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름, 여지 :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다.
어제(22일) 아침 모임시간에 복지요결(p.295)의 '다름, 여지'를 공부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깊이 깨달은 것과 맞물립니다.
농활팀이 떠올리고 꿈꾸어왔던 생신잔치는 이러했습니다.
: 어르신 댁에서 어르신 이웃, 의미있는 지인들과 소박하고 정답게 저녁식사하는 생신잔치
그러나 어제 어르신이 하고파 하신 생신잔치는 조금 달랐습니다.
갑작스레 바뀌게 된 이유가 무엇이든 생신잔치 장소가 달라졌습니다.
어르신의 댁이 좁고 더운지라
그냥 식당에서 하고 싶다 하신 것입니다.
어제(22일) 평소처럼 센터에 들리신 어르신이
생신잔치를 식당에서 하고싶다 말씀하시자
그 말씀을 들은 박시현 선생님, 동훈이형, 샛별이, 우정이...
모두 당황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꿈꾸던 자연주의 사회사업의 지향,
복지생태가 녹아있을 것이라 그리고 또 그렸던 생신잔치가 마치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오늘(23일) 어르신 생신잔치는 어르신이 원하셨던대로 식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농활팀의 수고와 노력들은 허사였던 것일까요?
아쉬운 것, 못 해서 안타까웠던 것들을 곱씹으며 마무리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합니다.
꿈꾸었던 생신잔치는 이러했으나
어르신의 여건과 상황에 따라 이번 생신잔치는 그러했을 뿐입니다.
모든 상황, 여건, 사안에 자연주의 사회사업을 적용할 수 없다는
귀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실무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술술 풀리고 그야말로 복지생태가 한 번에 이루어졌다면,
현장에서 일할 때 이렇게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농활할 때는 됐는데, 왜 안 되지?'
'거창이니까 됐나?'
또한 그렇게 일이 쉽게 풀렸다면
굳이농활팀이 들어올 이유도 없었을테고
농활팀도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을테지요.
그래서 나중에 자신이 맡은 실무에서 그렇게 풀리지 않는다면, 쉽사리 지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일이 앞으로 불평, 불만하거나 소진되지 않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생신잔치의 외형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농활팀의 핵심 목표인
어르신의 인격을 세우고 지역사회의 공생성을 도모했느냐를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박시현 선생님 수퍼비전을 제가 이해한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오늘 귀한 경험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핵심은 지켰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르신의 인격을 세우고, 지역사회의 공생성을 되살리고 강화하는 것' 입니다.
우리의 활동을 논하기 전에
읽어보아야 할 복지요결 중 '평가' 부분이 있습니다.
1. 정합성 평가
· 기준 1: 사업의 목적과 목표
: 무엇보다도 목적과 목표에 비추어 봅니다.
목적에 맞게 했는지, 목표를 달성했는지 평가하는 것입니다.
· 기준 2: 이상과 이념, 핵심 정체성, 역량과 기회비용
: 사업이 이상과 이념과 정체성에 부합하는지 평가합니다.
실천가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이상, 철학, 정체성, 사업의 내용과 방법
- 이것을 자기 안에서 잘 통합하고 일치시켰는지 평가합니다.
신념과 주장과 실천이 일치하는지 평가합니다.
제 생각이라 오만하거나 교만할까봐 염려스럽습니다.
이렇게 스스로의 활동을 명시하며 언급한다는 것 조차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농활팀은 어르신 나름의 여건과 상황 속에서
어르신의 인격은 지키고 관계는 개선, 강화했습니다.
우리 활동은 농활의 비전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르신의 집안 여건 때문에 장소만 달라졌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작은 우리의 활동 중 무엇을 근거로 그리 얘기할 수 있었는지 얘기하고자 합니다.
1. 어르신이 생신잔치 하시고픈 장소에서 했습니다. (어르신의 존엄, 자존심)
어르신 생신잔치 장소를 바꾸는 것도 어르신 주관을 최대한 존중했습니다.
생신잔치할 장소가 식당으로 바뀌었을 때,
어르신께서 직접 하고픈 식당으로 가서 예약했습니다.
식당 가는 길도 어르신이 앞장서서 가셨습니다.
어쩌면 어르신께서 의미있는 사람, 이웃을 부르기에 집이 누추하여
마음이 불편하셨을런지도 모릅니다.
비록 장소가 바꼈을지라도
어르신 인격에 해가 가지 않도록 주도적으로 생신잔치를 준비하셨습니다.
2. 어르신이 생신잔치 주인 노릇 톡톡히 하셨습니다.
어르신께서 어르신과 옆짚 구멍가게 할머니만 드시라고 나온 육회를
선심쓰시듯 임현미 선생님께 건네십니다.
케익 한 조각을 조금씩 띠어 주위 사람들 한 명 한 명 먹여주십니다.
유수상 목사님도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립니다.
센터 직원, 농활팀, 필립스 사장 사모님, 구멍가게 할머니... 모두
할아버지한테 "잘 먹겠다"고 인사드립니다.
어르신이 옆에 앉은 구멍가게 할머니한테
"많이 잡숴~" 라고 하십니다.
준비한 사람, 초대한 사람, 그 자리의 주인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많이 잡숴" 입니다.
오늘은 정말 할아버지만을 위한, 할아버지가 큰 어른 노릇 톡톡히 하신 생신잔치였습니다.
3. 기존의 이웃 , 알고 지내던 사람들 관계가 드러나고 도타와집니다.
선한 부담 덕분에 다음 일도 쉬워집니다.
# 할아버지께 필립스 사장 사모님이 여름에 댁에서 입으시라고
시원한 모시 옷을 선물하셨습니다.
