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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오기륭
어제에 이은 가계도 시리즈 2탄입니당. 헤헿.
댓글 짜고 반응 읎으면 걍 2탄 안 들고오고 잠수탈라 했는데 유독 정조의 가계도를 궁금해 하는 여시들이 많아서 들고 와부렀네.
어떤왕들을 다루는지는 1탄에서 소개했으니까 자세한 내용은 자르도록 하겠슴다. 편집 싹둑싹둑!
아... 어.... 음.... 그리고 가계도 부분에 대해서 박영규씨가 쓴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여기 나온건 정말 일부분에 한정되
어있는거라고 보면 됩니다. 거기는 없었는데 너님글에는 왜 있슴? 이라고 하면 그 책이 잘못 된거라고 말씀드릴수 밖에 읎어요.
내가 가져오는 부분은 실제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쓰여지는 조선왕실의 족보인 '선원록' 의 국문 해설판에서 가져오는 거다보니
솔직히 그 책보다는 내가 가진 자료가 왕실의 가계도 에서만큼은 더 많다고 자부하고 싶네염. 엣헷.
2탄에는 조선후기 부분임돠. 효종, 숙종, 정조, 헌종, 고종을 다뤄보도록 하겠슴돠.
조선17대. 효종의 가계도
효종 이호 / 왕후 : 인선왕후 장씨 / 후궁 : 3명 / 자녀 : 3남 7녀 / 양녀 : 1녀
- 효종의 후궁 : 안빈이씨, 소의김씨, 숙원정씨
- 효종의 자녀 : 숙신공주, 숙안공주, 숙명공주, 현종, 숙휘공주, 숙정공주, 대군(요절), 숙경공주, 대군(요절), 숙녕옹주
- 효종의 양녀 : 의순공주
로맨스소설 화홍의 후속편을 본 여시들이라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이름이 떠오를겁니다. 숙정공주와 숙경공주. 헤헿. 화홍의
남주 사이와 여주 사이에서 낳은 두명의 공주인데 그 공주들 이름이 요기잉네? .......... 잡소리 미안. 솔직히 효종의 자녀들에 대한
일화라던가 그런건 딱히 읎어요. 뭐 기록이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이 둘째딸인 숙안공주인데 숙안공주는 홍씨집안으로 시집을 가
서 1명의 아들인 홍치상을 낳았는데 이 홍치상이 폐비민씨를 두둔하다 숙종에게 제대로 찍히는 바람에 결국 교형(=교수형)에 처해
지는 바람에 그걸로 인해 숙안공주는 장희빈을 죽이려고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해. 그리고 다음 왕위를 잇는 현종은 조선
의 왕 가운데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야. 현종은 효종이 봉림대군 이던 시절 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난 유일한 외국출신의
왕인거지. 뭐 그렇다고 요즘처럼 미국 시민권 주고 그런거 읎슴돠. 소현세자와 효종은 엄연히 볼모로 끌려간거기 땜시. 그리고 장
녀인 숙신공주는 3세때 심양으로 볼모로 끌려가다가 병사해서 북쪽에 묻혀있다고 해. 애기가 안타깝다 쯧쯧.
그리고 유일하게 효종은 조선의 왕 가운데 양녀를 두었어. 그 양녀가 바로 종친중의 한명인 금림군 이개윤의 딸인 의순공주야. 의
순공주는 효종이 즉위 후에 청과의 관계를 좀 더 유지시키기 위해 당시 청나라의 섭정이었던 예친왕 도르곤(병자호란을 일으킨
청태종의 14번째 동생)의 측복진(측실, 첩 아님)으로 들여보냈지. 하지만 시집간지 얼마 되지않아 도르곤은 병사하게 되고 의순공
주는 청 황실의 다른 황족, 청태종의 조카였던 정친왕 박락의 측복진으로 다시 재가를 하게 돼.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
인지 모르겠지만 도르곤이 죽은지 2년만에 정친왕 또한 죽고말아. 청나라에서는 의순공주에게 자유를 주었고 의순공주는 조선으
로 가기를 원해서 아버지인 금림군이 의순공주를 거두었다고 해. 하지만 돌아온 의순공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화냥년(실제로는
환향녀,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하더라. 늘 우울해하고 수척하게 지내다 결국 조선으로 돌
아온지 10년만에 죽고말아. 아, 의순공주의 이름이 남아있는데 의순공주의 이름은 이애숙 이었다고 해.
