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다른 이름으로 촛불시위가 혁명으로 발전하진 않을 것이란 글을 썼다. 아직 그 판단은 유효하다. 그러나 그 글을 쓴 뒤로 나가본 촛불집회에서 느낀 현장감은 자못 감동스러운 것이었다. 게다가 이명박 지지율은 곤두박질하고 있고, 권력의 심층부에서 나오는 현 상황인식과 코멘트는 가소롭기 이를 데 없다.
추측으로 시작해서 가정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희망으로 끝을 맺는 글에 과학적 정확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미아리도사의 “아님 말고” 따위 글에 왜 정력을 쏟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 글 때문에 얼마나 많은 폐해가 있었는지 잘 알고 있는 나로선, 미래는 이럴 것이다 따위 글은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바 있다.
하지만 이즈음에서 촛불시위가 과연 이명박 정권 타도를 외치는 혁명의 함성으로 커질 지 여부를 따져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도가 심각한데도 청와대의 대처방안은 매우 무능하며 안이해서, 오히려 민심 이반을 부채질하기 쉽겠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앞일을 누가 알랴만,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따져 미래를 그려보기로 한다. 현장을 다녀온 뒤로 께름한 내 마음도 위로할 겸 말이다.
혁명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들
무엇보다도 이명박은 국민투표를 통해 당선된 정통성 있는 대통령이다. 권력의 정통성여부는 정권을 지키는 첫번째 주춧돌이다.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통해 자기 권력의 정통성을 훼손한 뒤로 긴급조치가 나오기 시작했음을 상기하라. 다시 말해서 정통성이 없는 정부는 필연적으로 민중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고, 그것을 탄압하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을 동원하게 된다. 남미의 더러운 전쟁을 기억하라.
이명박 정권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민주요, 억지가 된다. 보통 직접 평등 비밀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무슨 이유로 부정한단 말인가. 그런 일은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약하다. 촛불시위가 이명박 정권 타도로 발전할 가능성이 낮다는 내 판단은 상당 부분 이 지점에 의지하고 있다.
두 번째로 국민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가장 큰 이유는 경제 회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민생경제는 언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큰 이슈요, 정치의 요체이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a economy, Stupid!) 한 마디로 잘나가던 부시가 낙마했다.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民以食爲天)는 말은 중국 초한쟁패 시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의 비극적 죽음을 불러일으킨 부마항쟁도 민주항쟁과 신설된 부가가치세에 대한 저항(오일쇼크 등으로 민생경제의 고충이 심각했던 상황이었음)이 결합되어 나타났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100일은 너무 짧다. 국민도 그 점은 이해하고 있다. 그의 주요 경제 정책이 비록 한반도 운하 따위의 시대착오적 환경파괴적인 것이라서 그에 대한 반대가 매우 심한 점은 일단 논외로 치고,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회생시킬 것이란 기대를 접은 것은 아니다. 고로 지금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정권타도를 외칠 가능성은 낮다.
세 번째로 혁명을 부르기엔 아직 희생이 부족하다. 피를 보지 않는 혁명은 없다. 명예혁명이란 아름다운 이름도 압도적인 군사력의 차이가 가져온 결과일 뿐, 어떤 혁명도 예외 없이 희생의 온축과정을 요구한다. 정권 교체는 권력자의 잘못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란 과정을 거치는데, 이 부분에서 이명박의 실정이 실제적인 희생을 불렀다는 것은 지나친 평가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잘못은 아직까지는 감정적 차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어륀지” 영어 몰입교육이나, 한반도 대운하, 강부자 고소영 인사, 광우병 쇠고기 장관 고시 등은 심각한 잘못이긴 하지만 치명적인 잘못까지는 아니다. 지금이라도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한다고 선언하고, 잘못 임명한 장관 수석을 교체하며 대운하는 포기하겠다고 발표하면 된다.
다시 말해서 지금 국민은 우리나라의 주권이 침해되고, 한미FTA 체결을 위해 위험한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정권의 억지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일개 고용인 정도로 치부하는 이명박의 오만함에 경고하는 것이다. 불도저로 밀어붙이는 그 와중에 깨져나갈 환경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이지 생존의 문제, 원칙의 문제는 아직 아니다. 다시 말해서 내일 예정된 청와대의 발표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가에 따라 충분히 가라앉을, 아직은 찻잔 속의 폭풍이다.
경찰과 검찰 등 공권력은 경찰이 집회 참가자를 연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로 갑자기 촛불시위가 격화됐다는 점을 늘 잊지 말기 바란다. 경찰의 강경진압은 이 정권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부메랑이 되고야 말 것이다. 전두환 살인정권을 무너뜨린 계기는 서울대생 박종철군에 대한 고문치사사건이었다.
