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삼하 19:1~8
오늘의 찬송 - 337장/내 모든 시험
제목 : 사사로운 슬픔에 빠져 비난받는 지도자
다윗이 압살롬을 위해 슬퍼하니 그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됩니다. 요압은 왕의 이런 행동이 왕을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고 왕을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는 것이며, 부하들 마음을 위로하지 않으면 모두 왕을 떠나리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성문에 앉으니 백성이 나아옵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삼하 19: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삼하 19: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삼하 19: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삼하 19: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애도하니 승전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환을 준비하던 요압과 모든 군사는 다윗이 압살롬으로 인해 슬퍼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에 승리를 기뻐하던 분위기가 왕의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위기로 바뀝니다. 그로 인해 승리를 축하받으며 개선해야 할 군사들이 마치 패잔병처럼 가만히 돌아옵니다. ‘가만히’(3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훔쳐 달아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군사들이 다윗의 눈치를 보느라 도둑처럼 조용히 돌아오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자신을 위해 싸운 군사들과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다윗의 군사들은 왜 도둑처럼 가만히 성으로 귀환했나요? 내가 옳은 일을 하고도 눈치를 보거나 드러낼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다윗을 질책하는 요압
삼하 19: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삼하 19: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삼하 19: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삼하 19: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요압은 슬픔에 빠진 다윗을 질책합니다. 그는 압살롬을 죽인 장본인이기에 이 상황이 가장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은 죽어 마땅한 인물인데, 아들을 죽였다고 다윗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애도가 왕과 가족의 생명을 구한 모든 군사를 모욕하는 행위요, 오히려 적을 사랑하고 아군을 미워하는 행위라며 직설적으로 맹비난합니다. 그러니 당장 나가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라며,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자신과 군사들은 모두 왕을 떠나겠다고 합니다. 협박하는 듯한 요압의 말에 다윗은 압살롬을 죽인 것에 대한 질책도 못하고 군사들을 치하하기 위해 나섭니다. 아들을 잃고 또 부하에게 비난받는 다윗의 모습은 참으로 서글픕니다.
요압은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에게 무엇이라고 항의했나요? 나의 표정이나 태도가 누군가의 비난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깊은 슬픔과 좌절로 헤매고 있을 때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고통의 한 가운데서도 믿음의 눈을 들게 하시고, 마땅히 보고 듣고 행해야 할 일을 감당하도록 은혜를 주소서. 저의 경험과 감정에 빠져 타인의 기쁨을 헤아리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