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등대
방화와 방염
주말과 일요일은 조금 마음이 한갓진 날인데
이번 주말과 일요일은 유치원이 분주하고
월요일과 화요일은 절이 분주한 날이 될듯 합니다.
사연을 말씀드리자면
소방 방염과 관련하여 소방 방재청이 법을 만들고
소방서를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다중 이용 시설들에 대해
법에 정한대로 방염 관련한 시설을 갖출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벌금을 물린다거나
행정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여러 차례 직접 혹은
서신으로 통보를 해 오던 차에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업체를 선정하여
화재 발생시에 대비한 방염 도료의 살포와
벽지등에 대한 교체 작업을 하는 까닭입니다.
우리 나라가 그만큼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려 하는 자세가 좋아 졌다는
반증이 되는 하나의 예가 될지는 몰라도
일률적인 법을 적용하는 까닭에
자칫 어렵고 고단한 서민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 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군들 화재를
유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기존에 지어 진 건물들에 대해서는
권장 사항으로 하며 신규 건축물부터는
엄한 잣대를 적용한다면 모르거니와
법이 시행 되기 전에 지은 건물에까지
똑같은 법 적용을 소급하겠다고 하니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것이 현실임을
자칫 간과한 경우라 생각 됩니다.
멀쩡한 건물 벽지를 다시 발라야 하고
주거하는 방의 천정등에
석고 보드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나
법당이나 불단등에까지
방염 도료를 칠하라고 요구하는 일은
자칫 종교적인 건축물의
특성을 무시한채 행해지는
방재청의 업무 편의주의적인
행정의 전형을 보는듯 합니다.
건물의 규모에 따라
경비도 여간 적지 않아서
많은 공사 견적이 나오는데
요즘같은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그것을 감당하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기는 반대로 생각하여
그저 권장 사항으로만 하면
누구라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서두르는 사람도 없을 것
이참 저참 화재의 현장에서
목숨 걸고 수고 하시는 소방서 직원들의
반 강제력이라도 동원하여
부처님을 모신 도량과
유치원 아가들의 안전을 위해
시공하고 있는 것이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입장입니다.
소방 방염만의 문제가 아니라
화재 보험의 경우도 비슷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사찰에 부주의로 생긴 화재나
누군가의 방화로 인한 소실등을 염려해
화재 보험을 들어 볼 생각으로
모 화재 보험 직원을 만나니
정작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은 받아 주지 않고
화재가 날 염려가 적거나
난다 해도 피해가 경미할
콘크리트 건물에 대해서만
보험을 받아 준다 소리에
두말 없이 돌려 보낸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하고 나서도 한참을
어이없어 하였습니다.
지난 해 겨울에만도 뉴스에 확인한 바로
두군데의 사찰 법당이 화재로 전소 되었고
엊그제 3월 10일날 오후에는
서울 우이동 삼각산 도선사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르려다
붙잡힌 사람이 있다는데
큰 화재로 번지지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화재를 일으키려던 사람은
무슨 영적인 계시를 받았느니 하면서
정신 병력을 들먹이고 횡설 수설 한다 하니
아마 그 사람도
정상적인 재판을 거쳐
죄에 상응하는 엄벌에 처하기보다는
방면하기 쉬운 상황일 것이고 보면
그도 역시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도 있어서
화재를 당하기 전에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권고하고 장려하는 정책은 정말로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조심하고
미리 미리 바로 잡아 꺼야 할 불은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분수에 넘치는 탐욕과
자기 뜻대로 맞추어 주지 않을 때
세상을 상대로 하여 일어나는 성난 행동과
어둑한 맹신이나 주의 주장으로 인하여
분멸없이 일으키는 어리석은 행동등
탐진치 삼독의 맹렬한 불꽃을 가라 앉히는 일입니다.
우리 불교가 지향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지칭하는 열반이란 단어는
인도 말로 니르바나라는 말의 한문 표현으로
그 뜻을 풀이해 놓은 것을 보면
"번뇌의 불길을 꺼 버리다"라는
말의 의미를 갖습니다.
