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의 넓이 / 김춘리
물고기와 바다 중
어느 쪽이 허락한 쪽일까
때론 허락이란 물고기 한 마리의 크기이거나
바다만큼의 여유이거나
퍼낼 수 없는 애착이라는 것
유월의 장미는 누가 허락한 넓이일까
장미가 허락한 유월의 넓이는
애도와 애도만큼의 사이
보석은 얼마나 많은 손가락을 허락했을까
손가락은 언약과 기념일 사이에 있고
뜨거워졌다가 냉정해지는
중지와 약지 사이
허락이란 때론 물고기 한 마리 크기이거나
장미가 허락한 유월의 넓이이거나
밀가루 반죽이 노릇하게 구워지는 오븐의 시간이거나
반짝거리는 언약의 각도일 것이다.
몸에는 허락한 적 없는
종양 하나가 있고
유통기한이 지난 씨앗은 두근거리는 쪽으로 파고들었다
우리는 악어와 악어새
과거의 연대가 뒤섞어진 캡슐과 세포 사이
둘레와 넓이 사이
우리의 안녕은 깊이를 알아
자꾸 덜컹거리는 잠을 고요하게 잔다
ㅡ 계간 《시와문화》 2023년 겨울호
* 김춘리(金春里) 시인
강원도 춘천출생,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모자 속의 말』 『평면과 큐브』
공동시집 『언어의 시, 시와 언어』
2012년 천강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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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허락의 넓이 / 김춘리
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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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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