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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한강 작가, 무거운 노벨상 가볍게 받았으면…
조선일보
노벨상 受賞 작품 '原書'로 읽게 해 준 한강의 기적
창창한 작가 나이, 더 깊고 넓은 작품 세계 기다리게 해
입력 2024.10.12. 00:17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4/10/12/F26P4X7I4RFZLJWY3XE77HLAGE/
‘딸이 노벨상을 먼저 받게 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기자의 이런 실없는 소리에 아버지는 그냥 ‘허허허’ 웃고 말았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막 받고 난 뒤였다.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임방울 판소리 축제’ 뒤풀이 자리였다. 임방울 재단 김중채 이사장은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라고 소개했다. 판소리 애호가 수준이 아니라 준(準)소리꾼 경지라고 했다.
아버지는 언제까지 ‘작가 한승원의 딸’일 것 같던 딸이 어느 날 자신을 ‘작가 한강의 아버지’로 만들어버린 사태 변화가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에 노벨상 수상 작품을 번역판이 아니라 원서(原書)로 읽게 됐다는 감회에 겹쳐 10여 년 전 이 장면이 떠올랐다.
소설가 한강은 나를 몇 번이나 무릎 꿇게 한 작가다. ‘소년이 온다’는 중간 부근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덮었다. 장편이라지만 중편(中篇) 두께 길이다. 문장도 유리처럼 맑고 투명했다. 등장인물이 많지도 않다. 맑고 투명한 문장이라서 그 문장이 드리운 무거운 그림자에 더 숨이 막혔던 듯하다. 소설 무대가 나와 무연(無緣)한 곳이 아니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2차 시도도 실패했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의 끝은 아직도 나에겐 미제(未濟) 상태다.
‘채식주의자’도 중도하차(中途下車)했다. 벌어진 상처의 아가리를 뚫어져라 응시(凝視)하는 작가의 눈길이 당해내기 버거웠다. 다음엔 초기 단편을 묶은 ‘여수의 사랑’과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부터 정규 코스를 밟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책꽂이 어딘가 꽂혀 있을 것이다.
소설이 쓰인 원어(原語)로 읽는 독자가 벅찰 정도라면 이 소설을 영어·불어로 옮긴 번역가의 수고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1968년 일본 작가로선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다. 공교롭게 메이지(明治)유신 백년이 되는 해라서 일본 전체가 들썩거렸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향이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설국(雪國)’의 작가다.
그해 12월 스톡홀름 수상식 연설에서 가와바타는 동행한 영어 번역가 사이덴스티커를 가리키며 ‘내 소설 절반은 사이덴스티커가 쓴 거나 마찬가지’라고 감사를 표시했다. 가와바타는 지금도 ‘일본 소설가 중 가장 아름다운 글을 썼던 작가’로 평가받는다. 번역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사이덴스티커의 말은 달랐다. “뜻이 분명하고 조리 있는 문장은 흥미가 당기지 않아요. ‘작가님, 이 문장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어야 할 곳이 많은 글에 끌립니다”. 한강의 번역가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복(福)이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정리되지 않는다. 작가를 기다려야 한다. 어느 역사가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侵攻)은 무엇을 남겼는가’라고 스스로 묻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내놨다’고 답했다. 2차 세계대전은 독일에 하인리히 뵐과 귄터 그라스의 ‘휴가병열차’ ‘양철북’을 남겼고, 피로 범벅된 발칸의 역사 속에서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가 태어났다. 그런 뜻에서 6·25는 지금도 종결을 기다리는 전쟁이다. ‘5·18′ ’4·3′을 피해자가 섰던 자리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건 하늘을 더 높이 나는 새의 눈을 가진 또 다른 작가를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걱정도 태산이랄지 모르지만 작가 나이가 걱정된다. 노벨상은 다른 상보다 무겁다. 기쁨이 지나면 중압감(重壓感)이 내리누른다. 일흔이나 여든에 받는 게 무난하다. 가와바타는 노벨상 이후 몇 편의 단편소설을 썼을 뿐이다. 펜의 무게를 더 느꼈던 듯하다고 했다. 한 해 걸러 작품을 내놓다 1957년 43살 한창 나이에 수상한 알베르 카뮈도 수상 이후 유작(遺作) ‘최후의 인간’이란 미완성 작품을 매만지다 세상을 떴다. 한강 작가가 무거운 상을 가볍게 받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젠 역사 현장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둬야겠다’는 뜻을 비쳤는데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한강은 수상 소감으로 ‘Thanks, thanks, thanks’ 하고 문학의 새 영토를 개척해 온 선배들에게 공을 돌렸다. 맞춤한 답변이다. 한강 덕분에 이제 선배 작가들도 노벨상 발표 때가 닥치면 전화통을 떠나지 못하던 옹색스러운 처지를 벗게 됐다. 1968년 가와바타 수상 다음 일본 수상자가 나올 때까지 26년이 걸렸고 2012년 모옌(莫言) 수상 이후 중국 수상자는 더 나오지 않았다. 상(賞)에 곁눈질 않고 쓴 작품이 상을 물고 돌아오는 법이니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해 볼 만하다.
