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미카 7,14-15.18-20 마태오 12,46-50
미카 예언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찬양합니다.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미카’라는 이름의 뜻이기도 한 이 표현은
하느님의 업적과 그분의 위대하심을 잘 나타냅니다. 대천사 미카엘도 같은 뜻의 이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충실하시며 그들의 죄를 묻지 않으시는, 전능하시면서도
자애가 가득하신 분으로 소개됩니다.
이런 하느님의 업적은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관계 안에서 지속됩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혈통이 중심이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연결됩니다.
그 뜻을 따르고 실행하는 이들이 하느님의 백성이자 새로운 가족입니다.
그들은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입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마태 7,21 참조), 삶을 통하여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신앙인들의 정체성입니다.
새로운 관계 안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은, 나약하지만 하느님을 향하여 가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이런 우리를 격려하시고 우리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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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미카 7,14-15.18-20 마태오 12,46-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적 가족’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마태오 12,5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들이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는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가족을 밝히십니다.
사실 어머니 마리아는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던 첫째 제자로 표현되며,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리아를 두고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 것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이 다 훌륭하고 좋은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마리아 역시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에 포함될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의 뜻의 실행'에 대한 것은 '주님의 기도'의 셋째 청원의 내용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바친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은 누가 이루는가?
그것은 당연히 하느님이 이루십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고 기도할 때 사용되는 동사는 ‘신적 수동태’라고 불리는 형태로, 뜻을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서,
‘그분의 뜻에 우리가 응답하게 하소서.’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또 우리와 함께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를 당신 뜻을
이루시는 데 협조자로 삼으십니다. 당신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당신의 그 구원 사업에 참여시키십니다. 당신의 구원을 주시고자 하심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응답하는 자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당신의 뜻을 아버지께
맡기심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기에 앞서, 먼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장소요 공간인 셈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뜻'을 미처 헤아려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오 11,26)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이 ‘선하심’을 신뢰하고 의탁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당신의 가족을 이루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라 불린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우선 예수님께서 계시는 집 안에 들어와 함께 있는 이들입니다.
곧 피를 같이한 혈육이라 하더라도 당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당신의 새로운 가족이
될 수 없으나,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당신 안에 머무르면 한 가족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해서 모두가 예수님의 어머니요 형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있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만 합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나 다른 누구의 말이 아닌,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요, ‘듣는 이’라
하더라도 그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진정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 됩니다.
이는 산상설교의 마지막 결론 말씀을 반향해줍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 7,21)
이처럼 무엇을 행하는지가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줍니다.
곧 아버지의 뜻을 행하면 아버지의 자녀이고 아버지께 속해 있으며,
사탄의 뜻을 행하면 사탄의 자녀이고 사탄에 속해 있으며, 자신의 뜻을 행하면
자신의 자녀이고 자신에 속해 있는 것이 됩니다.
결국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그러니 지금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지금 나는 누구의 뜻을 실행하고 있는가? 나 자신의 뜻인가, 하느님의 뜻인가?
아멘.
<오늘의 샘 기도>
주님!
당신께서는 당신의 혈통에 저를 입적시키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형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오니, 제 삶이 당신 신성으로 거룩해지게 하소서!
제 안에서 당신의 말씀이 자라나고, 아버지의 뜻이 실행되게 하소서!
아멘.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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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미카 7,14-15.18-20 마태오 12,46-50
오늘 복음은 ‘어머니’와 ‘형제’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반복되어 나오는데도 매우 차갑게
느껴집니다. 당신께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대하셨던 분께서 가족들에게는
참으로 냉정히 대하십니다. 가족 관계를 부정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는 의도였을까요?
예수님의 오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을 핑계로 가족을 뒷전으로 미루는 태도를
합리화하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새로운 가족을 초대하십니다.
따라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는 예수님의 반문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제자들을 첫 번째 가족으로
선언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초대하시는 새로운 가족은
‘혈연과 혼인’이 아닌 ‘아버지의 뜻’으로 모인 이들입니다.
교회 생활이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고 공동체 안에서 형제, 자매라는 말도 점차 듣기
어려워지니, 사목자들은 친목 단체를 통하여 관계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새로운 예수님의 가족은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아울러 피조물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고 이민자들을 환대하는 이들,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모든 이가 예수님의 가족이요 우리의 가족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대전교구 김인호 루카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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