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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입초기 파주 시골농가 전경
@ 류기석 1996 경기파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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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농촌으로
1992년부터 지저분하고 느릿느릿한 농촌을 떠나 깨끗하고 빠른 도시생활을 실험적으로 살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공간 서북쪽에 위치해있는 은평구 증산동 산동네 밑에 단독주택 1층을 전세로 얻어, 15평의 신혼살림을 시작한 것이 계기다. 정신없이 직장을 오고가면서 진정으로 바랬던 배움과 실용적인 연구보다는 이력 꾸미기에 바빠 허겁지겁 학업을 마쳤다.
아이도 낳아 도시에서 건강하게 살아남기를 바라며 키우기를 2년, 하지만 몸은 되도록이면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의 자연을 만나기 위해 틈만 나면 주변의 산과 외진 농촌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직장동료로부터 정보를 얻어 국민주택을 청약한지 3년 만에 3순위로 경기도 고양시 행신지구 아파트 24평을 분양받았다. 하지만 아파트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느라 우리부부는 절약 또 절약으로 생활비를 아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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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여평을 손수꾸민
식물원정원 @ 류기석 1997 경기파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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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4월 새로운 아파트로 입주하면서 생애 첫 집을 마련하는 기쁨도 잠시, 매일 매일의 편리하고 윤택해 보였던 침대생활은 육체적 피로감을 더해 주었고, 틀에 박힌 업무의 기계적인 반복은 정신을 무료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미래지향적이라고 꿈꾸었던 도시화의 거센 풍랑은 효율성과 편리성의 획일화된 생활의 문화를 만들어 건강한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 오로지 당장의 돈과 권력을 위한 정치와 교육으로 대자연은 콘크리트개발 위주의 투기장으로 변했다.
그 당시 고양시주변의 일산, 화정, 행신, 원당의 논과 밭 그리고 작은 야산들은 무조건적인 정부의 개발과 발전(?)의 구호 앞에 속수무책으로 갈아엎어졌다. 지금도 사정은 낳아지지 않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대도시 특히 아파트에 갇혀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말만 되면 자연이 주는 편안한 쉼을 얻기 위해 교외의 산과 들로 한꺼번에 빠져나갔단 돌아오곤 했다. 그러는 통에 주말이면 고양, 파주, 연천, 포천, 양주, 남양주, 양평, 가평 등지의 경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자동차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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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가 있는 들꽃정원 모습
@ 류기석 1997 경기파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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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마음껏 뛰어 놀아야하는 아이들에게 제한된 놀이 공간과 온통 인공적인 요소들이 주는 오염된 햇빛과 공기로 더 이상 안전한 휴식을 제공받지 못함은 물론, 먹고 쓰고 버림의 순환관계가 올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도시의 편리한 생활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생명체들과 소통하는 문화가 단절되기에 대자연과 더불어 전원에서 살고자하는 생각이 밀물처럼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결정적계기는 아파트에서 낳은 둘째 아이가 기관지 천식으로 소아과 병원을 매일매일 들락날락거리면 서다. 이렇게 되니 아파트의 편리함과 효율성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쾌적하고 안정적인 생활보다는 더럽고 불안전해 보이는 농촌에서의 전원생활과 시시각각으로 이루어지는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기를 바랐던 것 같다.
주말이면 수시로 인근의 농촌을 찾아 땅을 사서 전용한 이후 많은 돈을 들여 집을 짓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려고 통짜의 농가주택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러던 중 파주지역의 중개업자로부터 목가적인 농촌풍경이 또랑또랑하게 남아있는 파주시 탄현면 축현리 배나무골을 소개받았다. 낮에는 임진강 넘어 휴전선이 보이고, 저녁이면 대남방송이 쩌렁쩌렁 울려대는 산골의 아름다운 골짜기였다. 허름한 농가 앞뒤로 작은 정원이 딸린 이곳을 구입하기 위해서 아내를 설득하는 작업을 했다. 구체적으로 함께 시골을 자주 오가며 이야기도 나누고, 쇼핑과 외식의 기회도 많이 갖자는 등의 공약도 발표한 후 여러 날 고민하다가 중개업자의 종자돈 10만원으로 단번에 계약을 치르고는 아파트가 팔리면 중도금과 잔금을 주기로 했다. 그로부터 2주일 후 아파트가 정리되면서 중도금을 치루고, 부족한 잔금과 이사비용은 융자로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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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밀꽃 정원앞 아름다운 논
@ 류기석 1997 경기파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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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의 첫발을 내딛고,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실험적인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골농가의 구입에서부터 정착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가족들의 순수한 동행이 큰 힘이 되었다.
배나무골 풍경은 파주에서 탄현을 거쳐 문산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2차선 국도를 따라 펼쳐진 농경지들이 야트막한 야산에 둘러쳐진 아름다운 곳이다. 신작로길에서 축현2리 표지석을 따라 우회하면 좁은 농로가 마을길과 이어진다. 길 양쪽으로는 커다란 논들로 가득하여 봄과 가을들판이 주는 자연스러운 느낌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시멘트다리를 건너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배나무골이 동남쪽을 향하여 웅크리고 있다. 우리 집은 동북쪽 끝에서 두 번째로 뒤쪽에는 주변의 숲과 인접해 있고, 옆으로는 작은 고추밭들과 커다란 인삼밭이 함께 줄지어 자리했다. 집 앞으로는 실개천이 여러 논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아이들을 품어주기에는 충분했던 곳이다.