강천석 기자 고문
2024.10.12 01:06:11
남성혐오 극단주의, 남로당식 현실 인식, 사실을 조작하는 역사 판타지... 대체 한강의 소설이 뭐라고 덜컥 노벨문학상을 안기는가? 스웨덴 한림원은 2016년에는 문학엔 관심도 없는 가수 밥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줬다. 노벨 문학상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으니, 한강이 상 받은 걸 갖고 민족주의 물개박수 부추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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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3:06:16
같은 소설이 북한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나왔다 하더라도 번역되었을까? 번역 되었다해도, 수상될 수 있었을까? 작가는 대한민국에 감사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싫으면 그 국민에게는 영광을 돌릴순 없었을까? 뜬금없이 우크라이나 어짜고하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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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0:34:25
강천석 고문이 한강 작가에게 좋은 충고를 해주었다. 54세는 노벨문학상을 받기에 이른 나이다. 한강 자신도 그렇게 느낄 정도다. 그러니 마음의 부담이 커질 것이다. 그러니 너무 노벨상 수상을 의식하지 말고 앞으로도 꾸준히 창작하기 바란다. 평상심이 중요하다. 또 하나, 강 고문이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다가 못 읽었다는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좋게 평가한 사람들도 있지만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 중 좋은 면을 보고 상을 주었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수상에 대해 국내 문단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강 작가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좀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좌파적 시각으로만 세상을 보지 말고 다른 면도 보기 바란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있다고 해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게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그 사실은 위대한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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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5:58:22
한강 작가가 2017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절망했었다. 고작 한다는 소리가 화염과 분노 떠드는 트럼프가 전쟁공포 야기한다면서 한국인들이 두려움에 떤다는 거다. 김정은이 이 O의 핵개발로 한국인 협박한다는 소리 일절 없더라. 6.25전쟁을 뭐라? 대리전쟁이라고? 그러면서 미국인이 노근리에서 민간인 학살한 사건만 나열하고, 중공군/북괴군 이O들이 한국인 학살하고 납치하고 고문하고 죽인 만행은 단 한마디도 안하고. 한마디로 선택적 역사의식과 선택적 정의감으로 무장한 특이한 사람이다. 한국인 상처를 헤집고 까발려 총기없는 노벨위원회 혹하게 만들었지만, 무거운 역사의식 가지고 성장해야 할거 같다. 깜냥 안되는 사람에 상을 주면 안되는데, 한갱의 노벨상이나 김다이중 평화상이나 도긴개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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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2:41:11
원로급 논객이 쓴 글치고는 매우 유치하다. 제법 문학소년의 치기어린 감성을 담은 표현들이 많은데 '벌어진 상처의 OOO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등의 언어유회적 표현은 그 연륜에 쓴글로는 접하기가 민망하다.좀 더 기품있고 무게있는 칼럼을 쓰기 바란다. 그리고 한강에 조언한다. 세계적인 명작은 좌파적인 이념에 치우친 작품이 거의 없다. '백경' '전쟁과 평화' '레미제라블' '폭풍의 언덕' '인간의 굴레' '이방인' '마의 산' '대지' '좁은 문' '데미안' '설국'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등 이념을 다룬 소설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깊이와 의미를 천착하는 글을 쓰기 바란다.그러나 노벨상 수상은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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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4:50:46
객관성이 결여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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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6:02:30
문학이나 예술은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하는데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 치고 재미와 감동 있는 글월 보지 못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딱 맞다. 한강 작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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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6:04:01
이제 좌삐들은 노벨상까지 들먹이며 5.18 4.3을 헌법에 넣자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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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5:23:01
멋진 비유 함의 제목에 감탄입니다...제 기준으로 받아야 사람은 따로 있는 듯 한데...암튼 이 친구가 님의 말씀을 들을 만한 재목이 되는 지 궁금합니다...자신의 세계에만 몰두한 그런 이는 아니길 바라며...높은 상 받았다고 자기주장이 마치 세상의 진리인 양 하는 것은 그 상을 모독하는 것 다름아니란 생각을 하면서...마지막으로 첨언하면 영미권이외의 작가에 대한 문학성 평가는 번역가가 노고가 거의 엄청난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드리며...이 친구는 번역한 이에게 최소한 자신이 받을 상금의 반 이상은 주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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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6:53:26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배출되었다는 점은 대단히 축하할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첨예한 두 역사적 사건 제주4.3폭동과 광주사태를 소재로 단지 작가 개인의 역사적 시각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소설이 수상되었다는 점에 대해 심히 걱정이 따릅니다. 어쩌면 최근 한류의 국제화와 함께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특히 근래에 노벨 평화상과 문학상이 정치적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앞으로 과학 분야 노벨상이 수상되어 진정한 노벨상 수상국이 되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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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6:29:55
한강의 기적을 제대로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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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7:07:40
이 여자 소설은 왜곡된게 너무많아 일단 내기준에선 패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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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2:43:55
