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2년 가을, 혁명의 화염에 휩싸인 프랑스의 국민 공회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를 채택했다. 영국은 동아시아로의 경제적 침투 기반을 다지고자 정객 조지 매카트니(1737∼1806)를 대사로 위촉하여 중국행을 명했다. 러시아의 통상 요구에 부닥친 일본의 에도 막부는 영주들에게 연안 방어 강화를 명하여 유럽인들의 도전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했다.
세계가 요동쳤던 바로 그때, 조선의 통치자들은 무엇에 몰두하고 있었을까? 1792년 10월19일, 국왕 정조는 신하들을 불러 과거 답안지에 패관소품(稗官小品-중국 소설의 문체)을 이용하면서 경전류의 우아한 문체를 멀리하는 일부 지식인들을 지탄하고 중국 소설 수입 금지를 명했다. 이옥(1760∼1815) 등 문단의 이단아들의 벼슬길을 막을 ‘문체 반정’은 그렇게 예고됐다. 세계가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와 있었던 시점에 중국 소설 문체의 ‘악영향’을 국정의 핵심 문제로 삼은 정조에게 조선의 공용어로서의 한문의 수명이 100여년밖에 남지 않았음을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뛰어난 국왕이었던 그도 ‘성현의 어문’인 한문이 영원토록 세계의 중심적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전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어 몰입교육과 ‘오렌지’ 발음을 갖고 열변을 토하는 대한민국 국정 책임자들을 보면서 필자는 패관소품 문체의 퇴치에 올인했던 200여년 전의 국왕을 떠올려본다. 특정 제국이 영원하리라는 맹신과 어리석음으로 나라를 그르친 적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또다시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려 한다. 몰입교육을 논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볼 것이 있다. 과연 영어가 ‘공부의 중심’이 돼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문제다. 일부 특수 직종(학자·기자·외교관 등)을 제외한 다수에게 외국어가 필요한 것은 교역 등 회사에서의 대외 업무 수행과 외국여행 때일 것이다. 무역부터 보자. 2007년에 한국은 영어가 통하는 미국(12.3%), 영국(1.8%), 독일(3.1%)보다는 중화권인 중국(22.1%), 대만(3.5%), 홍콩(5.0%)에 약 2배 더 많은 물건을 팔았다. 외국여행도,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중국과 일본 여행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미국으로 간 이들은 7.2%에 그쳤다. 작년 입국자 통계를 봐도 중국·대만(21%)과 일본(35%)은 미국(9%)과 비교해서 한국 관광산업에서 훨씬 더 중요한 존재다. ‘실용주의적’ 시각으로 외국어 수요를 파악하면 학교에서는 앞으로 제1외국어를 중국어로 바꿀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학술·기술·국제정보망의 주요 언어로서의 영어의 영향력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이나, 중국어 구사 인구(12억여명)가 영어 구사 인구(약 3억4천만명)에 비해 거의 4배 가까이 된다는 점이나, 구매력 기준으로 계산되는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2026년쯤에는 미국을 능가할 전망이어서 결국 이 우위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권에서는 중국어가 공용어로 통할 상황이 그보다 훨씬 이른 약 15∼20년 안에 올 것에 대비하면서 영어 몰입교육보다는 영어와 중국어 교육 사이의 균형과 효율성을 논해야 한다. 한문을 절대 신성시하고 고전 문체를 벗어나는 일까지도 일탈로 간주해 앞을 보지 못했던 조선 사대부 못지않게 지금 한국 사회 귀족들은 자신들의 문화자본인 영어를 국가적 물신으로까지 만들려 하고 있다. 실사구시 정신이 결여된 그들의 언어관은 자연스레 도래할 동아시아 시대에 역행하고 우리의 미래를 그르칠 뿐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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