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평생
등에 거사(고문)
1300 년대 중반인 중국 원나라 시대 말,
후에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 주 원장이, 심산유곡에 위치한 고찰에서
한 손이 펴지지 않는 병신 행세를 하며 불목하니 노릇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에 주지 스님이 경내를 거닐다 보니, 어느 놈이 절의 처마 끝에 매달려,
양손을 교대로 서까래 잡은 손을 옮겨가며 사찰 지붕을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주 원장이었다.
"저놈이 분명 주먹을 펴지 못하는 병신이었는데....?"
그날 밤 주지 스님은 주 원장이 자고 있는 틈을 타서 억지로 주 원장의 주먹을 펴 보았더니
펼쳐진 손바닥에는 하늘 천(天) 자가 선명한 손 금이 그어져 있었다.
그에게는 중국 천하를 차지할 황제의 운명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주 원장은 잠들지 않고 있었다.
그날 밤 주 원장은 주지를 살해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으니 주지가 천기를 누설할까 저어
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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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 인으로서
나의 고향에서 젊었을 때 상경하여 청량 리에 사무실을 두고 사주, 관상 등을 봐주는 것을 업으로 하여
성공한 꽤 유명(?)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나의 할머니의 친정 조카의 남편으로 나와는 어찌어찌 저리저리 하여 아주 남이랄 수 없는 분이셨다.
내 젊었을 적 집안 잔치 장소였던 것 같은데 그분을 뵙게 되었다.
어렸을 때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만남이었다.
그분이 나를 유심히 보시더니 그러신다.
"부자 될 상이다"
그분은 지나가는 말로 덕담을 하셨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도 나는 그 말이 잊히지 않고 뇌리에 새겨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천기를 누설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뇌리에만 새겨 놓았을 뿐이지 누구에게도 떠 벌이지도 않았다.
세월은 어김없이 흘렀고 나는 부자가 되지 못했다.
물론 그분도 이미 고인이 되신 지 오래이다.
영화 '관상'에서 주인공 '내경(송 강호)'은 그런다.
관상을 잘못 본 것을 '파도만 보았지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지 못했다'라고...
나의 관상을 보신 그분도 나의 관상을 파도만 보신 것일까?
어차피 관상을 본 것이 맞지 않을 것이라면, '참으로 여인이 많이 따를 상이다'
이래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부자도 되지 못하고 여인들도 따르지 않았다.
주먹 쥔 손을 펴지 않은 주 원장처럼 내 관상을 누설한 적도 없는데
주 원장이나 나나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평생이다.
어느 한 평생(平生)
동네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 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7 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得音)도 있었고 지음(知音)이 있었다."
그러나 칠십을 산 노인은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이 오면 하겠노라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이 모두가 한 평생(平生)이다.
재미있고 해학적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큰 시(詩)다. 하루를 살았건, 천 년을 살았건 한평생이다.
하루살이는 시궁창에서 태어나 하루를 살았지만, 제 몫을 다하고 갔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간다고 외쳤다니 그 삶은 즐겁고 행복한 삶이었을 것이다.
매미는 7년을 넘게 땅 속에서 굼벵이로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내고 7 일을 살고 가지만
득음도 있었고, 지음도 있었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인간은 음을 알고 이해하는데 10년은 걸리고 소리를 얻어 자유자재로 노래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자면 한평생도 부족하다는 데, 매미는 짧은 생(生)에서 다 이루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사람은 기쁘거나 즐거운 일이 있어도 즐기지 못하고 모두 다음으로 미룬다.
모든 좋은 일은 좋은 날이 오면 하리라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다니 이 얼마나 허망하고
황당한 일인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맹목적으로 허둥대며 살다가 후회만 남기고 가는 게
인생인가 보다.
천 년을 산 거북이는 모든 걸 달관한 듯 세상에 바쁜 일이 없어 보인다.
느릿느릿 걸어도 제 갈길 다 가고 제 할일 다하며 건강까지 지키니 천 년을 사나 보다.
그러니까 하루를 살던 천 년을 살던 모두가 일 평생이다.
이 시(詩)에서 보면, 하루 살이는 하루 살이 대로, 매미는 매미대로, 거북이는 거북이 답게
모두가 후회 없는 삶인데, 유독 인간만이 후회를 남기는 것 같다.
사람이 죽은 뒤 무덤에 가보면, 껄껄껄 하는 소리가 난다는 우스게 소리가 있다.
웃는 소리가 아니라 좀 더 사랑할 걸, 좀 더 즐길 걸, 좀 더 베풀며 살 걸,
이렇게 걸 걸 걸 하면서 후회를 한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일인가?
<받은 글 옮김>
첫댓글 후회하지 말고 사랑하고배풀며 살자 하시던 고 김수환 추기경님 말씀이 생각 나네요
고맙습니다.
노병 님! 가족에서 가정에서 아니 세상에서 더불어 사면서 "사랑하고 베풀며 사는 것' 처럼 큰 덕목이 있을까요?
오래 전에 받은 대화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중단 시킬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요,
중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베품)이다."
좋은 가르침의 말이라 여겨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