복지기관, 후원기관에서 선심쓰듯이
'무슨 누구 「증」'해서 주는 옷이 아니라
평소부터 안부 주고 받고 어르신께서 상추, 고추 종종 가져다 주는
필립스 가게 사모님이 직접 사다주신,
할아버지만을 위한 이유 있고 관계 있는 선물이니 감동입니다.
머리 속에 그려봅니다.
할아버지 그 모시 옷 입고 주무셨을지,
미소 지으셨을지,
소주 한 잔 나눠마셔서 단잠 주무셨을지...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분명 할아버지 다음 번에 필립스 가게 들릴 때
고추, 가지 챙겨 가실 겁니다.
그 풍경 생각하니 또 뭉클합니다.
# 구멍가게 할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신잔치 끝무렵에 "내년에도 생신잔치 하요?" 물어보십니다.
"내년에도 해야지요. 오시려고요?"고 하자
"하이고, 가야지."라고 하십니다.
내년에는 구멍가게 할아버지까지 모셔올 것 같은 할머니 말씀,
관계가 쌓이고 추억이 새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꺼내서 몸에 대보셨던 모시 옷을
새 옷처럼 다시 접어서 원래 포장에 넣어주십니다.
관심, 정이 없고 미운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시기나 할까요?
그 모습 속에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옆 집 사람으로 생각하는 마음, 관심, 정이 드러납니다.
오늘 자리 덕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야기 거리가 생겼습니다.
만나면 오늘 얘기만 해도 족히 30분은 말씀하실 거리가 생겼습니다.
오늘 돌아가 할머니는 바깥 어르신과
윤○○ 어르신 얘기를 나누시겠죠?
오늘 잔치에서 이랬느니, 어땠느니 하시면서요...
어르신을 향한 관심, 정이 또 쌓이겠습니다.
설령 안 좋은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지나고 보면
이웃 간에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그저 그런 동네 가쉽이지 싶습니다.
할머니는 그 외에도, 할아버지 나이도 여쭤보시고
할아버지 댁에 TV 소리가 커서 있었던 에피소드도 말씀하십니다.
할아버지도 듣기만 하지 않고 답을 하시고요.
할아버지 생신이니 축하말씀 한 마디 해달라 할 땐
"하이고, 준비도 안 했고 못해" 하시던 할머니가
식사 내내 할아버지 얘기만 하십니다.
또한 센터한테 고맙고 미안해하시는 마음도 할머니한테 선한 부담입니다.
앞으로 어르신을 뵐 다른 구실로 이웃을 만날 때
구멍가게 할머니만큼은 도와주시기 쉽겠죠?
동네 반장님, 중고부속 사장님도 이번에 참석은 못 하셨지만
내년에 또 한다면 축사하시러 오시겠지요.
이번보다 동네에서 더 신경 많이 쓰는 동네 잔치가 될 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이웃으로 함께 할 여지, 가능성, 관계, 희망이 자라났습니다.
#
그리고, 농활 생신잔치는 이번이 끝이 아닙니다.
농활 4기도,
농활 5기도,
그리고 그 이후도...
창문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어느 새 수북히 쌓이는 먼지처럼
관계가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길 소망합니다.
시간을 두고 오래도록 내리앉아
쉬이 사라지지 않는 관계이길 바랍니다.
감동, 감사, 관계, 주인됨, 추억이 가득한 생신잔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오빠의 기록.. 정말 좋아요;) / 어제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아릿하고 뭉클함을 느낍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그러하였습니다. 똑같은 일을 경험하였더라도 오빠의 깊이있는 생각과 기록을 통해 저는 새로운 것을 느끼고 또 배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오빠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빠의 지지와 격려로 정말 큰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샛별이가 어르신을 진실되게 어르신으로 섬기고자 하는 모습, 생신잔치에 집중하는 모습도 내게 귀감이었어. 나 또한 정말 고맙다. 샛별아.^^
흐뭇한 광경이 펼쳐진다. 주상이의 사려깊음과 통찰력.. 배우고 싶은 동료들이 여기저기 있음에 감사!
"하이고 가야제~ 주상 만나러 퍼뜩 곡성 가야제~~~" *^--^* / '제 생각이라 오만하거나 교만할까봐 염려스럽습니다'...주상~ 오만하고 교만하면 어떤가요. 동료와 스승이 있으니, 이때만큼은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특권을 누려야지요. 주상이 보낸 쪽지에 답장 보냈어요. 나도 지금 배우고 있는 학생이랍니다. 나를 배려하지 말고, 주상에게 집중하세요~ 오늘, 주상의 글로 하루를 시작하니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그 마음, 배움이라 하시며 너그럽게 품어주시는 그 마음 모두 제게 복이에요. 비오는 거창의 아침, 선생님 쪽지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비록 아는것도 미비하고 표현력이 부족해서 기록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주상형 댓글속 한미경 선생님의 글에 감동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특권을 누리라는 말씀. 아..광활 동료들에게도 전해줄께요. 감사합니다.
To 진우 / 진우 기록을 읽으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성심으로 썼다는 것이 느껴져. 결코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단다. 진우 기록 읽을 적마다 광활에 쏙 빠져드는데 더 무엇이 필요할까?^^
갑작스러운 장소변경에도 농활팀 핵심목표인 어르신의 인격을 세우고 지역사회의 공생성을 도모하는데 집중할수 있다는게 대단합니다. 일상을 보내고 사회사업적 의미를 찾으려고 했었습니다. 복지요결 공부를 하고 가슴에 새기고 하는 활동은 일상속에서 나타나요. 어떻게 메 순간마다 배운 지식을 떠올릴수 있죠? 제가 경험이 없어서 일까요? 지식의 부족함에서 오는것일까요?
주상아, 고맙다. 생신잔치 준비하며 배웠던 교훈을 잘 살렸네. 큰 도움이 됐지? 나도 큰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