조선 19대. 숙종의 가계도
숙종 이돈(이순에서 이돈으로 개명) / 왕후 : 인경왕후 김씨,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 / 후궁 : 6명 / 자녀 : 6남 3녀
- 숙종의 후궁 : 희빈장씨, 숙빈최씨, 명빈박씨, 영빈김씨, 귀인김씨, 소의유씨
- 숙종의 자녀 : 공주3명 (모두 인경왕후 소생, 요절), 경종, 성수(요절), 영수(요절), 영조, 왕자(요절), 연령군
숙종의 자녀들은 거의 모두 요절한 편이야.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자식이 경종, 영조, 연령군 뿐이니 숙종도 참 자식복 더럽
게 없지. (그마저도 연령군 또한 20살에 요절) 자식복만 없나, 마누라복도 없지. 첫 왕비인 인경왕후는 19살에 천연두로 죽고, 인
현왕후 또한 폐출과 복위를 번갈아가며 한 쌩쇼 덕에 맘고생 몸고생 더해지며 35살에 죽고, 온갖 애정행각을 하던 희빈장씨 또한
본인이 사약내려 죽여, 저쪽 끄트머리에 있는 영빈김씨도 인현왕후 편들다 같이 복위와 폐위를 번복하질않나. 하여간 숙종은 본인
이 만든 무덤에 마누라들 넣고 묻네마네 했던 똥차 of 똥차라고 보면 되겠슴. 저 가운데서 성수는 희빈장씨 아들, 영수와 요절한 다
른 왕자는 숙빈최씨 소생이야. 그리고 따로 명빈, 김귀인, 유소의에 대한 언급은 자세히 나와있지 않음. 연령군은 장가를 갔지만
자식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종친인 밀풍군의 차남인 공을 양자로 들여서 대를 이었어.
그리고 우리는 보통 희빈장씨라고 부르는데 원래 후궁의 소생이지만 왕위를 이은 경우에는 '대빈' 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기도 했
어. 그래서 희빈의 실제묘는 대빈묘로 불리고 있고 희빈의 실제 내려진 시호 또한 옥산부대빈 장씨야. 희빈은 장옥정이 후궁시절
에 받았던 빈의 첩지이고 옥산부대빈이 맞는거지. 그리고 동이에 나왔던(내용, 의복등 고증은 개시망똥망 시발 꺼져) 숙빈최씨의
실제 시호 또한 화경숙빈 최씨가 맞아. 원래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후국으로 있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가장 높았던 후궁인 정1
품 빈의 첩지에서도 흔히들 아는 '숙(빈), 경(빈), 희(빈), 수(빈), 혜(빈)' 등 한 글자밖에 없을 수 없었는데 중국은 두글자 이상씩
높은 품계의 후궁에게도 주고 그랬어 예를 들자면 강희제의 후궁이었던 경민황귀비 같은 부분이 있지. 그런데 영조는 항상 자신의
출신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고 무수리 출신이었던 자신의 어머니에게 '화경숙'빈 이라는 세글자의 시호를 내린거야. 그리
고 자신의 어머니의 무덤이었던 소령묘를 세자나 세자빈의 무덤이던 '원' 의 자리까지 올려서 소령원으로 격상 시키기도 했어. (그
런데도 항상 자신의 어머니의 무덤을 '릉'으로 격상 못 시킨게 천추의 한이었다고 하지.)
