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그리고 하루》 슬픔에 대한 희화적 접근
김 문 홍
‘코믹 릴리프(comic relief)'라는 연극적 기법이 있다.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 희극적 상황이 끼어듦으로 인해 그 비극이 더 강화되어 보이는 기법을 말한다. 일종의 반어법이다. 이스라엘의 영화인 <일주일, 그리고 하루>(아스파 플론스키, 2016년, 98분)가 바로 그렇다. 슬픔과 비탄에 대한 접근이 다분히 희화적이다. 슬픔에 맞닥뜨린 인물들의 희화적 언행을 통해 관객들에게 더 강하고 진한 슬픔을 전하고 있다. 그들의 일상 속에서의 비상식적 행동이 우스운 데에도 웃을 수 없다.
에얄과 비키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는다. 아들은 그동안 호스피스 병동에서 투병해 왔다. 아들이 없는 데에도 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흘러가는 일상과 이웃 사람, 그리고 무심한 풍경에 분노가 치민다. 죽었지만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영화는 장례식 전에 치러지는 7일 간의 애도 기간인‘시바’에 에얄과 비키 부부의 비일상적 일탈을 가볍게 접근하고 있다.
비키는 슬픔을 잊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학교로 돌아가려 하지만 남편인 에얄은 그렇지 못하다. 그는 아들의 담요를 찾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가 의료용 대마초를 손에 넣는다. 담배 말기에 실패한 그는 이웃에 서는 청년 줄러를 불러들인다. 그 때부터 에얄과 줄러의 일탈이 시작된다. 아들의 친구였던 줄러는 졸지에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들 부부의 가상적 아들로 행세하게 된다. 분노와 절망의 공간 속으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줄러가 죽은 아들의 방 침대 위에 잠들어 있다. 손가락을 입에 문 채 유아적 퇴행성의 모습으로 잠들어 있다. 이를 목격한 에얄은 그런 줄러 앞에 쪼그려 눕는다. 이 둘을 발견한 비키는 남편 옆에 나란히 눕는다. 세 사람이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은 아들을 잃기 전의 평온한 가정의 풍경을 복원하고 싶은 부부의 아들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적 은유이다.
또 하나의 장면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기 암으로 누워 있는 어린 소녀의 어머니에 대한 가상적 수술 장면이다. 에얄과 줄러, 그리고 소녀는 가운을 착용한 채 모의실험과 같은 수술을 연기해 보인다. 환자인 소녀의 엄마도 거기에 기꺼이 동참하게 되면서 잠시나마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의 사다리를 발견하고 웃는다. 남자는 소녀의 엄마를 수술하는 과정의 가상 실험을 통해 희미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아들의 장례식 전에 치르는‘시바’의 애도 기간을 통해 남자는 나름대로의 통과의례를 치른다. 그것은 일종의 슬픔과 절망의 발효 기간인 셈이다. 아들은 죽었지만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굴러가고, 모두의 일상은 어김없이 그대로 지속되고, 어느 누구 한 사람도 그들의 슬픔을 위무하거나 분노에 귀 기울여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남자는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해서 삿대질을 하고 시비를 걸고 싶은 것이다. 이웃집 줄러 부부가 가져온 사라다 음식을 쓰레기통에 쏟아 붓고, 병동에서 훔친 의료용 대마초를 피우고, 택시 운전기사와 시비를 벌이며 욕지기를 하기도 한다. 그의 부인인 비키는 악다귀같이 달라붙는 슬픔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려보기도 하고, 애써 학교 복직을 위해 임시교사와 실랑이를 벌이며 절망적 상황을 잊으려 안간힘을 쓴다.
결국 남자는 줄러와 함께 묘지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장례식을 구경하게 된다. 아들의 묘지 바로 옆자리에 묻힐 여동생을 위해 오빠는 통절의 진혼사를 늘어놓는다. 그러고서야 남자는 가슴속의 분노와 슬픔을 삭이고 아들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아들의 친구로 이웃집에 살고 있는 청년 줄러는 부재하는 아들의 자리에 자신을 들이밀어 상실의 아픔을 다독이는데 큰 몫을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슬픔과 비탄에 대한 희화적 접근을 통해, 죽음과 삶은 별개가 아니라 항상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시킨다. 그리고 슬픔을 슬픔으로 치유하기보다는 그것을 웃음으로 치유하고 극복하는 낙관론적인 세계관을 드러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죽음을 객관화시켜 인지하게 되는 특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것을 일상 속의 평범한 풍경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첫댓글 국제영화제는 거리도 멀고 보고 싶은 영화가 시간이 안 맞아서 개봉하면 봐야겠네요. 정보 안내 감사합니다.
자녀가 사고나 병사한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저라면 제대로 살기나 할까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지겠죠? 기회가 되면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