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가득, 푸짐한 통술집에서 한잔 어때?
창원 오동동 통술골목
경남 통영의 다찌집, 전북 전주의 막걸리골목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아마도 푸짐한 안주와 술일 것이다. 통영 다찌집과 전주 막걸리골목을 꼭 빼닮은 곳이 경남 창원에 있다. 옛 마산의 중심부인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자리한 통술골목이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로 시작되는 <오동동타령>의 본고장인 오동동 통술골목에는 흥청거렸던 술과 골목의 역사가 남아 있다. 좋은 벗들과 함께 푸짐한 안주에 술잔을 기울 수 있는 곳, 오동동 통술골목의 매력에 취해보자.
오동동 통술골목 ‘정아통술’의 상차림
서민의 애환 담긴 오동동 통술골목 소리길
낮에 찾은 오동동 통술골목은 행인이 뜸하다 못해 고요하다. 하지만 오후 5시를 넘어서자 거리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오가는 사람도 제법 많아진다. 바야흐로 통술집이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어둠이 더 내리기 전에 오동동 통술골목의 역사와 지난날의 흔적을 더듬어본다. 지난 2014년 통술골목에는 140m에 걸쳐 ‘통술골목 소리길’이 조성되었다. 어둡고 지저분한 골목길이 통술골목과 3.15의거 발원지를 기념하는 아름다운 골목으로 변신했다. 3.15의거는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마산에서 일어난 시위로 이후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발원지가 바로 오동동 통술골목에 자리한 옛 민주당사다. 3층 건물 앞에 3.15의거 발원지를 기념하는 동판이, 건물 뒤편에는 3.15의거 발원지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상세한 의거 과정이 디오라마로 전시되어 있다.
건물 벽 곳곳은 화사한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고 현재호 작가의 그림이다. 부산 자갈치시장과 마산 어시장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작품이 후배 작가들의 손에 벽화로 거듭났다. 현재호 작가의 그림은 오동동 문화의 거리 건너편 골목으로도 이어진다. 마산 아귀찜의 원조라 칭하는 ‘진짜초가집’, 1970년대까지 성황을 이뤘던 요정 중 하나인 ‘춘추관’의 옛 간판도 볼 수 있다. 지난날 오동동 문화의 거리를 중심으로 길가에는 통술집이 자리를 잡고, 안쪽 골목에는 요정이 영업을 해 야시골목으로 불렸다.
그럼 통술문화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일제강점기 때 바다를 매립해 마산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요정문화가 전해졌다. 당시 요정은 고급 요리를 내는 음식점이었는데 접대문화의 상징으로 굳어지면서 1970년대까지 성행했다. 마산은 1970~80년대 수출자유지역이 되고, 한일합섬과 한국철강 등이 들어서면서 크게 성장했다. 한일합섬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3만 명이 넘었고, 오동동과 창동 일대는 주말이면 인파에 밀려다닐 정도로 마산의 최고 번화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통술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요정이 점점 쇠퇴하자 요정에서 음식을 담당하던 사람들이 나와 요정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고급 요리를 저렴하게 내놓는 술집을 차렸다.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횟집이 아닌 통술집으로 모실 정도로 통술집은 마산의 명물이 되었다. 술이 통에 담겨 나온다 하여 통술이라는 말도 있고, 한 상 통으로 나온다 하여 통술이라 부르기도 한다.
[왼쪽/오른쪽]오동동 통술골목 소리길 안내 표시 / 오동동 통술골목에 있는 3.15의거 기념 조형물
[왼쪽/오른쪽]통술골목 벽면에 그려진 고 현재호 화백의 그림 / 오동동 통술골목 소리길 입구
푸짐한 상차림에 한 잔 술로 통술골목을 추억하다
오동동 통술골목에는 20여 곳의 통술집이 성업 중이다. 지금은 신마산을 중심으로 한 통술집이 낫다고 하지만, 그래도 통술의 역사가 시작된 오동동 통술골목이 제격이다.
