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에르떼라는 화가의 번스타인 도이치 그라모폰
의 에디션 커버아트를 좋아합니다..
ERTE 에르떼 라고 읽음 되겠져..
:
: 제 짧은 지식으로 말러광분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될까 글을 씁니다
: 지금 pc방인 관계로 정확한 연대표기는 불가능 하군요..
: 나중에 정리가 되면 이쁘게 글을 남기기로 약속을 드리며..
:
: 로댕
: 일단 카라얀의 DG 녹음의 북클릿에 있는 흉상은 오귀스트 로댕이 제작한 것이죠..로댕은 그당시 꽤나 유명해져서 프랑스이외의 지역에서도 꽤 추앙받는 조각가였죠..(당시만 해도 빈과 독일에는 프랑스 인상주의작품의 전시회가 거의 드물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로댕의 지명도는 엄청난 것이죠)
: 저번에 로댕겔러리에서 대규모 로댕전시회가 있었는데 그때 은근히 그 흉상도 왔을까 했지만 역시나 안왔더군요..
: 물론 그런 주문제작 흉상은 모두 개인 소유겠지요..
:
: 구스타브 클림트
: 말이 필요 없는 화가지요..요즘 들어 정말 클림트의 인기가 상종가 입니다. 더불어 그의 제자(?)라 할 수 있는 코코쉬카와 에곤 쉴레의 인기도 급상승 중이고요..
: 말러는 분리파를 지원 했다고 하는군요 이름을 까먹었는데 분리파 일원중에 ???라고 있는데 그사람은 클림트와 교분이 두터운 사람이고 나중에 비공방의 일원이 되지요.
: 그사람의 딸이 바로 알마 말러입니다.
: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말기)의 음악과 미술을 대표하는 클림트와 말러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음반의 표지를 장식하는 여러 클림트의 그림에서 그 빛을 잃지 않는군요.(물론 아바도 베토벤 전집(DG)엔 베토벤 벽ㄱ하가 쓰였지요^^)
:
: 에곤 쉴레
: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지요..
: 불같이 살다가 짧은 생을 마감했는데 표현주의로 분류하기엔 좀 모호하지만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면은 그 어떤 표현주의보다 과격하고 강렬하지요.
: 클림트이후 코코쉬카와 함께 가장 중요한 화가로 평가받습니다
: 안타까운건 그가 후원자의 제의를 거절하지만 않았다면 말러의 초상화를 그릴 수있었다는 것이지요..
: 제 생각에는 말러의 음악과 어울리는 그림은 클림트가 아니라 쉴레라고 생각합니다.
: 그의 그림은 말러의 스케르쪼를 듣는 듯하지요..특히 여러 자화상에선..
: 그가 그린 말러의 초상이 보고싶습니다...
:
: 오스카 코코쉬카
: 클림트사후 가장 중요한 독일 오스트리아 화가
: 말러와 관련된 가장 큰 사건은
: 그가 말러사후 알마 말러를 무지하게 짝사랑했다는것!
: 그는 1914년 1차 대전이 터지자 도망갔던 쉴레와는 달리 알마에게 잘보이기위해 포병부대에 자원 입대하게 된다.
: 그가 그린 '바람의 신부'라는 초창기 작품은 표현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그림인데 거기에 신부와 함께 누워있는 남자의 얼굴은 바로 코코쉬카 자신이다. 물론 신부가 알마임은 말할 나위도 없고..
: 그는 그후 당시 유행이던 애인의 인형제작에도 뛰어드는데 물론 그 인형의 얼굴도 알마이다.(인형과 같이있는 자신의 자화상이 남아있다)
: 그후 코코쉬카는 딴 여자와 결혼하여 세계각지를 떠도는데 그후의 작품에선 알마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게 된다.
: 참고로 알마는 그당시 사교계(?)에서 날리던 여자였는데 미술,음악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쳤다고 한다.
: 그녀의 수려한 외모를 보면 이해가가기도 한 부분이다.
: 불쌍한 말러...^^
:
: 쓰고 보니 정말 도움 안되는 글이군요..
: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말러가 살던 1860-1911의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그 위선적인`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거대한 용광로`에 대해 쓰고 싶군요..
: 당시를 주름 잡았던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크라우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그외의 극작가 건축가 등등을 말러의 주변의 시대 상황에 마추어 정리하면 말러를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네요..
:
: 졸렬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