조선 22대. 정조의 가계도
정조 이성(이산에서 이성으로 개명) / 왕후 : 효의왕후 김씨 / 후궁 : 4명 / 자녀 : 2남 4녀
- 정조의 후궁 : 의빈성씨, 수빈박씨, 원빈홍씨, 화빈윤씨
- 정조의 자녀 : 옹주(요절), 문효세자, 옹주(요절), 옹주(사산), 순조, 숙선옹주
정조 또한 자식복 더럽게 없던 왕중의 한명이지. 성인이 될때까지 살아남은 자식이 순조와 숙선옹주 뿐이었어. 첫번째 옹주는 후
궁인 화빈윤씨의 소생인데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이산에서 그렇게 찾아 헤메던 송연이 의빈성씨의 아들인 문효세자 또한 5살에 홍
역으로 죽었지. 문효세자가 죽은 후 낳은 옹주 또한 몸이 약해 태어나자마자 요절. 의빈이 회임하고 있던 아이 또한 의빈이 죽으면
서 함께 죽음(사산), 그 이후로 맞아들인 수빈박씨의 몸에서 순조를 보고 막내딸인 숙선옹주를 보았어. 왜 우리 지금 지하철 6호선
역중에 '효창공원' 이라는 역이 있지? 이 효창공원은 사실 의빈과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의 옛 자리야. 효창원을 이장하면서 그
곳에 나중에 공원이 생겼고 효창원을 따서 효창공원이라고 지은거지. 그리고 왜 이산에서는 의빈이 도화서의 화공으로 나오지? 그
거 순 다 개소리다? 의빈은 원래 간택후궁인 화빈윤씨의 처소 나인이었어. 그런데 어느 비오던날 화빈의 처소에 들른 정조는 처마
밑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세고있던 나인에게 성은을 입혔고 그 나인이 바로 의빈이었던거지. 정조의 후궁가운데 유일하게 성은
을 입고 후궁에 된 케이스야. 수빈과 원빈, 화빈은 모두 간택되어 들어온 후궁이었고 들어오면서 부터 '빈' 의 첩지를 받았어. 하지
만 의빈은 궁녀에서 성은을 입은 특별상궁, 다시 아이를 가지면서 소용에 책봉 되었고 아들인 향이 세자에 책봉되면서 의빈의 첩
지를 받은 케이스지. 자신이 선택한 여인의 아들을 세자로 올리고 다시 빈의 자리에 까지 앉힌 정조 또한 꽤 로맨틱한 인물 이라고
보여지는 대목이기도 해. 그만큼 정조 또한 의빈을 많이 아꼈다는 부분도 있다고 하더라고.
제24대. 헌종의 가계도
헌종 이환 / 왕후 :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 / 후궁 : 3명 / 자녀 : 1녀
- 헌종의 후궁 : 경빈김씨, 정빈윤씨, 숙의김씨
- 헌종의 자녀 : 옹주(요절)
헌종의 딸내미가 요절하지 않고 자랐더라면 엄청 이뻤을거야. 헌종이 지금 시대에 견주어도 꿀리지 않을 꽃미남이라는 기록이 있
으니까. (조선왕조 연산군과 함께 투톱이라고 함) 다른 후궁들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지만 헌종과 후궁인 경빈김씨의 구구절절한
애정사에 대한 기록이 유일하게 남아있기도 해. 헌종의 1비였던 효현왕후가 승하한 뒤 왕후간택이 열렸어. 거기서 헌종은 처음 경
빈김씨를 만났지만 간택이라는게 어디 왕 마음대로 되나, 경빈을 계비로 원했지만 효정왕후가 간택이 되었고 그에 불만이었던 건
지 아니면 효정왕후와 안 맞아서 그랬던건지 헌종은 효정왕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 대를 이으려고 계비를 뽑았는데 왕하
고 항상 불화이니 윗전들의 근심이 가득했지. 그래서 결국 후궁 간택이 열렸고 거기에서 또다시 헌종은 경빈을 만나. 간택에서 경
빈을 지목한 헌종은 그렇게 경빈을 사랑했다고 해. 지금도 창덕궁에 가면 있는 궁속의 집인 낙선재는 헌종이 경빈을 위해 지어준
집이야. 답답하고 법도에 항상 얽매여야 하는 궁이 아닌 일반 부부처럼 살아보고자 했던 헌종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집이기도
하지. (낙선재는 정말 예뻐. 나중에 낙선재에 대해서만 특별판 쓰도록 할게.) 그렇게 아꼈지만 경빈 또한 헌종의 자식을 낳아주지
는 못했어. 그리고는 헌종이 24살의 나이로 죽어버렸고 경빈은 평생을 헌종이 자신만을 위해 지어준 집인 낙선재에서 거처했다고
하더라고. 경빈은 실제로 고종대를 거쳐가며 1907년에 사망했어.