▲ 촛불집회 응원 주먹밥 밤샘 촛불 길거리 시위가 1일 오전까지 계속된 가운데, 시청 앞 광장에 모여있는 시위 참가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다음 안티 이명박 카페' 회원들이 보낸 주먹밥과 김밥과 생수 등의 음식들. |
ⓒ 안홍기 |
혁명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우려스런 부분
무엇보다도 이명박 자신이 걱정스럽다. 그는 명리적으로 보나 그간의 어록들로 보나 교만하고 오만한 사람이다. 그는 결코 잘 모르는 사람을 쓰지 않으려 하고, 한 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챙기고 곁에 두려 한다. 이는 대통령의 자질이 아니라 깡패 오야붕에게나 어울리는 덕목이다. 그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책을 바꾸는 것을 비겁한 항복으로 느끼고, 사람을 자르고 바꾸는 것을 패배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 난국은 사실 쇠고기 하나만으로 초래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광우병 쇠고기 파문이 모든 이의 꼭지를 돌게 한 것이 사실이므로, 쇠고기 문제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미국과 쇠고기 수입 협상을 다시 하자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지만, 하지 않는다에 건다. 이명박이 친미 사대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는 기본적으로 친미주의자지만, 자기 정권을 내놓더라도 미국에 대한 사랑으로 초지일관할 위인 또한 못된다. 쇠고기 재협상이 아니면 정권이 넘어가게 생겼다고 판단한다면, 그가 아무리 친미주의자라 할지라도 재협상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쇠고기 문제는 무조건 재협상 말고는 풀길이 없건만, 이명박 대통령이 아직도 체면을 구겨가면서 미국과 재협상을 할 정도로 심각한 국면이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더 높다. 양초값은 누가 대느냐란 한심한 질문이 나오는 판이다. 그에게 직언하고 정확하게 민심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큰 불행이다. 내일 발표될 청와대 대책을 보면 알게 될 것이지만, 이럴 경우 시위는 장기화되고, 저항은 거세질 것이며, 청와대로 가자는 시위대의 요구는 더욱 더 강하게 타오를 것이다.
당연히 물대포니 연행 과정의 구타도 빈번해질 것이고, 경찰서 유치장은 확신범들로 가득 찰 것이다. 지금 시민들은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권위주의 시대에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시위에 나선 국민들이다. 형식적 민주주의나마 자리를 잡은 대한민국에서 쇠고기 촛불시위 했다고 칠성판에 뉘어져 고문당할 일은 없다. 게다가 내 가족의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절실한 확신으로 나선 사람들이 그깟 물대포에 꿈쩍할 것 같은가?
둘째, 경제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석유류와 곡물류 등 해외 원자재 값의 상승폭이 너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확신대로 교역을 해야 먹고 사는 이 나라가 졸지에 무역을 하면 할수록 거덜나는 사회로 바뀔 가능성마저 있다. 실제로 이명박 집권 이후로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악화 일로에 있다 거듭된 경상수지 적자는 순채권국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으며, 잘못된 경제정책은 서민 경제를 쥐어짜는 압착기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대내외적 경제상황이 쉽게 호전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자들 입에서 전 세계적 장기 불황은 예고되고 있다.
민심은 천심이라 할 때 그 민심은 언제나 쌀독을 먼저 들여다보기 마련이다. 통장 잔고가 메말라가고, 그것이 좀처럼 호전되기 힘들다고 판단한다면, 국민들은 이명박을 지지할 이유도, 정권을 지켜줄 의무도 없다. 민생경제가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이명박 정권에게 너무나 비우호적이다.
게다가 재벌과 부자를 위한 대규모 감세정책으로 모자란 경제운용자금을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확보하겠다는 발상은 민생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가게 될 것이다. IMF 당시에는 국난극복이란 명분이라도 있어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지 않았지만, 민영화=고물가로 받아들이는 작금에 공기업 민영화는 범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대운하와 건강보험 민영화는 말해 무엇 하랴. 철회하지 않는다면 최단기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 뻔하다.
세 번째로 국민 저항의 강도와 명분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지도부가 없는 시위 현장은 하나의 거대한 축제로 변한 지 오래다. 공자 가라사대 호자불여락자(好者不如樂者)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즐기는 사람이며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다. 시위를 즐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시위 참가자들이 현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심지어 그것을 조롱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시위 참가자들의 논리가 현 정권의 그것보다 우월함을 반증한다.
아직은 시위 참가자의 범위가 제한적이지만, 온 국민이 모두 시위에 참가해야만 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이 정권이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지 않아 연행되는 시민 숫자가 천 명 만 명을 넘어간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현 이명박 정권의 몰락 외에는 없다.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권은 아직 기회가 남아 있지만, 그 자신이 정통성 있는 정권임을 앞세워 국민의 생존과 존엄마저 좌지우지하려는 현금의 작태를 걷어치우지 않는다면, 촛불은 횃불이 되고 정권을 쓸어뜨리는 거대한 물결로 변할 수도 있다. 지금은 아직 임계상황은 아니지만, 임계점을 넘길 것인지 여부는 현 정권의 태도에 달렸다. 우선 당장 내일 발표될 청와대의 민심수습책이란 걸 지켜보도록 하자. 옥동자가 나오길 바라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울 것처럼 보인다. 내가 틀리길.
읽어주신 님들의 평안을 빕니다.
마레 근서.
by 마레
http://www.moveon21.co.kr
첫댓글 모든 국민이 내가 틀리길...이라는 생각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사람의 본질이 바뀌기란 참 힘들 일이지요..국민들이 뿔났다고 그분의 본질이 금방 하루아침에 바뀔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