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지홍·금융팀장
부당공제 공포 확산
부양가족 소득공제기준몰라서 당한 경우 많아
"함정 징수" 비판도
보험회사 직원 A씨는 2007년분 연말정산 때 전업주부인 부인에 대해 100만원의 배우자공제를 받았다. 이로 인해 환급받은 세금은 약 28만원. 하지만 A씨는 이달 초 국세청에서 "배우자에게 소득이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신고해 부당공제를 받았으니 적게 낸 세금과 가산세 20%를 납부하라"는 안내문을 받았다. 알고 보니 A씨의 부인은 남편 모르게 자녀 교육비를 마련하려고 부업으로 건강보조식품을 판매해 연간 100만원이 넘는 소득(필요경비 제외)이 있었다. 이 사실이 국세청에 적발된 것이다.
회사 경리부에 문의한 결과, A씨가 추가로 낼 세금은 환급받은 세금의 5배가 넘는 137만원이나 됐다. 배우자 공제뿐 아니라 전업주부인 부인 명의로 사용했던 신용카드 공제액 300만원까지 부당공제로 간주됐고, 여기에 가산세 20%까지 물게 된 것이다. A씨는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닌데 국세청이 가혹하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대대적으로 부당공제 적발에 나서면서 직장인들 사이에 '부당공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고의로 부당공제를 받았던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세법이 워낙 복잡해 어떤 경우가 부당공제에 해당하는지도 모른 채 앉아서 세금을 많이 토해내는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세청은 2007년 소득에 이어 올해 초 이미 연말정산을 끝낸 2008년 소득에 대해서도 부당공제를 적발해 통보할 방침이다. B은행의 연말정산 담당 직원은 "나도 부당공제에 해당하느냐는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당공제 적발시스템의 위력=국세청이 A씨 같은 직장인의 부당공제 사실을 족집게처럼 적발한 것은 이번에 구축된 전산시스템의 위력 덕분이다. 국세청은 근로소득자의 부양가족 소득자료를 전산화해 부당공제를 적발하는 전산시스템을 개발, 2007년 연말정산분부터 이 시스템을 적용해 10여만명의 근로소득자들의 부당공제를 찾아냈다. 국세청의 전산시스템에는 부양가족의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정보뿐 아니라 각 부양가족이 벌어들인 근로·사업·임대·배당·이자·기타소득 등 국세청이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소득자료가 입력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EITC(근로장려세제) 시행으로 영세 자영업자나 일용직 근로자들의 소득파악이 용이해진 데다,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로 각종 소득자료가 전산화되면서 부당공제 적발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선의의 피해자도 많아=이번에 적발된 근로자들은 일정 소득이 있는 가족(배우자나 노부모 등)을 소득이 없는 것처럼 신고해 공제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국세청은 밝혔다. 하지만 A씨의 경우처럼 근로자 본인도 몰랐던 부양가족 소득이 국세청에 파악돼 세금을 내게 된 '선의의 피해자'도 적지 않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노부모가 손주들 용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부당공제로 적발됐다.
부당공제가 적발돼 추가로 납부할 세금은 원천징수의무자인 회사가 다음 달 월급에서 차감한다. 특히 적게 낸 세금을 계산할 때는 100만원의 인적공제에 해당하는 세금뿐 아니라 부양가족 명의로 쓴 신용카드 공제나 의료비 공제 등 특별공제도 모두 취소되기 때문에 세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예컨대 배우자 공제 100만원이 취소되는 경우 100만원에 대한 세금(세율 8.8~38.5%)뿐 아니라 배우자가 쓴 신용카드나 의료비로 공제받은 세금과 더불어 20%의 가산세까지 물어야 한다. 이 때문에 배우자에 대한 부당공제만으로도 물어야 할 세금이 200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이번 국세청의 부당공제 적발은 그동안 고의였든 부주의였든 연말정산 때 근로자들이 과다하게 소득공제를 받아온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시환 오성회계법인 대표는 "매년 성실하게 세금을 내온 대부분의 근로자들과의 형평을 맞추려면 이유야 어쨌든 부당공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선의의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세청이 보다 납세자를 배려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고 연말정산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은 14일 '부당공제 세금추징 예고한 국세청이 더 부당하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현행 연말정산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부양가족의 소득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시기는 종합소득세 확정신고기간인 5월인데 연말정산은 이보다 앞선 1월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근로자가 부양가족의 소득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국세청이 부양공제를 적발하는 전산시스템을 개발하고도 사전에 이를 납세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결과적으로 10만명이 넘는 근로자들을 범법자로 모는 함정수사식 추징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부양가족의 소득금액을 연말정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국세청 사이트가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양가족 공제
자영업자에 비해 소득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근로소득자의 세금 부담을 경감해주기 위해 부양가족 1인당 100만원(2009년분부터는 1인당 150만원)을 소득공제해주는 제도. 부양가족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부양가족의 연간 소득금액이 100만원 이하여야 한다. 부양가족이란 전업주부나 자녀 등 근로소득자와 같은 집에 살거나, 따로 살더라도 실질적으로 생활비를 지원받는 노부모 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