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의 일
박은지
그는 손을 씻는 것으로
목장의 하루를 닫는다
그를 두 팔 벌려 맞이하는 것은 나의 기쁨
털과 흙, 건초 찌꺼기를 털어주고
기름에 절인 토마토와 함께 맥주를 마시는 저녁
식사 전 기도를 잊었네
어린양이 자꾸 어린양을 들이받아
어린양이 혀를 내밀고 어린양을 따라다닌다니까
지칠 줄 모르고 쫓아다녀
목장 이야기를 듣다 빠져든 꿈에선
쿵 쿵
끝없이 이어지는 소리
목장의 하루 열렸다
어린양 한 마리는 숨을 쉬지 않고
당나귀 몇 마리가 사라졌다
발자국 없는 동물이라든가
억새만큼 큰 괴물에 관한 소문
마을 입구에 현수막이 걸렸다
어린양의 일은 어린양의 일로 남겨두자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사람들
그의 손으로는 도저히
마을 밖에선 당나귀 시장이 열렸고
어린양이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목장의 하루가
닫히지 않는다
먼 곳에선 전쟁이
전쟁이라는 말이 돌아다니고 있다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3년 11월호
박은지
2018년 《서울신문》 등단.
시집 『여름 상설 공연』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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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의 일 - 박은지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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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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