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여자 동기생. 졸업한 뒤 만나지 못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무척 친하게 지냈던 친구다.
얼마 전 뜻밖의 초대장 하나가 날아왔다. 첫 시집 출판기념회에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늦은 시각에 열린다니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녀오면 또 한밤중이 될 게 뻔했다. 쉽게 답을 주지 못한 채 어떻게 하면 적당히 사양할 수 있을까 궁리하기도 했다. 가봤자 그 친구 말고는 아는 사람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특별한 법이다.
첫아이를 얻었을 때도, 첫 손주를 가슴에 품었을 때도,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그 감격과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올해 정식으로 등단하기 전, 손녀의 두 돌을 맞아 《할비와 두 살 손녀》라는 작은 시집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일이었다.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모를 때였다. 그래도 할아버지로서 첫 손주를 향한 사랑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손녀가 집에 올 때마다 귀여운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보며 시의 형식을 빌려 글을 적어 내려갔다. 87편이 되었다.
출판 비용이 만만치 않아 정식으로 출간하지는 못하고 주변 지인들에게만 몇 권씩 나누어 주었다. 어설픈 ‘짝퉁 시집’이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에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 교회 성도 한 분은 그 시집을 머리맡에 두고 틈틈이 읽는다고 한다. 교회에서 만날 때마다 시집에 실린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는데, 정작 쓴 나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그때의 감정을 되새기곤 한다.
또래 부부인 지인에게서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도 우리 손주를 위해 글 좀 써 봐요”라고 했다가 소소하고 귀여운 가정불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기에 나이 일흔이 넘어 첫 시집을 낸 그 친구의 마음이 어떨지 굳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어제는 그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혹시 올 수 있어요?”
결국 가겠다고 답했더니 아이처럼 무척 좋아했다. 이어 어떻게 오면 되는지 교통편까지 자세히 알려 주었다. 글자 하나하나에서 친구의 기쁨과 설렘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실 이번에 만난다고 해서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30년 넘게 만나지 않고 지냈는데, 오늘 한 번 만났다고 해서 그 인연이 꾸준히 이어지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떠랴.
누군가에게는 평생 기다려 온 첫걸음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특별한 날일 수 있다. 나 역시 작은 시집 한 권을 만들었을 때의 설렘을 기억하기에 그 마음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친구의 첫 시집 출간을 축하하고 그 설렘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제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서려 한다.
첫댓글 감회가 새롭겠네요.
여자 동기생도 어느덧 할머니가 되었겠군요.
사뭇 어떤 모습일까 기대됩니다
너무나 좋아하실 여자 동기생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기쁜 마음으로 첫 시집 출간을 축하하고 설렘을 나누기 위해 기쁜 맘으로 나서는 발걸음에 저두 기분이 덩달아 좋아집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그 설렘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닐까요.
시집이 보잘것없어도 의미를 찾으면 보람이듯,
시를 쓴 친구의 기쁨을 같이 나눈다면 배가 될 것입니다.
다녀오셔야죠.
ㅎㅎ 감사합니다
첫 사랑, 첫 시집 출간 등 그 "첫"이라는 풋풋한 설렘과 기대
"눈처럼 다가와 방울져 떨어진다" 시적 문장 때문에 먹기 시작한 아이스크림
그래서인지 저는 설레임 커피맛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습니다
특히 라이딩 할 때
이미 참석해서 첫 시집 출간 기념을 축하해 주시기로 결정하셨으니 잘 하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30년만에 만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요
즐거운 만남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