이 지역의 전형적인 농가는 175평의 대지위에 본채가 15평, 별도의 사랑채가 5평, 창고 5평과 대문 양쪽으로는 과거 소 마구간으로 쓰였던 곳을 방으로 들였다. 대문 앞쪽으로는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었고, 뒤뜰에는 작은 우물과 장독대, 커다란 밤나무들과 오갈피나무, 머루나무 등이 잔디밭과 함께 올망졸망하게 꾸며져 있었다. 본채농가는 단열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콘크리트 시멘트 구조였으나, 이전 주인의 손길에 입식부엌과 실내 화장실 등이 갖추어져 커다란 공사 없이, 장판과 도배만을 새로이 단장했다.
이사 후 첫날밤 적막한 어두움을 뚫고, 맑고 밝은 별빛과 달빛의 한없는 축복을 받는 듯 내 땅이 된 대지를 밟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낮에는 도시에 있는 직장에서의 일과 밤에는 농촌에 있는 텃밭에서의 일이 동시에 진행됐다. 새벽부터 출근 전 아침까지와 퇴근 후 저녁 12시까지 나만의 정원을 만들기 위하여 우선 집 앞에 있는 콘크리트와 보도블럭을 걷어냈다.
테마별 정원을 만들기 위하여 주변의 토목공사 현장에서 흙 일곱 차를 받아 복토를 하고, 뒷산에서 버려진 낙엽송을 주어와 목재 울타리를 둘렀다. 한쪽 귀퉁이에 있는 시골 농가에 딸린 재래식 화장실은 인근의 개울가에서 이사해온 붕어며 송사리, 미구라지 등의 물고기들이 노니는 연못으로 만들었고, 아이들의 관찰력과 감성교육을 위하여 강아지, 토종닭, 오골계, 토끼 등의 동물농장도 조성했다. 1년여에 걸친 끝에 주변의 흙과 나무, 돌과 여기저기 버려지거나 못쓰는 폐품과 재활용품을 활용하여 아기작이하고 편안한 쉼터를 조성하면서도 틈틈이 텃밭에 각종 채소를 키워 먹어보는 호사를 누렸다.
이의 실험은 60여 평의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일단 기존의 전원주택들이 일률적으로 심는 잔디대신에 갖가지 테마를 가지고 정원을 디자인했다. 약초 정원, 허브 정원, 메밀꽃 정원, 야생화 정원, 꽈리 정원, 돈나물 정원, 취나물 정원, 각종 야채나 과실수 정원등을 조성하고 식용채소 정원에는 무, 배추, 고추, 상추, 치커리, 홍당무, 파, 콩 등을 철따라 재배하는 앙증맞은 자연 친화적인 생태정원이 조성되었다.
이 정원에서는 도시의 획일적인 정원과 많은 돈을 들여 억지로 꾸며 놓은 말로만 생태! 생태! 운운하는 자태는 느낄 수 없다. 우리 집 정원은 주위에서 천덕꾸러기로 취급되던 물건들과 얻어 온 재활용 자재들, 값싼 재료들이 정원의 주인으로 모셔졌다. 이런 것이 생태계의 원활한 자원순환을 지속시키는 생활속에 생태환경운동이 아닌가 싶다.
농촌생활은 끊임없이 움직여야하는 불편함이 수반된다. 화장실과 보일러, 우물과 펌프, 전기와 각종 나무연장 등을 손수 만져야 하는 일들로부터 장을 보기위한 시간은 퇴근하면서나 아내와 일주일에 한번씩 가야했다. 초기 저녁만 되면 자의적인 불안감으로 대문과 문들을 꼭꼭 잠갔던 이상한 버릇(?),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뿐인 낮선 시골에서 우울해 했던 아내가 주변의 들꽃들과 나무들을 새로이 만나 친구가 되었던 지난한 시간들은 잔잔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1997년도‘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잡지사에서 ‘운치 있게 꾸민
정원’이라는 타이틀로 취재해간 내용이 있어 <편집자 주> 부분을 소개한다.
“폐품폐자재로 아름답게 꾸민 곳, 파주 배나무골 식물나라 ‘새라네’
연세대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류기석 씨는 1년전 시골 농가를 구입해서 60여 평의 마당을 아름다운 정원과
텃밭으로 손수 개조하였다. 그는 주로 버려진 폐자재를 활용하여 정원을 꾸몄기 때문에 거의 돈이 들지 않았다. ‘새라네’라고 딸아이 이름을 딴
그의 정원에는 허브, 약초, 화초, 야생화 등 각종 꽃들과 다양한 야채나 과실수들이 즐기할 뿐만 아니라 작은 연못과 동물농장까지 있다. 작은
식물나라 같은 그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행복이 가득한 집, 1997, 운치있게 꾸민 정원, 편집자 주 >“
삶의 질을 높인 나라에서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아름다운 집과
정원이 그 집의 가치는
물론 가장의 척도로 인식되고 있다. 매일 도시의 한복판에 갇혀 죽어가고 있는 생명에 기뻐하는 것이 아닌, '자연으로 돌아가' 매일 매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떨림에 기뻐하고 감격할 수 있는 2006년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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