헛소리! 이게 무슨 말이냐 당나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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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7:25:57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이상해졌나,바보들이 됐나. 희안하군 진짜. 강천석고문님. 한강이란 작가의 작품에 대한 비판은 왜 안하시나요. 경향신문 고문도 아니고 조선일보 고문아니요? '하늘을 더 높이 나는 새의 눈을 가진 또 다른 작가를 기다린다'고요? 그게 비판이 생명인 신문기자가 할 소리입니까? 노벨상을 받았다는 한강의 소설이.. 향후 우리 청소년들에게 심어줄 왜곡된 역사의 현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비겁한 언론인은,. 비겁한 정치인만큼 보기 싫습니다. 평소 당신의 글을 정말 진지하게 읽고 열독했던 독자로서 오늘의 칼럼은 아주아주 실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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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6:43:18
글에서 이념과 편향은 빼길 바란다. 영화 '기생충'이 유명 영화제의 수상작이라 해서 불멸의 명작인 것은 아니다. 문제작과 걸작은 엄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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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7:04:44
아버지가 생각해도 뇌벨상이 노벨상이 아니구나 하는 한탄이 나겠지... 그 대표적인 예가 핵뇌물 뇌벨상이 아니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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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3:19:50
조선일보 댓글란을 장악한 바보 극우노인들은 여전하구나. 이 노인들과 함께 조선일보는 석양처럼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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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8:04:19
한강 작가는 먼저 대한민국에 감사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노벨상 수상을 만들어 준거다. 앞으로도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노벨상 수상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작가가 정치적인 선입견을 가지면 망한다. 오로지 인간의 인본주의 사상에 입각한 글을 써야 한다. 한강 작가의 좌파적인 시각과 4.3/5.18이라는 글의 배경과 호남이라는 출생배경이 꺼림칙하다. 호남에서는 어릴때부터 종북좌파사상에 의식화 되고 있으니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고은/조정래 같은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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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5:22:07
소설은 픽션이다. 픽션이란 허구를 말한다. 소설작품을 보고도 왜 진실을 왜곡하냐는 초등생 만도 못한 질문을 한다. 아직도 소설과 역사적 사실보도를 헷갈려 하는 자들이 많다. 하긴 늙어지면 현실과 허구를 착각하게 되기도 한다. 의사들은 이것을 전문용어로 dementia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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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8:05:58
노벨상이 뭔가 했는데 동네유치원 상장수준인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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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7:37:55
시민의 비극인 518이 노벨문학상을 낳았다면, 민족의 비극인 625는 대체 어떤 상을 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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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8:16:14
노벨상을 받았던 말았던 간에 전라도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잘 보여주는 전라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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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8:13:32
나도 <채식주의자>를 중간에 집어던졌는데 조선 주필도 그랬다니 나만 이상한게 아니라는 안심이 든다. 강천석 고문의 非정치적 글 오랜만에 보는데 조선 주필 아무나 하는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좋은 글이었다. 배울거도 많고. 갑자기 고전을 읽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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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7:49:11
맘대로 젓가락질 하는 조선일보식 논조에 기가 찮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할짓이 아니다. 수상 이유에서 밝혔듯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이해는 할까? 마치 훈시하고 깎아 내릴 생각밖에 없다. 봉준호 황동혁 박찬욱등과 같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가 왜 세계적 찬사를 받는지 모를거다. 아직도 다 늙은 흑백 세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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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7:40:57
10~20년 전이었다면 노벨문학상을 탈수 있었은까? 생각이 든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름없는 변방국가에서 선진국이 되었다. 나토회담에도 참석하는 능력있는 국가가 됐다. K pop K culture K food Kculture K 방산 모두 세계가 인정하고있다. 국민이 이루었고 기업과 국가가 해냈다. 이 모든것의 영향도 몇(%)는 있다고 생각이든다. 작가 본인에게 먼저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좋은 힘이 되주신 모든 분야와 국가와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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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7:00:38
아침에 좋은 소식을 들으면서 'Good'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삼 느꼈다. 우리나라의 위상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쾌거에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린다. May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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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6:26:22
글 논조가 비꼬는듯 하구나. 자칭 보수 것들이 실은 OO 들이지만 얼마나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아니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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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8:21:24
걸레가 나라를 더럽히고 걸레뉴스가 온나라를 도배하는 요즘...노벨 문학상 수상소식은 청량하고 청천벽력같은 뉴스다. 국민들 숨통이 트이고 국민들 자긍심을 높여주는 한강작가 노벨 문학상 소식이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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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7:22:18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는 실망스런 책이었죠. 소설이 오히려 유려하고 시는 평범했어요. 물론 노벨상은 축하할 일이죠.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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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6:35:38
강석천고문님이 정치평을안하니...이 기사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작가님도 그리히실듯...우리나라의 영웅 다같이 축하해야죠...내용이야 어떻든...그 내용을 해석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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