조선 26대. 고종의 가계도
고종 이형(이명복에서 이재황으로 개명 후, 이재황에서 이형으로 개명)
왕후 : 명성태황후 민씨 / 후궁 : 13명 / 자녀 : 8남 2녀
- 고종의 후궁 : 순헌황귀비 엄씨, 영보당 귀인이씨, 귀인장씨, 광화당 귀인이씨, 보현당 귀인정씨, 복녕당 귀인양씨, 내안당 귀인
이씨, 삼축당 상궁김씨, 정화당 상궁김씨, 상궁염씨, 상궁서씨, 상궁김씨
- 고종의 자녀 : 완친왕, 원자(쇄항증으로 요절, 항문막힘), 공주(요절), 순종, 대군(요절), 의친왕, 대군(요절), 영친왕, 덕혜옹주,
황자 육(요절), 황자 우(요절)
드라마 명성황후에 나온 후궁들은 정말 일부에 불과해. 고종은 정말 생각보다 후궁이 더럽게도 많았던 임금이야. 후궁은 더럽게
많았지만 생각보다 자식복은 별로 없었지. 8남 2녀 가운데 살아남아 성인까지 성장한 자식은 완친왕과 순종, 의친왕, 영친왕, 덕혜
옹주 뿐이니까. 놀라운 얘기 해줄까. 고종은 1907년에 일본에 의해 강제퇴위 당하고(헤이그 밀서사건으로 인해) 1919년에 승하했
어. 그런데 저 가운데 덕혜옹주가 1912년생, 육황자가 1914년생, 우황자가 1915년생이라는 놀라운 사실. (고종은 1851년생, 덕혜옹
주가 고종 61세때 출생, 육황자 고종 63세에 출생, 우황자 고종 64세에 출생. 고종 68세로 승하) 역시 남자는 수저 쥘 힘만 있어도
임신을 가능하게 한다는 말이 맞긴 한듯. 그리고 자식복이 없던 사람중의 하나가 바로 명성황후야. 명성황후는 4남 1녀를 출생했
지만 모두 백일을 못 넘기고 요절.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식이 순종.
정리하다보니 나도 의외로 놀란 사실들이 많다는거. 고종 후궁수가 많은 건 알았지만 저만큼일줄은 몰랐네염. 하.... 게다가 나이
계산하고 식겁. 자식을 환갑넘어 보는것도 모자라 무려 3명이나 환갑을 넘겨 태어나다니. 하...... ^_T 놀랍다 정말.
아... 그리고 내 정체가 뭐냐고 하는 여시들이 많아서.... 나 사학과 전공 아님. 그냥 중국황실이나 우리나라왕실 이야기나 가계도
를 좋아해서 그거 심심할때마다 읽고 외우고 다니는 여자에염. 실제 내 전공은 호텔조리 전공이라는게 함정.
문제시 오열, 문제 없을 시 오늘 생리통 읎슴.
첫댓글 후궁없다고생각해본적한번도음슴..
참.. 뭔가 꽁기하다후궁ㅜㅠ
왕 한명한명 자세히 알고싶다 ㅋㅋ책읽어야겠어 ㅋㅋㅋ
그책 나 가지고있음 내다버릴꺼야 내책값아까비 ㅠㅜㅜㅜㅜㅜㅜㅜㅜㅠ
아재미따ㅋㅋ 헌종얘기도 드라마나옴 재밌게따
삭제된 댓글 입니다.
원래 승은이라는 말이 없고 그 성은이 이 성은도 마찬가지... 왕을 성상이라고 표현했고 성상이 내리는 은혜라고 해서 둘 다 같은 의미야. 어쩌다보니 성은이 승은으로 변질 된 아주 최악의 사례라고 볼 수 있지....
대부분 자식들이 요절하네...
우와 글에서 정성이느껴진다
글 잘읽었어! 완전 재밌다!
흠... 내 의빈을 많이 아꼈지....
고종이 레알 정력왕이었구만.. ㅎㄷㄷㄷ 낙선재 글도 기대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궁왜이리많어 고종 왕 ..... 명성태황후 바라기였다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