추천을 받아 찾아간 ‘정아통술’에 들어가자 넓은 테이블에 안주가 빼곡히 들어찼다. 대략 세어보아도 20여 가지. 바다의 고장답게 해산물이 주를 이룬다. 문어숙회와 해삼, 멍게, 전복 등 알짜배기 해산물이 사이좋게 모여 있고, 노릇하게 구워낸 조기와 학꽁치가 나란히 한 접시에 담겼다.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과 묵은지 삼합, 닭강정처럼 조려낸 장어와 꿈틀꿈틀 움직이는 산낙지, 가을의 진미 전어까지 올랐다. 오동동 통술집에 해산물이 많이 오르는 이유는 바로 마산항이 가깝기 때문이다. 새벽 5시 반이면 수산물 경매가 열리는 마산항 수협위판장과 좌판어시장, 그리고 아케이드로 깔끔하게 정돈된 마산어시장에서 싱싱하고 저렴한 해산물을 가져다 쓴다. 철따라 나오는 안주도 다르다.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물메기와 우럭, 봄에는 해삼과 성게 등 신선한 제철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통술집의 상차림은 주인의 음식 솜씨는 물론 개성도 뚜렷이 담겼다. 안주를 달라는 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대로 받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주인장의 눈썰미가 더해진다. 손님의 식성을 파악해 새로운 안주를 내놓기도 하고, 남은 안주를 새롭게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안주가 푸짐하게 나오기 때문에 식사를 겸해 술집을 찾는 사람이 많다. 한 상이 차려지면 얼음을 가득 채운 커다란 통에 소주와 맥주가 담겨 나온다.
통술집은 마산 사람들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오동동이 붐비던 시절, 통술집에는 서로 아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지인의 테이블에 술을 몇 병씩 넘겨주고, 답례로 그만큼 혹은 그 이상 받기도 했을 만큼 술 인심이 좋았단다. 오동동에서 술을 마시면 오동동파출소에서 헤어진다는 말도 있었다. 술 한 잔 마시고 길거리를 지나다 아는 사람 만나서 또 한 잔. 술자리 파하고 길을 나섰다가 아는 사람 만나 또 한 잔. 이러다 보니 결국 술에 취해 오동동파출소에서 귀가하게 된다는 얘기다. 오동동의 술문화가 사람과 진하게 얽혀 있음을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하는 우스갯소리다. 재미있게도 취재를 위한 술자리를 파하고 길을 나섰다가 동행한 이가 지인들을 만나 붙잡히는 바람에 결국 두 번째 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
테이블을 그득하게 채운 안주와 술
[왼쪽/오른쪽]얼음을 꽉 채운 통에 술을 담아서 낸다. / 벗들과 함께하는 흥겨운 술자리
[왼쪽/오른쪽]마산 수산물경매장 뒤편에 자리한 좌판어시장 /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서 만난 3.15의거 기념 조형물
술에 대한 모든 것, 굿데이뮤지엄
통술집에서 푸짐한 안주에 거나하게 마셨으니 술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나눠보자. 오동동 통술골목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굿데이뮤지엄이 최근 문을 열었다. 무학소주로 잘 알려진 무학주조에서 세운 전시관이다. 술의 역사와 함께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3,000여 종의 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전시 공간은 크게 세계술테마관과 재현전시관으로 나뉜다. 세계술테마관에서는 먼저 술의 기원과 술의 종류 등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 일본,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와 유럽, 오세아니아, 중남미,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으로 나눠 나라별로 잘 알려진 술을 전시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된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베트남의 달랏 와인, 한 그루 포도나무에서 한 잔의 와인만 만드는 프랑스의 샤또 디껨,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술인 프랑스의 루이 13세, 알코올 함량 96도로 세계에서 가장 독한 폴란드의 스피리터스 등이 있다. 그 밖에 살모사를 넣어 만든 북한의 불로주, 아가베라는 식물에 서식하는 애벌레가 들어간 멕시코의 메즈카, 향수처럼 뿌리는 맥주, 개가 마시는 맥주 등 독특한 술도 만나볼 수 있다. 세계술테마관을 지나면 마산의 향토기업 무학의 역사와 1900년대 마산의 역사를 담아낸 재현전시관이 이어진다.
굿데이뮤지엄은 오전 10시, 오후 2시와 4시, 하루 3차례 관람이 가능하다. 주말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개별 관람은 불가하며, 10명 이상이면 단체 신청이 가능하다. 10명 이하인 경우 전화로 문의해보는 것이 좋다.
굿데이뮤지엄 외관
[왼쪽/오른쪽]세계 각국의 술이 전시된 굿데이뮤지엄의 술박물관 / 트리 모양을 닮은 예쁜 술병
[왼쪽/오른쪽]굿데이뮤지엄 재현전시관 입구 / 재현전시관 내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