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종 안토니오 신부
연중 제15주일
아모스 7,12-15 에페소 1,3-14 마르코 6,7-13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에페 1.3)
저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이때를 놓치면 공부하고 싶어도 못 한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실컷 놀고
지금은 열심히 공부할 때다.”
요즈음 여러 가지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을 향해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합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 좋아진단다.”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다 거짓말처럼 여겨집니다.
사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도 지금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부는 고등학교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하는 것이었고, 어른이 될수록 책임감이 커져
더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세상 안에 거짓이 많아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까요?
함께 동반하고 있는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청소년들은 시간이 지나면 잘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보다는 분명히 잘 되는 근거 있는 희망을
만들어가고 품어 가는 과정이 참된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희망은 바로 주님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
그 나라에 대한 희망이 지금에 더 충실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이라는 거짓된 희망이 아닌,
주님이라는 진짜 희망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명령을 하십니다.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을 껴입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많은 것을 챙겨주어서 기쁜 소식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시니 이해하기 참으로 어렵기까지
합니다. 더군다나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제자가 아닙니까?
특히 악이 가득한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는 것이 불안하지 않으셨을까요?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것에 희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의 것에 희망을 두고 세상의 것을 채우다 보면 주님의 자리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빈 마음을 당부하신 것입니다.
빈 마음이 있어야 그 자리에 주님께서 사랑으로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디에 희망을 두고 있을까요?
주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만이 희망 없는 세상 안에서 참된 희망을 품고 힘차게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광주대교구 장욱종 안토니오 신부
2024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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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태 루이스 신부
연중 제15주일
아모스 7,12-15 에페소 1,3-14 마르코 6,7-13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똑같이 요구하신다면?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복음 구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마르 6,8~9)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집을 떠나서 어딘가에 머물게 될 때를 생각해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어쩌면, 제자들에게는 무리한 요구일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요구 조건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이의(異議)도 제기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였을 텐데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길을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얼마나 나약한지 예수님을 통해서 확인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풍랑 속에서 제자들이 겁에 질려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가라앉게 하시고 나서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마르 4,40)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의 파견 명령을 통해서 자신들의 몸에, 생계에 필요한 그 어떤 것도
지니지 않은 채로 현실의 장벽 앞에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해 보일 때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자들은 현실의 장벽 앞에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분명 내적인 힘인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고 봅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담대함(용기)을 가지고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한 결과를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마르 6,12~13)
춘천교구 방기태 루이스 신부
2024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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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철 라파엘 신부
연중 제15주일
아모스 7,12-15 에페소 1,3-14 마르코 6,7-13
순명과 순종
성직자 신분의 시작인 부제 수품 전, 대품 피정 마지막에 성직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을지
주교님과 면담을 하고, 서약서에 서명을 합니다. 당시 교구장님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저의 수품 면담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추기경님께서 하신 질문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자네는 이제 성직자로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될 터인데, 마음의 결심을 하였고
잘 지킬 수 있겠는가?” 이어서 순명과 독신 서약서에 서명을 하면서, 저는 저의 부족함을
주님께서 채워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채워진’ 성직자가 아니라,
‘부족한’ 종입니다. 그러면서도 여태까지 사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주님 사랑과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파견에 앞서, 여러 가지 규칙을 말씀하십니다.
맹수와 강도를 물리칠 지팡이와 돌이 많은 땅을 걸어갈 때 필요한 신발 말고는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옷을 두 벌 껴입는 것도 거추장스럽고 사치한 모습이니
그러지 말라고 하십니다.
거기에 더 보태서 마음에 드는 좋은 집을 찾아 다니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뜻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가벼운 몸가짐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라는 가르침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하느님의 보살핌과 안배에
의탁하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떠났습니다. 오직 근본에 충실했고,
부수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며,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위로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도 듣지 않으면,
앙갚음이나 해코지하지 말고 다만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리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하였고 또한 ‘순종’했다고 생각합니다.
순명이 마땅히 옳게 따르는 것이라면, 순종은 부족한 것을 모두 채워주시고 도와주시겠다는
염려와 보살핌을 받아들이고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순명을 통해 선포자로 파견된다면, 순종을 통해 목자 곁에서 사랑받는 양으로 이끌려 갑니다.
순명이 십자가를 지는 길이라면, 순종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의 가슴 뜨거운
주님 현존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파견 당부 말씀은 결코 내던짐이 아닌, 지극한 사랑에로의 초대입니다.
하느님만으로 족합니다. 하느님만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 되는 길이고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그래서 저는 순명을 서약했지만, 주님께 순종합니다.
서울대교구 이계철 라파엘 신부
2024년 7월 14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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