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예레미야 1,1.4-10 마태오 13,1-9
마태오 복음 13장에서는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소개합니다.
이는 ‘예수님 삶의 신비’고,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말씀의 신비’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예수님의 말씀 선포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농부들은 밭을 갈기 전에 씨를 뿌렸기에 씨앗이 길이나 돌밭, 가시덤불,
또는 좋은 땅에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이 어디든지 뿌려질 수 있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을 선별해서 말씀을 뿌리지 않으시기에 말씀이 떨어지는 곳은 준비가
안 된 곳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때문에 혜택을 본 사람들은 아닐까요?
예수님 말씀이라는 씨앗이 좋은 마음에 뿌려질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 씨앗을 뿌리신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열매로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실망스러울 때도 있고, 우리 각자 안에도 열매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는 실망하지 않으시고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에 대한 희망으로
씨를 뿌리십니다. 그 열매는 씨 뿌리는 과정의 수고와 손해를 모두 보상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대전교구 김인호 루카 신부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예레미야 1,1.4-10 마태오 13,1-9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예언자는 한계가 있는 인간의 능력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예레미야 예언서 1,5)
하기야 어느 누구도 태어나기 전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모태에서 한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예언자를 예언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이 말할 줄 모르는
‘철부지 어린 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심으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시공간에 갇혀 있는 인간과는 달리 그 존재 이전에 이미
그를 당신의 사람인 예언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으로 가는 길은 하느님의 도우심도 있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성실한
대답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갈릴리 호숫가가로 가시어 한 자리에 앉으시자 많은 군중이 모여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비유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십니다.
이번에 들려주시는 말씀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였습니다.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들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보통 흙을 갈아 고른 다음 씨를 뿌리고 흙을 덮는데,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틴 농사법은 먼저 씨를 뿌리지요.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 비유 말씀을 하신 대로 사람들이 다닌 길바닥이나 돌밭에, 또한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가 있는데 정도 차이는 있어도 길바닥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서
아예 뿌리도 내리지도 못합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돋아나기는 해도 뿌리가 없어서 말라버리지요.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나중에 숨이 막혀서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배 육십 배 서른 배의 결실을 내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얼핏 보기에는 씨가 떨어진 환경에 따라 열매를 맺고 못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해석하는 학자들 중에 운명론적인 구원관을 펴는 이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구원은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는
극단적 해석을 내 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 중에 ‘자유’를 꼽듯이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을 바탕으로
하지만 사람의 자유롭고 성실한 대답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구원은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대답이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구원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에서 주님께서 인간의 하느님께 대한 희망과 성실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말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세우십니다. 그는 인간의 연약함을 비추기는 했어도
일생 하느님께 성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느님께 늘 감사하며 때로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흔들리 않고 성실하게 좋은 땅을 만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심고 기르며 결실을 내야 하겠습니다.
원주교구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예레미야 1,1.4-10 마태오 13,1-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오복음 13장에서, 예수님서는 하늘 나라의 대한 일곱 가지의 비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 첫 번째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 비유는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요,
둘째는 뿌려진 씨에 대한 이야기, 곧 열매인 결실에 대한 이야기요,
셋째 씨가 뿌려진 땅에 대한 이야기, 곧 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우선 이 이야기는
첫째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서 밭을 구별하지 않고 씨를 뿌리는 구원의 보편성을 말해주며,
둘째로는 그 씨앗은 열매를 맺고 실현되고 성취된다는 사실을 밝혀주며(이사야 예언서 55,11),
셋째로는 씨가 뿌려진 밭을 잘 가꾸어야 할 하느님 자녀의 소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마지막 구절에서, 결론처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오 13,8)
그렇다면 분명 나에게도 말씀의 씨앗이 뿌려졌을 터인데, 지금 나에는 몇 배의 열매가 맺혀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내가 좋은 땅인가를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씨앗이 떨어질 때 그 땅이 ‘좋은 땅’이었는지 아니었는지에 따라 열매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 뿌려지면 그 땅은 그 씨앗으로 말미암아 좋은 땅이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땅’은 ‘씨앗’과 함께 일구어지기 때문입니다.
곧 씨앗으로 말미암아 밭이 일구어지기 때문입니다.
곧 씨앗이 뿌려지기 전의 땅의 상태가 좋은 땅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 뿌려진 후에 땅을 갈고 가꾸는 것에 의해 그 땅의 성질이 결정지어지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의 씨를 가꾸는 농사법’은 먼저 밭을 잘 쟁기질 한 다음에 씨가 뿌려진 것이 아니라,
어느 땅이든 상관없이 먼저 씨가 뿌려진 다음에 그 밭이 쟁기질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땅은 씨앗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땅이라 할지라도 쓸모없는 땅인 것입니다.
황무지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밭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씨앗이 거룩하고 씨앗으로 말미암아 밭이 거룩해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밭에 씨앗이 선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 씨앗의 존재를, 그 가치를 깨닫는 일입니다. 그리고 베풀어진 씨앗을 맞아들이는 일입니다.
그 씨앗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오 13,9)
그러니 씨앗이 내 안에 뿌려진 채 여전히 묻혀 있지 않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를르의 체사리오는 말합니다. “만일 누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먹지’ 않는다면,
(먹지 않고 저장된) 말씀은 만나에 구더기가 끓었듯이 구더기가 끓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땅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그것은 뿌려진 씨앗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신 안에 사랑이 부어졌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요, 뿌려진 씨와 함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소명을 짊어지는 사람입니다.
하늘을 쳐다보고 밭에서 일할 줄 알며 땅의 노래를 하늘과 함께 부르는 사람이요,
하늘의 노래를 땅과 함께 부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땅을 매만지며 피땀 흘려 자신의 지문을 새기며 사랑할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요,
그 열매로 자신의 배를 채우기보다 타인에게 내어주는 사람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 말씀의 씨앗으로 말미암아 저희가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샘 기도>
주님!
당신 밭의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일구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게 하시고,
뿌려진 씨앗으로 제가 거룩해 지게 하소서. 아멘.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