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준 레오 신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코린토 4,7-15 마태오 20,20-28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받는 사랑입니까,
주는 사랑입니까?
마태오 복음 20장 20-28절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를 원하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둘은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 안에는 ‘만약 스승님께서 저희에게 높은 자리를 약속해 주신다면…’ 이라는
조건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주신다면 자신들도 기꺼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드린다는 약속입니다.
그들의 시선은 예수님께 드릴 것에 있지 않고 자신들이 받을 것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불행은 바로 거기서 시작됩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보십시오.
내가 사랑을 원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정확하게 사랑을 수령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택배상품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쉽고 간단한 길도 있습니다.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쉽습니다.
받는 사랑에는 조건이 필요하지만 주는 사랑에는 조건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고 종이 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섬기는 사람과 종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의정부교구 김효준 레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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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규 베네딕토 신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코린토 4,7-15 마태오 20,20-28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내는 표현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많은 경우 십자가 죽음의 의미는
구약 성경의 예언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속’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나타내려고 복음서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하느님 종의 노래를 인용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의 죽음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의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법에 충실하며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길을 올곧게 걷는
이들을 말합니다. 악인들은 이런 의인들을 시기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려고 의인을 박해하고 죽입니다.
대속과 비슷한 의미의 ‘속량’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나타냅니다.
속량은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하고 해방시키려고 ‘몸값’을 지불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죄에서 해방시키시려고
당신 자신을 몸값으로 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하여 달라는 청은 예수님을 세상의 권력자와 같은 메시아로
이해하는 시각입니다. 같은 메시아이지만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였던 것과 예수님의 업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메시아는 임금의 표상을 사용하고,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분께서는 이미 탄생 때부터 동방 박사의 경배를 받는 임금의 모습이시지만,
그 임금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으십니다.
그러기에 섬기러 오셨다는 말씀은 제자들을 향한 것이기에 앞서 예수님 삶에 대한
요약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부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그리스도이십니까?’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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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루카 신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코린토 4,7-15 마태오 20,20-28
동물의 세계에서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순서로 서열이 정해집니다. 사람들의 서열은 어떠할까요?
아이들은 좋은 장난감과 게임 실력이, 학생들은 학교와 성적이, 어른들은 정치력과 경제력
그리고 외모 등이 서열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에도 서열이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부모의 영향력과 함께
미묘한 서열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이 소개됩니다.
제자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리라 예상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높이 올라가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높은 사람, 첫째가 되는
다른 방법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높은 이와 첫째에 대한 뼛속 깊이 박힌 우리의 생각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며 기념하는 야고보 성인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그는 뒷날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받고 사도로서는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첫째가 된 것입니다. 성 야고보 사도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하늘에서 받을 서열을 조금씩 높여 봅시다.
대전교구 김인호 루카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