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5510]日月之鄕(일월지향)
삼국유사와 필원잡기에 전재된
연오랑 세오녀의 애뜻한 사랑을 찾아 나선 산야초효소의 이야기
연오랑 세오녀상은 영일만에 연오랑이 타고간 바위가 있어
이야기속의 배경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빛가람산야초 강병연은 박인량의 『수이전』에 실려 있는 설화로
『삼국유사(三國遺事)』 와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전재되어 있는 내용을
네이버의 자료에 근거하여 정리하여 보았네요.
이 이야기는 우리 나라에서 문헌에 전하는 거의 유일한 천체신화(天體神話),
일월신화(日月神話)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는 신라의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던 부부인데,
157년(신라 아달라왕 4) 미역을 따러 나선연오랑이 올라섰던 바위(물고기라고도 한다)가
움직여 일본의 한 섬에 닿아 임금이 되었다.
남편을 찾아 나선 세오녀도 또한 바위에 실려 일본에 닿아 연오랑을 만나고 왕비가 되었다.
그 때 신라에서는 돌연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다. 변괴에 놀란 왕이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이는 해와 달의 정(精)이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탓이라고 아뢰었다.
왕이 급히 사신을 보내어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 돌아갈 수는 없으나
세오녀가 짠 세초(細綃:생사로 가늘게 짠 비단)를 가지고 돌아가 하늘에 제사지내라 하였다.
그대로 하였더니 다시 해와 달이 밝아졌다. 이로부터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지금의 영일만)이라 하였다.
이는 한국의 태양신(太陽神)에 관한 신화로서는 유일한 것이며,
이 태양신의 일본 이동과 관련하여 일본 태양신 신화와의 비교연구가 주목된다.
(자료:네이버)
제 8대 아달라(阿達羅)왕 4년 정유(丁酉)년 일이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다에 떠있는 바위에 올라 일본(?)으로 간 다음부터 신라에서는
해와 달에 광채가 없었다.
일관(日官)이 왕에게 아뢰길, '해와 달의 정기(精氣)가 우리 나라에 내려 있었는데
이제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괴변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사자(使者)를 보내어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랑은 말했다.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키신 일인데 어찌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의 비(妃)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내가 살던 못가에 단을 쌓고
나무가지에 이 비단을 길게 걸고 정성을 모아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될 것이다. "
이렇게 말하고 비단을 주니 사자가 돌아와서 사실을 보고하고 그의 말대로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그런 뒤에 해와 달의 정기가 전과 같아졌다.
이에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수하고 국보로 삼으니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한다.
또, 하늘에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한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것으로
연오랑과 세오녀가 실제로 살았다는 포항 지역의 영일(迎日)이란 지명과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기는 한다.
그리고 위의 설화에서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日月無光)'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을 일식현상이라고 간주한다면 비슷한 시기인 아달라 이사금 13년(166)에
일식기록을 비롯하여
고구려 차대왕 4년(149), 13년(158), 20년(165)과 백제 개루왕 38년(165),
소고왕 5년(170) 등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까 대체로 2세기 중∙후반 경일거라고 추정은 가능하지만
연오랑과 세오녀도 그 시대를 살았을 지는 의문이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설화에 등장하는 일월, 영일, 도기야 이외에도
오늘날 연일, 오천, 대송, 동해지역을 다스린 진한 12국시대의 근기국(勤耆國)과
신라 초기의 근오지(斤烏支)현, 오량우(烏良友)현의 명칭을 비롯하여
근오형변(斤烏兄邊:또는 阿等변), 오천(烏川), 연오랑(延烏郞), 세오녀(細烏女),
일월(日月), 부산(夫山), 일광(日光), 광명(光明), 세계(世界),중명(中明),
자명(自明), 오도(烏島), 금광(金光) 등은 모두 해와 해돋이를 상징하는 명칭이다.
연오랑과 세오녀에 관련된 영일만 지역에 있는 지명에 대하여 알아보면,
영일군(迎日郡) - 1994 년 12 월 31일자로 폐지된 영일군의 명칭은 1914 년 일제에
의한 전국행정구역 통폐합시 흥해군(興海郡), 장기군(長기郡), 영일군(迎日郡), 청하군(淸河郡) 등 4 개군을 합하여 단일 군명을 정할 때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가
영일을 따 명칭을 정하였으며 당시 영일군 산하 18 개 면중에는 포항면이 포함 되었으며,
1949 년도에 포항읍은 포항시로 승격되었다가 1995 년1월 영일군과 통합하였다.
* 도기야(都祈野) - 삼국유사에 의하면 일월에 제사지내던 지역이
도기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일제가 도기야라는 지명을 도구(都丘)로 변경시켰음. 현재 동해면 도구리에는 일월사당이 있음.
* 일월동(日月洞) - 포항시 남구에 일월동이 있음.
* 中明理 - 포항시 남구 延日邑에 소재하고 있는 洞으로
연오랑과 세오녀에 해와 달이 빛을 다시 찾았을 때 빛이
한가운데 비친 곳이라 하여 중명이라 했음.
* 오천읍(烏川邑) - 옛 일월면과 고현면을 합하여
1914 년 오천면이라 했는데 오(烏) 는 까마귀 즉 3족오라 하여 발이 세 개 있는 까마귀는 민간설화에 해(日)로 표현된다.
옛부터 이 지역을 영일 또는 오천이라 했음.
* 세계리(世界理) - 잃었던 해와 달의 빛을 다시 찾기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단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이며
해와 달이 빛을 찾았을 때 빛이 가장 먼저 비쳐 세계가
밝아졌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어릿불(魚龍불) - 원래는 어룡불이라 하였는데 변음되어 어릿불로 불리고 있다.
송도동 송도해수욕장에서 동해면 도구리(都丘理) 해수욕장까지
어릿불이라고 한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두 부부가 바위 또는 고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설화 내용에고기를 용으로 표현하여 부부가 떠나간 불 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국호인 조선(朝鮮)은
나무(木:宇宙木, 즉 神檀樹), 해(日), 곰배(丁), 달(月:생산과 기술 상징)
그리고 물고기(魚:어로)와 양(羊:농경과 목축)으로 조합된 문자이다.
곧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곳이 조선이다.
그 곳에 음양조화의 이치가 있다.
조선을 아침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같은 국호의 의미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고장이
바로 연오랑과 세오녀를 낳은
일월지향(日月之鄕) 포항이라는 지역적인 연관이 있다.
(참고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
이와 같이 우리나라 곳곳에는 많은 전설이 숨어 있어요.
아나로그 시대의 우리는 이해 할 수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 성장한 분들은 구전으로 ,
또는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는 산이나, 강, 그리고 지형에 대한,
마을에 대한 구수한 이야기를 자칫 쉽게 생각하고 흘러 지나치는 경향이 있어요.
자연의 섭리에 의한 우리네 삶의 흔적을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옮긴이 : 산야초효소 강병연
[원문출처]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 산야초효소|작성자 월송서원 강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