아직 니르바나에 이르지 못한 사람으로
그 경지를 집작해 알수는 없으나 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우리가 번뇌의 불길을 완전히 불어서 끄기 전에는
이 삼계 어디를 두고도 편안하고 안온한 대지는
찾아 보기 어려울듯 싶습니다.
하지만 번뇌의 불길을 끄고 보면
이 불안정한 대지와 산하가
그대로 부처님의 적광토가 되어
어디로 떠나지 아니 하고도
대자유와 평안을 누린다 하니
오직 우리가 의지하고 믿을 가르침은
부처님의 가르침 외에는
다시 없음을 알수 있습니다.
무상게에 나오듯
겁의 불길이 타오르면
삼천 대천 세계가 무너지고
수미산이나 큰 바다도 마멸되어
남김이 없어 진다 하시는 것처럼
설령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마음에 번뇌의 불길이
온전히 소멸되지 않을 경우에는
세세 생생 생을 거듭하고
소겁 중겁 대겁을 달리 하면서
윤회하는 고통을 피할수 없다 하시니
번뇌의 불길이
다시 피어 날수 없도록
완전한 반열반을 이루신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처럼
생멸멸이하고 적멸위락이 되기 위하여
열심히 정진하는 일만 남아 있다 생각합니다.
이미 "삼계가 불난 집과 같으며
내가 마땅히 그것을 편안케 하리라"
설하신 부처님의 출생게에 비추어 보면
부처님의 고귀하신 가르침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마음 속 깊이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무지와 오만과 맹신과 배타적인 사고가
스스로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 것인지를
되돌아 보게 하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야 말로
삼대겁의 치성한 불길을 꺼서
청량함을 얻게 하시는
최상의 소방수요 감로 법수입니다.
오늘은 우리 고등부 학생 법회가
개학후 첫 법회 날인데
회장이 전화하여 오늘은 저희들끼리
신입 법우들과 이야기하며
오리엔테이션 형태로 진행하고 싶다 하여
그 시간에 부처님 전에 마지 올리고 축원하는데
마침 영단에 아버님 위패를 모신 불자가
부인과 두 딸등 가족들과 같이 와서
축원을 하고 돌아 갔습니다.
초등학생인 딸들이
부모님과 같이 부처님 전에 절하는 모습이
바로 천진 부처의 모습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신학기 새로운 신입 법우들의 얼굴은
다음주 일요일 보는 것으로 미루고
찬 바람 부는 일요일 일과를 접습니다.
감기들 조심하시고
삼월이 엊그제 시작하더니
이미 삼분의 일을 지나 갑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가요.
'근위무가지보요 신위호신지부'라 합니다.
근면하고 성실함은 가치를 논할수 없는 보배요
신중하고 조신하는 것은
몸을 지키는 부적과 같다는 말입니다.
좋은 계획과 차분한 마음으로
번뇌의 불꽃 식히시는 한 주 만들어 가십시다.
[인용문]
太公曰 勤爲無價之寶요 愼爲護身之符니라.
태공왈 근위무가지보요 신위호신지부니라.
"근면(謹勉)은 값 없는 보배이며
근신(謹愼)은 몸을 보호하는 부적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 가는 방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부지런한 것이다.
옛글에 '근면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一勤天下無難事)'
'일생의 계획은 부지런한 데 있다(一生之計在於勤)'
또는 '작은 부자는 부지런한 데 있다(小富在勤)
부지런히 노력함으로써 발전이 있고
결실(結實)이 있으며 성공이 있다.
과거나 현재를 물론하고
크고 작은 사업을 이룩한 사람치고
부지런하지 않은 자는 일찌기 없었다.
우리 주변의 가난하거나
발전이 없는 사람을 냉철히 관찰한다면
그 원인이 대부분 부지런하지 못한데 있다.
우리는 마땅히 근면을 처세의 신조(信條)로 하여
발전과 성공을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근신(謹愼)이라고 보겠다.
모든 것을 삼가는 것만이 허물을 적게 해서
내 몸을 보전할 수 있는 최선(最善)의 길이 되는 것이다.
옛 시에 '깊은 못에 임한 듯이,
살얼음을 밟는 듯이' 하는 말이 있으니,
우리는 이와 같은 태도로 매사에 신중을 기해야겠다.
孔子 言中에서......어느 글귀.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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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