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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8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새벽을 깨워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갈까를 침대에 누워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이런 나의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나 말씀 앞에 앉았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좀 더 편한 것을 추구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를 더욱 사모하며 주님으로 가득한 자 되게 하소서.
육신에 속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내가 바로 작은 예수가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내는 샤론의 백합화로 삼아주소서.
하지만 나는 여전히 육신적으로 연약한 자임을 압니다.
하여 매 순간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육신의 정욕과 탐심으로 채워져 있는 내가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밤새 오염된 나의 영혼을 정결케 하사 우리 주님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주님과 연합한 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시 35:1-18
제목 : 우리의 연약함과 부정함을 폭로시켜서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1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2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3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4 내 생명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5 그들을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몰아내게 하소서.
6 그들의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며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뒤쫓게 하소서.
7 그들이 까닭 없이 나를 잡으려고 그들의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까닭 없이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8 멸망이 순식간에 그에게 닥치게 하시며 그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9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10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11 불의한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질문하며
12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13 나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14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
15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16 그들은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들의 이를 갈도다.
17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려 하나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18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 나의 묵상
본시는 다윗이 쓴 시로 사울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자신의 구원을 탄원한 피맺힌 절규와도 같은 시이다.
35편은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10절은 하나님께 지금 당장 추격자의 손길로부터 자신을 건져주실 것에 대한 탄원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11-18절은 자신을 반역자와 범죄자로 누명을 씌워 핍박하는 원수들의 간악함과 잔혹성을 고발하며 벌해주시기를 탄원하는 내용이다.
마지막 19-28절은 원수들의 부당하고도 사악한 핍박의 양상을 언급하며 자신과 원수들 사이의 최종적 공의의 판결을 탄원하는 내용이다.
오늘은 1-18절까지의 내용을 먼저 묵상한다.
주께서는 나와 다투는 자와 다퉈주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워주십시오.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잡고 일어나 나를 도와주십시오.
큰 창과 작은 창을 뽑아서 나를 추격하는 자들을 막아주시고 나에게는 내가 너의 구원이라고 말해 주십시오.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나를 해치려는 자들도 뒤로 물러나 수치를 당하게 해 주십시오.
그들을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흩으시고 주의 천사가 그들을 쫓아내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가는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셔서 주의 천사가 그들을 뒤쫓게 해 주십시오.
그들은 이유 없이 나를 잡으려고 웅덩이에 그물을 숨기며 내 목숨을 빼앗으려고 함정을 판 자들입니다.
하여 그 사람들에게 멸망이 순식간에 닥치게 하시고 자기가 친 그물에 가지가 걸려서 멸망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영혼이 주 안에서 기뻐하며 주의 승리를 크게 즐거워할 것입니다.
나의 모든 뼈도 주님과 같은 분이 누구십니까? 주님은 약한 자들을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며 가난한 사람과 억압 받는 사람을 약탈하는 자들에게서 건지시는 분이라고 찬양할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증인들이 법정에 서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캐묻기도 합니다.
그들은 내게 선을 악으로 갚고, 내 목숨마저 노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병들었을 때, 나는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또한 그들을 위한 내 기도에 응답이 없을 때, 내 친구나 형제들을 위해서 슬퍼하듯이 나는 그들을 위해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는 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슬퍼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넘어지자 그들은 모여들어 나를 비웃었고, 치며 때렸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쉬지 않고 욕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처럼 나를 잔인하게 비웃었고 나를 보며 이를 갈았습니다.
주여, 언제까지 이러한 일들을 보고만 계시렵니까? 잔인하게 짓밟히는 내 목숨을 건져 주십시오. 이 사자 같은 자들에게서 나를 구해 주십시오.
내가 예배 모임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왕이다.
따라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약한 자이다.
그처럼 연약한 다윗에게도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고통스럽고 숨쉬기조차 힘이 들 때는 자기를 핍박하고 억누르는 상대를 저주하기도 하고 천사들이 그들을 쫓아내 달라는 탄원도 서슴지 않는다.
다윗은 인간적으로 위대한 성군이지만 그도 역시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를 구원할 메시야가 필요하다.
