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좋아하시던 홍시를 떠 넣어 드려도
게간장을 떠 넣어 드려도
가만히 고개 가로저으실 뿐,
그렇게 며칠,
또 며칠,
어린아이 네댓이면 들 수 있을 만큼
비우고 비워 내시더니
구십 생애를 비로소 내려놓으셨다.
- 완생(完生)
― 윤효(1956~)
□ 끝이 아니라 완성
끝은 시작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생의 끝은 죽음의 시작이고, 사랑의 끝은 외로움의 시작이다. 그런데 끝이 시작이 아니라 완성이라는 말을 전하는 시인이 있다. 끝을 시작이라고 보는 관점이 희망이라면, 끝을 완성이라고 보는 관점은 축원의 관점이다. 이 축원의 언사를 윤효 시인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완생〉이라는 작품이다.
‘생을 완성하다’라는 의미에서 제목이 〈완생〉인데, 사실 알고 보면 이 시는 성취나 기쁨을 노래한 시는 아니다. 그보다 훨씬 슬프고, 마음이 저릿저릿한 시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사모곡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내면서 쓴 시이다.
방 가운데에는 시인의 노모가 누워 계신다. 어머니는 지금 영영 떠날 채비를 하고 계시다. 아들은 그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머니의 입에 연신 곡기를 흘려 넣는다. 무엇을 드셔야 입맛이 도실까. 그렇게 좋아하시던 홍시를 구해와도 드시질 못한다. 평소 즐기시던 게장을 발라드려도 넘기시질 못한다.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때가 되었다고 하시는데, 조금만 더 머무시라고 정성을 다하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어머니는 서서히 곡기를 끊고 몸 안을 깨끗이 비워 내신다. 생전 내내 그러하셨듯이 저 깔끔하신 분은 가시는 길마저 정갈하다. 그렇게 어머니는 모든 준비를 끝내시고, 마침내 오랜 생애를 내려놓으셨다.
아들은 그 곁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모든 절차를 지켜봤다. 슬프지 않을 리 없다. 시인은 어머니가 애써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했음을 알고 있다. 그 의미를 알기에 아들은 눈물과 오열로 그 길을 방해할 수 없었다. 대신 아름다운 인사로 배웅한다. ‘당신은, 끝난 것이 아니라 완성하신 겁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마지막 인사가 아름답게 단정하다. 역시 어머니의 마음은 그의 아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 ‘내게로 온 시 너에게 보낸다, 나민애가 만난 토요일의 시(나민애, 밥북, 2019)’에서 옮겨 적음. (2019.11.15.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