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호세아 14,2-10 마태오 10,16-23
예수님의 말씀은 가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라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뱀에 관하여 알고 있는 내용은 창세기 3장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는 뱀의 유혹에서 시작됩니다. 간교한 뱀은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있는
욕망을 들추어내고 그들을 죄짓게 만듭니다. 비둘기는 창세기 8장의 노아의 홍수에 등장합니다.
비가 그치자 노아는 비둘기를 날려 보내고 비둘기는 마른 가지를 물고 옵니다.
이레가 지난 후 다시 날려 보낸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땅에서 물이 빠졌다는 의미입니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슬기롭다는 것은 분별력이 있고 치밀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뱀이 슬기롭다고
말씀하시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이 말씀은 오늘 독서의 표현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순박하다는 것은 성실하고 단순하다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여러 가지 길을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는 것으로 들립니다.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간다.
분별하고 식별하는 것, 그리고 성실하고 단순한 것은 세상에 파견되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제자들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도 필요한 자세입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이고 무엇이 세상의 뜻인지,
무엇이 의로운 것이고 무엇이 불의한 것인지 분별하고
그 길을 묵묵히 따라야 할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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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호세아 14,2-10 마태오 10,16-23
오늘 복음에서는 당신의 사명을 수행한 결과가 회당에서의 채찍질이요, 모든 이로부터의 미움,
그리고 형제들과 부모 자식 사이에서의 분열과 죽음임을 소개하시며, 그런 상황 안에서
절대로 좌절하지 말라고 이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에 익숙한 시대에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마음이 평화롭기를, 가족이 서로 화합하고 안정을 이루기를 바라지만,
그와는 달리 혼란과 갈등을 체험할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때때로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상황을
마주한 이들이 신앙의 무익함을 외치며 교회를 떠나는 것을 봅니다.
복음을 따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반드시 장애물을 만납니다. 주일을 지키느라 때로는 가족들,
친구들과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좋은 일을 하면서도 혼자만 잘났냐는 질투를 사기도 하며,
누군가를 배려하느라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을 건네시는 듯합니다. ‘슬퍼하지 마라. 복음 때문에
네 안에서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는 표징들이니.
용기를 내어라. 절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니.’
복음 때문에 어떠한 혼란과 다툼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고 슬퍼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누린다고 생각하는 안정과 평화가 그들이 받을 보상의 끝이기 때문입니다.
대전교구 김인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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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호세아 14,2-10 마태오 10,16-23
오늘 <복음>도 여전히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그들이 박해와 어려움을 당하게 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 무장시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 16)
여기서,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것은 먼저 제자들을 파견하는 것이 마치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보낸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이리 떼를 제거해주거나 쫓아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 가운데로 보낸다는 사실입니다.
곧 세상이라는 어장은 결코 환상적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 질곡과
어려움 속에 던져진 것입니다.
사실, 교회도 수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환상적인 곳이 아닙니다. 때로는 서로가 이리가
되어 헐뜯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러한 이곳에 우리의 파견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대처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 16)
여기서, “슬기롭다”는 말의 성서에 따른 뜻은 “지혜롭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먼저 “하느님을 경외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10, 19-20)
이는 “슬기로움”이 많이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슬기로움은 사랑 때문에 핍박과 박해를 받기도 하고, 끝내는 죽기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지혜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순박하다”는 말의 성경에 따른 뜻은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성품인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성품과 덕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 22)
이는 “순박함”이 그저 화를 내지 않고 온유한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강한 것을 말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순박함’은 끝까지 믿고 참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마지막까지 희망을 꺾지 않는 것입니다. 온갖 굴욕을 받기까지, 끝내는 배반 받고
죽기까지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어라.”는 말씀은,
설혹 이리 떼에게 생명을 노략질 당한다하더라도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이요,
“끝까지 믿고 희망하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박해를 두고, 산상설교에서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마태 5, 12)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1-12).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