그 메시야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의 약함은 오늘 본문에서도 처절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성경은 결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간적 모습을 추켜세우지 않는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잘 나갈 때 오히려 그들의 치부를 드러내어 이 사람도 역시 연약한 인간임을 폭로하여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실 때조차 그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이런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의 조상으로서 흠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역시 말년에 이방 여인 그두라를 첩으로 얻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인 앗수르 족속이 나왔으며 또한 미디안 족속 역시 그를 통하여 나왔다.
(창 25:1-4)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복을 받은 자이다.
아버지 다윗을 통하여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모든 물품과 재료들을 다 받았고 그 당시 금과 은이 흔할 정도로 물질의 복도 받았다.
그런 그가 말년에 처첩을 1,000명이나 거느렸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처첩을 1,000명이나 두었다는 것은 당시 이방나라와 정략결혼을 하여 나라를 외세로부터 굳건히 세위기 위함인데 이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능력과 술수로 나라를 이루겠다는 자기 의의 표명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솔로몬은 은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말들 또한 엄청났다.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신 17:16-17)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이처럼 솔로몬은 결국 그의 인생에서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이런 솔로몬 역시 자신의 힘이나 부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지극히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땅의 흙으로 지으실 때 처음부터 영생의 존재로 만드실 수 없었는가?
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 앞에 선악과를 두셨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 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히, 모트 타무트, 죽고 죽으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세전 언약을 당신의 아들과 함께 세우신다.
이 창세전 언약은 우리가 사람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영생을 주자는 약속이었다(딛 1:2).
이 약속에 근거하여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고 그들에게 선악과를 주시면서 이를 절대로 먹지 말 것을 경고하셨다.
이는 아담과 하와는 처음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을 때에 아직 영생의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작정과 같이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야만 그 아들을 믿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벧전 1:2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알고 계셨으며 그런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병 주고 약 주고 하시는 분이신가?
그렇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병 주고 약도 주시는 분이다.
중요한 것은 결코 우리 스스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하여 스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알고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신 것이다.
그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그는 하나님과 같이 선악의 판단을 하게 되었고 그런 선악구조 아래서 판단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담은 결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아담만 아니라 나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 오고오는 모든 사람들은 아담과 똑같은 아담의 군상이다.
이런 아담의 군상에 속한 나는 틈만 나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자기주장의지를 드러낸다.
아브라함도 솔로몬도 그리고 다윗도 그렇다.
그런 연약함을 드러낼 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임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 없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들을 잘 지키려고 부단한 노력을 경주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다 지킬 수 없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한다.
(약 2:10-11)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율법을 잘 지키려고 그 율법을 잘게잘게 나누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열심히 율법을 지키려고 하였으나 정작 마음으로는 율법을 어기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불쌍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처럼 하여도 그들의 마음으로는 그들을 업신여기며 조롱하는 것을 주님은 아셨기에 그런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일갈하셨고 그로 인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버린 것이다.
내 안에 이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있다.
내 안에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의 자기 의와 연약함이 있다.
나는 나 스스로 어느 목표를 정해놓고 거기로 올라가려는 자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그곳에 올라갈지라도 그것은 내가 정한 목표일뿐 영원의 눈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이룬 목표일지라도 시드는 풀이요 떨어지는 꽃에 다름 아니다.
내가 무엇으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에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부자시다.
따라서 나의 도움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저 내가 할 일은 우리 주님과 함께 복음으로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와 더욱 친밀해지는 것이다.
그런 교제를 통하여 영생을 누리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세상의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복음인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
그 교제가 나의 생명이며 영생임을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안에 용두사미와 같은 모습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문명국인 메소보다미아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에 살게 하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순종하였지만 그런 순종쟁이조차 마지막에는 이방 여인를 첩으로 얻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앗수르나 미디안의 조상이 된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꼽히는 다윗도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살해하는 등 자신을 철저히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일을 범하여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낮아지고 낮아져서 상한 심령으로 제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상한 심령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욕하고 트집을 잡는 것은 그들의 속마음을 다 알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주님의 눈은 그들을 꿰뚫어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시는 주님 앞에서 나는 나의 속마음을 철저히 폭로당하고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릴 뿐입니다.
하여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오니 나에게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이 하루도 예수의 사람으로 살기 원합니다.
세상의 정욕이 나를 넘어지게 할지라도 우리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히 일어나 아버지 품으로 나아갑니다.
나를 받아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