환이 등장했다.
이는 국민들의 희망을 저버린 역사의 반역이었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독재의 후예인 전두환에 대해
끝없는 민주화투쟁을 시도했고, 마침내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그러나 이렇게 민주화로 확장된 정치적 공간에 박정희 추종세력들은 무덤에서 잠자던 박정희를
불러내 부활시킨 바, 이는 민주화 운동 세력이 박정희를 복권(?)시킨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많은 국민들은 과거의 역사를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아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기억한다.
또한 자신이 직접 겪은 사실은 잘 기억하지만 자신이 겪지않은 사실들은 쉽게 잊어버린다.
더우기 '레드 콤플렉스'에 의해 움츠러든 국민들에게 박정희가 조작한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
특히 인권과 민주주의를 짓밟은 범죄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할 기회도 없이, 아니 자신들이
직접겪은 사건이 아니었으므로 쉽게 잊혀졌다. 단지 눈에 보이는 양으로만 측정할 수 있는
경제적 지표와 생활수준의 제고에만 경도되어 국민들은 박정희의 부정적 측면을 잊어버렸다.
이러한 경향을 더욱 촉발시킨 장본인은 김영삼이었다. 그는 권력의 장악을 위해 박정희의 공화당을
계승한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전두환의 민정당과 합당이라는 역사의 배반을 통해 독재정권의
후예들과 손을 잡아 집권함으로서 권력의 정당성과 명분을 상실하였다. 또한 그의 경제적 실정은
IMF 체제라는 경제위기로 인해 퇴행적 보수세력들은 산 김영삼과 죽은 박정희를 대비시키면서
박정희 살리기라는 역전극을 성공시켰다. 특히 IMF 경제위기로 거리로 내몰린 중산층의 붕괴는
죽은 박정희의 강력한 리더쉽을 통한 경제발전을 그리워하는 향수로 이어져 박정희가 역사에
저지른 범죄행위는 묵과되고 그의 장점과 업적만 부각되는 우를 범하였고, 이에는 조-중-동이라는
보수주의 본영의 '박정희 담론'이라는 대국민 작업이 결정타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이러한 박정희 신드롬 현상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민들은 왜 보수세력들의 박정희 복권이라는 담론에 포섭되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김영삼이후 민주화 정권에서 박정희 독재시대에 공유되었던 지배적인 통치원리
집합체로서의 '박정희 개발독재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에 실패하였기 때문
이라는 지적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정해구교수는 90년대의 한국사회가 탈군부독재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반을 닦지 못했고, 변화하는 국제 경쟁 체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자본, 노동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새로운 경제운용 방식을 개발하지 못했으며, 성장 및
반공이데올로기와 결합된 박정희식 민족주의를 대체할 대안적 이데올로기를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박정희 시기를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권 탄압을 받은 경험이
없고, 권위주의적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보수언론이 만들어 놓은 담론인 인권탄압, 민주주의
파괴와 같은 문제는 경제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어쨋든 한국인들이 박정희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를 여전히 선호하는 것은 박정희가 그들을
부자로(특히, 박정희 시대 전국토 기준지가가 1조 3천억에서 '04년 310조로 폭등하였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박정희 독재정권의 경제배발 논리에 내포되어 있던 배금주의와
(잘살아 보세)와 물신주의가 이제는 국민들의 사고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박정희의 등장은 부활이 아닌 병리적 현상의 신드롬일 것이다.
참고 자료들
1. 강준만(인물과 사상 2, 왜 박정희 유령이 떠도는가, 조갑제를 해부한다, 박정희 신드롬을 해부한다)
2. 정해구(박정희 신드롬의 양상과 성격)
3. 한국정치학회 편(박정희를 넘어서)
4. 김상봉 (한겨레21 박정희를 숭배하는 것은 돈을 숭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도덕적 파탄인 것이다.)
5. 임지현(박정희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소나무)
6. 진중권(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1,2 개마고원)
첫댓글 병의 의미를 보자면, 현재가 팍팍하니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소리가 나온 것일뿐. 현재의 반성으로 여겨야 발전이 있을 것입라고 봅니다.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갈수록 살기가 힘드니 죽은 박정희를 되새기는 것일뿐, 지금이 낫다면 굳이 죽은 박정희를 되새김질하겟나이까?
박정희의 부활을 부른것은 본문에도 부분적인 지적이 있었습니다만 민주화 집권 세력의 태생적 오류(김영삼의 경우는 3당합당, DJ경우는 소위 DJP연합이라는 김종필의 공화당을 끌어들여 집권한 것에 있죠)
그것은 정치공학적인 선택에 의해 집권에는 성공하지만 국정운영에는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죠. 희극적이기도 했구요.
과거의 병이 아니라 현재의 병을 살펴보시는 것이...1997년 이후 외국자본에게 시장개방한 후의 "양극화"라 칭하는 자본주의의 필연.
21세기 신자유주의의 병폐는 그 패러다임의 본질이 20세기를 지배하던 자본주의 양태와 흡사하다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인류는 21세기와 그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세계질서의 패러다임을 마련하지도 못하고 맞이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에 대해 신영복 선생은 동양적 관계론의 부활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그의 고전강독에서 주장하고 계시지요. 충분히 논리적 근거가 있는 주장이더군요.
그 동양적 관계론이란 것이 인류 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나요? 궁금하네요.
가리안님에 대한 답을 상위 신자유주의의 대안 모색이라는 발제에 담아 보았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란 그 본질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인간이 빠져있다는 것에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고 보아 집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제외된 어떤 이상적인 사상이나 법이나 체제도 결국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님도 언제 기회가 된다면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 꼭 참석해 보세요. 비록 지금도 복권되어 교수직(성공회대)을 담임하고 있지만 저는 아직도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직성이 풀립니다. 특히 그 분의
동양철학 강의는 도올 김용옥처럼 흥분시키지도 않고 현실의 절절한 대입이 직설적이지 않지만 동양사상을 현실과 매치시켜 잔잔하고 설득력있고 논리적인 강의 내용엔 절로 무릅을 치게 됩니다. 리영희 선생 이후 최고의 사부를 만날수 있을 거라고 자부합니다.
주제에 오자가 눈에 띄어 수정합니다. 빅정희를 박정희로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원죄. 아비의 죽음에 대한 어떤 인식조차 못하는, 사립학교 재단의 병폐에 눈을 감은....
정희란 이름은 보통 여자 이름임에도 박정희란 이름에선 왜 전혀 여자의 이름같다는 느낌이 안드는 걸까요? 오타라고 하셨지만 빅정희라고 써도 무방할 듯 한데 한국사회에 끼친 그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말이죠. 안타깝게도 경제성장이란 화려한 빛(?)으로 인해 그의 그늘도 크다(빅)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본주의가 인간을 놓쳤다면 대안 체제는 인간뿐 아니라 관계론이 적용되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회복에 촛점을 맞춰야하리라 봐요. 휴머니즘은 인간적 입장에서는 귀한 것이지만 더욱 철저한 휴머니즘을 위해 휴머니즘을 넘어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휴머니즘만으로는 부족한 것, 그것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요? 21세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